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의장 선출방식 둘러싼 우리당 소장파 갈등

	▲ 열린우리당의 대표적인 개혁파인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의원(왼쪽부터)이 당의장 직선제를 강력 주장하면서 일부 소장파들 사이에서는 ‘비토론’이 일고 있다. 이종현 기자 [e-mail]

열린우리당(우리당) 내에 새로운 갈등국면이 조성될 조짐이다. 당의장 선출 방식을 놓고 김원기 의장을 중심으로 한 중진들과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의원을 지칭하는 약칭)으로 대변되는 소장파 그룹의 대결구도에선 일단 소장파가 힘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8일 김원기 의장이 당의장 불출마를 내비치면서 “(당의장은) 후배들이 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며 한발짝 물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의장 직선제 관철을 주장하며 김 의장을 압박해온 ‘천·신·정’그룹의 ‘승리’로 보기엔 아직 이르다는 지적이다. 김 의장이 ‘천·신·정’에 맞서 당의장 간선제를 주장해온 것에 공감하는 당내 인사들이 많고, 같은 소장 그룹 내에서도 ‘천·신·정’그룹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차츰 높아지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일단 총선을 김 의장 체제로 치르고 나서 새 지도부를 구성해도 늦지 않다’는 의견이 소장파들 사이에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천·신·정’그룹은 ‘총선 승리를 위한 ‘당의 얼굴 교체’ ‘당의장 직선 선출을 통한 흥행몰이’ 등의 화두로 당내 여론을 주도해왔다.
이에 대해 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그들(천·신·정)이 말하는 새 얼굴이란 그들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라며 “경륜이 부족한 사람들이 김원기 의장 같은 원로를 밀어내고 당의 전면에 나선다면 여러 정파가 뒤섞인 당내 사정으로 보아 결코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우리당의 한 초선 의원도 “일부 소장파가 김원기 의장이 당의장 욕심 때문에 간선제 선출을 주장한 것으로 몰아간다”며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당을 위해 헌신하려는 양반을 그렇게 매도하면 안 된다”고 성토했다.

이같은 ‘김원기 옹호론’은 당내 소장파 인사들 사이에서 차츰 ‘천·신·정’그룹에 대한 비토론으로 번져나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리당의 한 소장파 의원은 “지금 같은 흐름에서 ‘천·신·정’ 중 한 명이 당권을 잡으면 열린우리당이란 당명 취지와 달리 ‘1인당’으로 갈 공산이 크다”고 경계했다.

우리당의 한 관계자도 “우리당 당헌당규에 직선으로 당의장을 선출하게끔 돼 있지만 당대표 직선 선출만이 정치개혁으로 가는 길이라 할 수 있나. 힘을 한쪽으로만 쏠리게 만드는 부작용도 생각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당내 소장파들 사이에서 불거진 ‘천·신·정’ 비토론은 성향과 이념에서의 반목이 아니라 당 주도권을 놓고 ‘천·신·정’ 그룹과 그간 상대적으로 소외당한 소장파들 간의 갈등이 커지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지적이다.

우리당의 한 초선 의원측은 “당의장 직선이 흥행몰이에 공헌하기는 하겠지만 지금 상황은 우리당에 개혁적인 소장파가 ‘천·신·정’밖에 없는 듯한 인상을 준다”며 “이들이 너무 부각되면서 그 그림자에 묻힌 다른 민주당 탈당파나 개혁 인사들이 설 자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원내 인사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정도면 원외 인사들은 오죽하겠나”라며 “당을 생각한다면 먼저 전체를 아우르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 (왼쪽부터)김원기 의장,김부겸 의원

실제로 우리당 소속 원외 지구당위원장들과 재야 출신 인사들 중 상당수는 ‘천·신·정’그룹의 독주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리당 소속의 한 소장파 원외 지구당위원장은 “우리 같은 소장 원외 그룹도 성향으로 보면 ‘천·신·정’편인 게 사실”이라면서도 “그 세 사람 쳐다보느라 유권자들이 우리 같은 중고 ‘신인’들에게 눈길이나 주겠냐”고 반문했다.

당내에서는 이처럼 ‘천·신·정’ 그룹에 대해 비판적인 소장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김원기 의장에게로 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천·신·정’ 그룹보다 지명도나 결집력에서 떨어지는 다른 소장파 인사들이 ‘김원기 역할론’을 축으로 ‘천·신·정’ 그룹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화를 꾀하게 될 것이란 관측이다.

‘김원기 역할론’을 통해 ‘소외된’ 소장파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그룹으로는 김부겸 의원을 필두로 한 한나라당 출신 소장 그룹이 꼽히고 있다. 특히 김부겸 의원은 과거 ‘꼬마 민주당’ 시절부터 김원기 의장과 정치적 노선을 함께 해온 경력이 있으며 당내 넓게 분포돼 있는 재야 출신들을 대변할 수 있는 인사로 거론되고 있다.

김 의원은 최근 상황에 대해 “당의장 선출은 직선의 정신은 살리되 다양한 세력이 포함될 수 있는 지도부 구성으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11월28일 민주당이 치르는 전당대회 방식이 이상적”이라고 역설했다. 최다득표자가 당대표직을 받아도 나머지 중앙위원들의 입지를 보장하는 민주당 스타일로 가야 한다는 것. 소장파 연배는 아니지만 같은 한나라당 탈당파인 이부영 의원도 집단지도체제를 주장하며 “민주당 탈당파가 대세몰이식으로 밀어붙이는 전당대회 개최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김 의장은 원내부대표인 김부겸 의원에게 당 차원의 대 언론 홍보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 안팎에선 ‘평소 기자들과 관계가 좋은 김 의원을 대 언론 홍보 전면에 내세워, 언론보도가 천·신·정 중심으로만 흐르는 것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풀이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김부겸 의원은 “(김 의장이) 우리가 당내 다른 인사들보다 객관적이고, 또 당내 여러 인사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본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편 당내 소장파들 간 갈등 구도에 대해 우리당의 한 의원은 “그게 무슨 갈등인가. 우리당 정도면 잘 굴러가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각 당 탈당파와 시민단체 출신 등 여러 집단이 모인 우리당에서 이 정도면 잡음이 오히려 적은 셈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당 주도권을 두고 소장파들 간에 싹트고 있는 ‘갈등’이 조기에 진화되지 않는다면 우리당이 중진 대 ‘천·신·정’ 그룹 간 갈등에 이어 또 한 차례 심한 내홍에 시달릴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