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도 따라 몸값 매겨… 20억 편취
노숙인과 지적장애인을 노리는 인신매매단이 최근 검거됐다. 사진은 노숙인들이 한 시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양평경찰서 실종팀은 택시와 버스의 이동경로를 중심으로 신 씨의 소재 파악에 나섰다. 실종팀의 수사가 진행 중이던 7월 5일 처음으로 신 씨의 행적이 발견됐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동사무소에서 12시경 신 씨의 주민등록증이 재발급된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 여기저기서 석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오후 2시에는 동대문구청에서 신 씨의 인감이 발급됐고, 오후 4시에는 신 씨의 명의로 휴대전화 4개가 개통됐다. 오후 5시에는 또 다시 신 씨의 인감 6통이 발급된다. 단순 가출 사건이 아닌 것을 인지한 경찰은 범죄에 기인됐다고 판단, 강력팀에게 수사를 맡겼다.
경찰은 신 씨의 행적이 드러난 은행과 휴대전화 가게의 CCTV를 바탕으로 추적에 나섰다. 신 씨를 데리고 다니는 인물은 시시각각 바뀌었다. 신 씨의 주민등록증이 발급된 곳에서는 조직의 유인책인 일명 ‘찍새’ 여성과 남성이 목격됐다. 같은 날 신 씨의 명의로 인감이 발급된 곳과 휴대전화가 개통된 곳에는 각각 다른 남성이 동행했다. 이들 조직은 철저하게 역할분담이 된 점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어 소재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경찰이 신 씨를 찾은 것은 가출 신고 10일 후인 7월 11일이었다. 인천 지역 동사무소에 수사협조를 요청한 경찰은 “신 씨로 보인다”는 동사무소의 연락을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구출 당시 신 씨는 또 다른 조직원과 함께 인감을 발급받으러 온 상태였다. 함께 온 남성은 경찰을 피해 달아났다.
양평경찰서 유주흥 강력팀장은 “길을 잃은 신 씨에게 한 여성이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접근해 유인했다고 한다. 슬리퍼 차림으로 나섰다던 신 씨의 옷차림이 바뀌어 있었다. 신 씨가 감금된 동안 물리적인 폭력은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유 팀장은 “신 씨가 지적장애1급이었지만 기억력이 꽤 좋았다.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지만 신 씨의 진술을 토대로 일당의 소재 파악에 나섰다”고 밝혔다.
경찰은 신 씨의 행적을 역추적해서 용의자들의 동선을 파악했다. 인신매매단의 ‘찍새’ 여성 오 아무개 씨(여·56)는 길을 잃은 신 씨를 유인한 후 동대문 경동시장 부근의 한 다방으로 데려갔다. 이어 오 씨는 신 씨를 목욕 시키고 증명사진을 촬영한 후 주민등록증 재발급 신청을 했다. 이후 오 씨는 은행으로 피해자를 데려가 통장과 카드 등을 개설한 뒤 인신 매도책에게 “바지(피해자를 지칭하는 은어)가 나왔다”며 신 씨의 신병을 인계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를 넘겨받은 인신 매도책 일당은 피해자를 오피스텔에 감금시킨 상태에서 ‘마이크레딧’ 사이트 등을 이용해 신 씨의 신용등급을 확인했다. 신용등급을 확인한 후에는 평소 친분이 있는 핸드폰 대리점으로 데려가 신 씨 명의의 최신형 핸드폰을 개통시켰다. 이후 여러 곳의 행정기관을 데리고 다니며 인감증명서 및 주민등록등본 등을 발급받은 뒤 인신 매수책에게 현장에서 몸값을 받은 뒤 발급받은 서류 등과 함께 신 씨의 신병을 넘겨 매도했다.
피해자를 넘겨받은 인신 매수책 일당은, 자금책, 인력관리 및 카드깡, 행동책 등으로 역할분담한 뒤 미리 범행을 위해 마련한 오피스텔 등 숙소에 피해자를 감금시켰다. 신 씨도 이 과정에서 열흘간 감금됐다. 인신 매수책 일당은 피해자의 신용한도를 높이기 위해 재직증명서 등을 위조, 신용대출 및 신용카드 등을 개설하기도 했다. 이들은 일명 카드깡이나 피해자 명의로 고급차량을 출고한 후 대포차량으로 판매 유통했다. 또 피해자 명의로 유령법인을 설립한 후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만들어 판매하는 수법으로 현금화해 편취했다.
