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처럼 빠져나가 밀물처럼 몰려갔다
‘썰물과 밀물.’
새누리당의 빅 이슈는 단연 ‘서청원과 김무성’이다. 지난 10·30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로 당내 재입성한 7선(최다선)의 서 의원이 당권 선두주자 김 의원(5선)과 어떤 대결을 펼칠지 숨죽여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이 둘 중 승리한 자가 다가올 제20대 총선의 공천권을 휘두를 탓에, 요즘 정치권에선 ‘복지부동 국회의원’을 꼬집기도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거나, 이곳저곳을 모두 기웃거리는 양다리까지 비꼰 표현이다.
경기도 화성갑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서청원 의원(오른쪽)이 지난 4일 의원총회에 참석해 김무성 의원과 인사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지난 4일 오후 3시 열린 ‘재정준칙 마련과 국가 재정건전성 제고를 위한 정책토론회’장. 김무성 의원과 국회 입법조사처가 함께 주최한 이날 행사는 국회 의원회관 제1간담회실에서 열렸다. 그런데 2시 50분쯤 들어온 김 의원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어, 국회의원들이 하나도 없네?’
이어 서병수 의원이 인사차 들어왔다. 서 의원도 예상대로 “별로 사람(의원)이 없다”며 의아한 표정으로 김 의원에게 물었다. 김 의원은 “일부러 안 불렀어. 실질적인 토론을 좀 하려고…”라고 답했다.
3시 정각, 토론회가 시작되자 김 의원은 서 의원을 자신의 옆자리로 불러 앉혔다. 이때 의원 몇몇이 들어왔다. 나성린, 이만호, 안종범, 원유철, 민현주, 이한성, 정희수 의원. 김 의원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들에게 “5분만 앉아 있다 가라”고도 했다. 김 의원 비서진은 즉석에서 명패를 만들어 의원들 앞에 뒀다.
김 의원은 “저는 의정 활동을 하는 것인데 언론에서 (세력화라는) 엉뚱한 기사를 많이 쓴다. 또 엉뚱한 보도가 나올 것 같아서 (의원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포스터만 붙였다”고 축사 전에 말했다. 이를 두고 한 여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6주 전 근현대사역사교실 모임은 김 의원이 초청해서 그리 많이 왔나? 아니다. 의원들이 제 발로 찾아온 것이다. 그게 세력이다.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것은 한 가지다. 그땐 서청원이 없었고, 지금은 있다는 것.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볼 만할 것이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요즘 김 의원의 행보가 발 빠르다. 일부는 서두르는 감이 없지 않다고도 한다. 6일 오전 김 의원은 근현대사역사교실을 재개했다. 역사교과서 논쟁을 주제로 한 이날 모임에서 김 의원은 “다른 교과서는 몰라도 국어와 국사 교과서는 (검인정 체제에서) 국정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날 ‘교실에 출석한’ 국회의원은 40여 명. 역사교실 등록 회원 수가 120명이 넘는 것을 따지면 3분의 1 정도가 참석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큰 관심’이라 표현했고, 다른 쪽에서는 ‘별 관심’이라 보고 있다. 김 의원은 11일에는 고령화 사회의 대안을 연구하는 ‘퓨처라이프포럼’을 발족했다.
서청원 의원에게는 사람들이 떠밀려오고 있다. ‘밀물’이다.
보궐선거가 끝난 지 나흘 뒤인 지난 3일, 서 의원이 여의도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알려진 바로는 홍문종 당 사무총장과 김을동 이우현 노철래 의원 등 과거 친박연대 출신 인사들과 점심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소식을 뒤늦게 접한 의원들이 하나둘 식당에 나타났고, 일부는 늦지 않았으면 지금 찾아가도 되느냐며 들이닥쳤다. 요즘 뜨는 여권의 고위 당직자와 청와대 수석비서관도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서 의원이 김 의원과 대조되는 부분은 ‘자기 사람’의 유무다. 새누리당 내 서청원 사람으로는 이우현 의원과 노철래 의원이 손꼽힌다. 지난 국정감사 때 서 의원의 아들 서동익 씨가 총리실 4급 서기관으로 특채된 것을 두고 민주당이 공세를 가했다. 서 씨는 이우현 의원의 5급 보좌관으로 활동한 바 있다. 아들을 맡길 만큼 이 의원과 서 의원은 가깝다. 이 의원은 서 의원이 공천을 받기 전부터 언론 인터뷰를 자청해 ‘서청원 살리기’에 가장 앞장섰다.
공천헌금 비리전력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 의원은 “공천 자금을 주머니에 넣고 썼으면 그게 공천헌금이지…. 당시 한나라당, 민주당, 자유선진당, 창조한국당 등이 다 선거 통장에 돈을 받아서 빌려 썼고, 그것을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서 갚은 것”이라 항변했다. 그의 충성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노철래 의원은 지난 2008년 18대 총선 때 친박연대 비례대표 8번을 받아 당선됐다. 서 의원을 지지하는 외곽 조직인 ‘청산회’ 중앙회장을 맡은 적도 있다. 이번에 서 의원이 공천을 받을 때 공천장을 노 의원이 대신 수령했다. 보통은 후보의 선거사무장이 대신하는데 노 의원이 나선 것이다. 이 밖에도 서 의원에게는 당내에 김을동, 조원진 등 친박연대 사람들이 있다.
서 의원에겐 이런 아랫사람뿐 아니라 정치적 동지도 기세등등하다. 강창희 국회의장과 청와대 김기춘 비서실장, 외곽에서는 홍사덕 민족화해협력법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이 그들이다. 그는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원로그룹과 끈끈하게 연결돼 있다. 서 의원 입에서 ‘당권’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데도 당권주자로 회자되는 것에는 이런 세력들이 무시하지 못할 위치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무성 의원은 스스로 세력화를 도모해야 할 상황에 있다.
물론 서·김 의원 모두 약점은 분명하다. 서 의원은 과거 정치자금 수수 비리 전력이 주홍글씨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으로선 잘한 공천이지만 설거지를 해야 할 새누리당으로선 뼈아픈 당선과 같다”고 말한다.
김 의원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의혹 사건의 피의자다. 지난 10월 중순 검찰로부터 우편진술서를 받아 답변을 작성 중이라고 한다. 문재인 민주당 의원은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에서 직접 조사를 받았는데 김 의원은 왜 서면 조사를 받느냐며 형평성 문제까지 제기돼 조만간 검찰 소환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결과에 따라 김 의원은 앞으로 행보가 달라질 수도 있다.
새누리당 한 중진 의원은 “지금은 두 군데에서 호루라기를 불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부는 곳이 늘어나면 의원들은 눈치만 보며 납작 엎드리게 된다”며 “당내 다원화 구도가 처음이어서 우왕좌왕하는 우스운 꼴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결국 110명이 넘는 초선들이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서·김 두 의원의 향후 행보는 초선을 향하고 있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