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청원 - 박근혜 ‘충청 당대표’ 밀약 소문
서청원 의원과 박근혜 대통령이 충청권 인사를 차기 당 대표로 밀 것을 논의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사진은 2007년 박근혜 예비대선후보가 개최한 서울지역 당원 간담회.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친박연대 비례대표 공천헌금 사건으로 기소돼 2009년 5월 의원직을 상실한 이후 4년여 만에 국회에 입성하는 서 의원을 지켜본 정치 전문가들의 공통된 얘기다. ‘김기춘(청와대)-홍사덕(원외)’에 이어 당 내에 최측근 원로 인사인 서 의원이 포진함에 따라 박 대통령이 원했던 친정체제의 밑그림이 완성됐다는 것이다. 여의도 주변에선 박 대통령이 국회에서의 역할을 서 의원에게 ‘아웃소싱’시키고 이제부터는 민생과 외교 분야 등에 전념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서 의원 공천을 밀어붙였던 박 대통령으로선 든든한 우군을 얻은 셈이다. 그만큼 ‘박심’을 등에 업은 서 의원의 귀환은 정치적 의미가 남다르다.
# 김기춘 ‘원톱’ 시대 끝나나
현재 여권에서 최고 실세를 꼽으라면 단연 김기춘 비서실장이다. 김 실장은 인사를 비롯해 주요 현안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실장 파워는 당·청 관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황우여 대표, 최경환 원내대표, 홍문종 사무총장 등 새누리당 지도부는 김 실장 발탁 이후 사실상 청와대에 끌려 다니고 있다. 실세로 불렸던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낙마가 대표적인 사례다. 진 전 장관은 김 실장을 필두로 한 청와대 참모진과 갈등을 빚다 물러났다는 게 정설이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현 정권 기초를 설계한 진 전 장관조차 사실상 쫓겨나다시피 사퇴하는 마당에 당이 김 실장 눈치보기에 급급한 건 당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 의원이 원내로 들어오면 이런 상황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포메이션이 ‘김기춘 원톱’에서 ‘김기춘-서청원 투톱’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서 의원은 김 실장보다 네 살 어리지만 여권 내 위상은 김 실장에 뒤처지지 않는다. 정치 경력만을 따져봤을 땐 당 대표까지 역임했던 서 의원이 김 실장보단 화려한 ‘스펙’을 갖고 있다. 새누리당 상당수 의원들이 “김 실장이 예전처럼 당의 일에 관여하지 못할 것”으로 점치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물론 여권 일각에선 서 의원이라 할지라도 청와대가 당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지금의 구도를 바꾸기 힘들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박 대통령 ‘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서 의원이 당을 장악할 경우 오히려 더 청와대에 휘둘릴 것이란 게 그 이유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의 한 중진급 의원은 “적어도 당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진 않겠느냐”고 반문하며 “그것만으로도 당·청 관계는 변했다고 할 수 있다. 서 의원도 청와대와 당의 소통을 수차례 언급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서 의원의 등장 배경을 박 대통령 특유의 인사 스타일에서 찾기도 한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박 대통령은) 서 의원이 여의도를 믿고 맡길 적임자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김 실장에게로 지나치게 힘이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한 전략도 숨어 있을 것으로 본다. 박 대통령 용인술의 핵심은 2인자를 용납하지 않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얼마 전 여권 안팎에서 김 실장에게 지나치게 힘이 쏠리고 있다는 우려를 보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 김무성 독주 흔들
왼쪽부터 강창희 국회의장, 이완구 의원.
지난 4월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무대’ 김무성 의원은 지난해 대선 승리에 기여한 개국공신이지만 친박 핵심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친박 비주류, 친이 인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비박의 ‘보스’로 군림하고 있다. 김 의원이 이끄는 ‘범 비박계’는 주류인 친박보다 수적으로 우위에 있다. 김 의원이 당 내에서 가장 힘 있는 인사로 통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김 의원이 당에서 입지를 굳혀가는 것에 대해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김 의원이 박 대통령 사람이 아니란 건 다 알지 않느냐. 박 대통령은 차기 주자로까지 오르내리는 김 의원 힘이 커지면 국정 운영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이 김 의원 독주를 막기 위해 서 의원을 국회로 불러들였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벌써부터 범 친박으로 분류됐던 인사들 중 대부분이 서 의원 밑으로 모여들고 있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서 의원 당선이 확정됐던 10월 30일 밤 몇몇 친박 의원들은 직접 서 의원 사무실을 찾아 인사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31일엔 국회 주변에서 서 의원 측 인사들과 친박계 간 축하 모임이 열렸다. 당선 후 여의도엔 나타나지 않고 지역구를 돌며 몸을 낮춘 서 의원이었지만 이미 친박은 그를 중심으로 단일대오를 형성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서 의원이 새누리당 내에서 구심점 역할을 해준다면 박 대통령으로선 국정 운영이 한결 수월해진다. 반면 별다른 경쟁자 없이 승승장구해온 김무성 의원의 정치 일정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김 의원의 무혈입성이 점쳐졌던 차기 당권 역시 불투명해졌다. 친박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서 의원 행보에 따라 당권 역시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내에선 서청원을 필두로 한 친박과 김무성이 지휘하는 비박계가 내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면충돌을 할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 충청권 민심 잡기 전략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임기는 내년 5월 15일까지다. 차기 당 대표는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을 지휘해야 한다. 책임감이 막중하기도 하지만 그 결과에 따라 당내 위상을 높일 수 있음은 물론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청와대도 박 대통령 집권 중·후반기를 함께해야 한다는 점에서 황 대표 후임자 발탁에 남다른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까지 새누리당 차기 당권은 김무성 의원이 가져갈 것이란 데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김 의원 역시 공공연히 당권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김 의원은 내년 전당대회를 발판으로 대선까지 노린다는 전략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서 의원이 판에 뛰어들 경우 양상은 달라진다. 정치권에선 서 의원이 당권 도전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지만 현실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서 의원의 한 측근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영감(서 의원)이 당 대표에 출마하는 것은 그리 모양새가 좋지 않다. 본인 역시 국회의장을 했으면 했지 당 대표엔 별다른 미련이 없다고 했다”면서 “당 원로로서 훈수를 두거나 막후에서 조정자 역할을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 역시 “서 의원이 당 대표를 맡으면 박 대통령이야 좋긴 하겠지만 정치적으로 부담이 너무 크다. 서 의원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킹메이커를 자처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과 서 의원이 충청권 인사를 차기 당 대표로 밀 것을 논의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어 관심을 끈다. 서 의원이 7인회 소속 강창희 국회의장(대전) 또는 ‘충청 맹주’ 이완구 의원(충남 청양) 중 한 명을 지지할 것이란 게 골자다. 현재 새누리당 내에선 차기 당권을 놓고 ‘영남 대표론’과 ‘충청 대표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이는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를 대비해 기존 지지층을 염두에 둔 ‘집토끼론’과 충청권 표심을 잡아야한다는 ‘산토끼론’과도 일맥상통한다.
청와대는 얼마 전부터 충청권 민심 이반이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받은 후 이에 대한 대책 마련 차원에서 충청권 당 대표를 적극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충남 천안 출신인 서 의원 역시 이에 공감했다고 한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박 대통령은 자기 사람을 차기 당 대표로 선출하고 싶을 것이다. 서 의원을 공천하면서 모종의 약속이 있을 수밖에 없다. 서 의원이 박 대통령 의중을 충실히 따른다면 충청권 인사가 차기 대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