정신지체장애인인 신 씨(위 사진 오른쪽·아래 사진 왼쪽)가 실종 당시 인신매매단 조직원과 대포폰을 개설하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됐다. 아래는 또다른 조직원과 행정기관에서 서류를 발급받는 모습.
경찰은 수사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탐문수사에 나서는 한편 전화 통화 내역을 조회했다. 그러다 인신 매수책 일원의 번호가 한 중국집을 통해 발견됐다. 경찰은 이들 일당의 근거지를 확보했다. 피해자 신 씨가 감금되어있던 오피스텔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경찰은 지난 7월 24일 이 오피스텔에서 인신매매 조직원 3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경찰은 “현장 검거 당시 또 다른 피해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날 검거된 3명은 인신 매수책으로 이들 3명 중 1명만이 다른 역할을 하는 점조직과 연락을 하고 있었다. 역할마다 움직이는 팀이 달라 자신들끼리도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체포한 인신 매수책 일당을 이용해 함정수사에 들어갔다. 이후 총책이었던 ‘김 사장’ 김 씨를 비롯해 현재까지 12명의 조직원이 구속되고 6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경찰이 파악한 피해자는 11명, 피해금액은 20억 원에 달했다. 범행에 사용된 컴퓨터 4대와 대포폰 37대 등도 압수했다. 경찰은 달아난 ‘찍새’ 2명은 추적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범행 수법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포통장 판매
이번에 검거된 노숙인 인신매매단의 범행 수법은 치밀했다. 이들 일당은 교도소 동기이거나 사회에서 선후배 사이로 알게 된 자들로, 각자의 실명이나 인적사항을 철저히 숨긴 채 활동했다. ‘노 상무’와 ‘김 과장’, ‘김 사장’ 등이 이들이 사용하는 호칭이었다. 서로의 실명도 얼굴도 모르는 상태였다. 이들은 대포폰으로 연락하고 거래도 대포통장으로 했다. 공범이 검거되었을 경우 수사기관에 다른 공범의 신원이 파악되지 않게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치밀하게 점조직으로 운영하며 범행을 일삼았다.
이들 일당은 피해자들 대부분이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악용했다. 행정기관에서는 본인이 방문할 경우 신분증 재발급 신청이나 다량의 인감증명발급 등에 아무런 제지가 없다. 이들 일당은 사리분별력이 떨어지는 피해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쪽지에 필요한 신분증과 서류목록 등을 적어 주었다. 이것을 피해자로 하여금 담당 공무원에게 보여주게 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서류를 발급받는 수법을 사용했다.
해당 인신매매단은 관련기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여러 곳의 행정기관과 은행을 번갈아가며 필요한 서류 발급과 계좌 개설을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또 평소 친분이 있는 핸드폰 대리점에서만 피해자 명의의 대포폰을 개통시켰다. 또 피해자들을 감금시킨 오피스텔 등을 수시로 옮겨 다니는 등 계획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이들은 인터넷 ‘마이크레딧’ 사이트를 통해 유인된 피해자의 ID를 생성한 후 피해자의 신용등급을 조회하고, 그 등급(3등급 750만 원, 4등급 650만 원, 5등급 550만 원, 6등급 450만 원)을 인신 매수책에게 알려줬다. 인신 매수책은 직접 신용등급을 조회(고정 비밀번호 공유)한 뒤 신용등급에 따라 구매의사를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이들은 피해자를 대표자로 한 유령 법인을 11개 설립한 후 법인 1개당 대포통장 10개씩을 개설했다. 이렇게 개설된 대포통장은 10개를 한 묶음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에 100만 원에 팔려나갔다.
또 이들 일당은 피해자들 명의로 개설한 신용카드를 이용해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 등에서 마치 고가의 가전제품 등을 구매한 것인 양 결제한 뒤, 카드깡 업자에게 수수료 12%를 제공한 뒤 나머지 금액을 현금으로 건네받았다. 이들은 이러한 수법으로 피해자들 모르게 신용대출을 받는 등 수억 원을 편취했다.
