학맥·보은인사 등 논란
왼쪽부터 이성태 전 총재, 김중수 총재.
김대중 정부에서 전 전 총재에 이어 한은 총재로 임명된 박승 전 총재(2002년 4월∼2006년 3월)도 전북 김제 출신인 호남 인맥이었다. 당시 박 전 총재를 강력하게 추천한 인물은 다름 아닌 전 전 총재였을 정도로 지방색이 강하게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박 전 총재는 전 전 총재의 강력한 추천 덕에 1976년 한은을 떠난 뒤 노태우 정부 초대 경제수석과 건설부 장관을 맡았던 전력에도 김대중 정부에서 한은 총재에 임명될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자 한은 총재 자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등학교 선배에게 돌아갔다. 이성태 전 총재(2006년 4월∼2010년 3월)가 그 주인공이다. 당시 신상우 KBO(한국야구위원회) 총재에 이어 김장수 은행연합회 부회장, 이장호 부산은행장 등 부산상고 출신들이 줄줄이 중용되는 와중에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2년 선배인 이 부총재가 한은 총재로 승진 임명되자 ‘학맥인사의 정점’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처럼 한은 총재와 대통령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은과 정부 간 파열음이 발생한다. 재임기간이 정부 임기 내에 끝났던 전 전 총재를 제외하면 박 전 총재와 이 전 총재, 김 총재 등은 모두 새로 들어선 정부와 기준금리 인하 여부를 놓고 갈등을 겪었다.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기준금리 인하를 바라는 데 반해 한은은 물가관리를 이유로 기준금리 인상이나 동결을 고수하려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새로 들어선 권력이 강하다보니 한은 총재들은 결국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전 전 총재는 북핵 문제 및 사스 확산 등에 따른 경기악화를 이유로 2003년 5월 기준금리를 인하했고, 2008년 8월 기준금리를 인상했던 이 전 총재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10∼12월까지 4차례나 기준금리를 낮췄다. 기준금리 인하 문제를 놓고 박근혜 정부와 맞섰던 김 총재도 지난 5월 결국 백기를 들고,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