현재 피해자 전원은 신용불량자가 된 상태다. 피해자 신 씨의 아버지는 “3일에서 5일 간격으로 계속해서 금융기관으로부터 독촉 문자가 와서 고통스럽다”며 “밖에 나가기 좋아하던 아들이 그 이후로 밖에 잘 나가려 하지 않는다”고 울분을 토했다.
양평경찰서는 “인신매매단 총책인 김 씨가 잡히면서 피해자 명의 핸드폰(대포폰)과 피해자 명의로 설립한 법인명의 계좌(대포통장) 등을 사들인 보이스피싱 및 대출사기조직의 실체도 인지하게 됐다”며 “2차 범죄를 차단하기 위해 계속 수사 중이다”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포통장 판매
이번에 검거된 노숙인 인신매매단의 범행 수법은 치밀했다. 이들 일당은 교도소 동기이거나 사회에서 선후배 사이로 알게 된 자들로, 각자의 실명이나 인적사항을 철저히 숨긴 채 활동했다. ‘노 상무’와 ‘김 과장’, ‘김 사장’ 등이 이들이 사용하는 호칭이었다. 서로의 실명도 얼굴도 모르는 상태였다. 이들은 대포폰으로 연락하고 거래도 대포통장으로 했다. 공범이 검거되었을 경우 수사기관에 다른 공범의 신원이 파악되지 않게 연결고리를 끊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치밀하게 점조직으로 운영하며 범행을 일삼았다.
이들 일당은 피해자들 대부분이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악용했다. 행정기관에서는 본인이 방문할 경우 신분증 재발급 신청이나 다량의 인감증명발급 등에 아무런 제지가 없다. 이들 일당은 사리분별력이 떨어지는 피해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쪽지에 필요한 신분증과 서류목록 등을 적어 주었다. 이것을 피해자로 하여금 담당 공무원에게 보여주게 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서류를 발급받는 수법을 사용했다.
해당 인신매매단은 관련기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여러 곳의 행정기관과 은행을 번갈아가며 필요한 서류 발급과 계좌 개설을 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또 평소 친분이 있는 핸드폰 대리점에서만 피해자 명의의 대포폰을 개통시켰다. 또 피해자들을 감금시킨 오피스텔 등을 수시로 옮겨 다니는 등 계획적인 범죄를 저질렀다.
이들은 인터넷 ‘마이크레딧’ 사이트를 통해 유인된 피해자의 ID를 생성한 후 피해자의 신용등급을 조회하고, 그 등급(3등급 750만 원, 4등급 650만 원, 5등급 550만 원, 6등급 450만 원)을 인신 매수책에게 알려줬다. 인신 매수책은 직접 신용등급을 조회(고정 비밀번호 공유)한 뒤 신용등급에 따라 구매의사를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이들은 피해자를 대표자로 한 유령 법인을 11개 설립한 후 법인 1개당 대포통장 10개씩을 개설했다. 이렇게 개설된 대포통장은 10개를 한 묶음으로 보이스피싱 조직에 100만 원에 팔려나갔다.
또 이들 일당은 피해자들 명의로 개설한 신용카드를 이용해 인터넷 쇼핑몰 사이트 등에서 마치 고가의 가전제품 등을 구매한 것인 양 결제한 뒤, 카드깡 업자에게 수수료 12%를 제공한 뒤 나머지 금액을 현금으로 건네받았다. 이들은 이러한 수법으로 피해자들 모르게 신용대출을 받는 등 수억 원을 편취했다.
현재 피해자 전원은 신용불량자가 된 상태다. 피해자 신 씨의 아버지는 “3일에서 5일 간격으로 계속해서 금융기관으로부터 독촉 문자가 와서 고통스럽다”며 “밖에 나가기 좋아하던 아들이 그 이후로 밖에 잘 나가려 하지 않는다”고 울분을 토했다.
양평경찰서는 “인신매매단 총책인 김 씨가 잡히면서 피해자 명의 핸드폰(대포폰)과 피해자 명의로 설립한 법인명의 계좌(대포통장) 등을 사들인 보이스피싱 및 대출사기조직의 실체도 인지하게 됐다”며 “2차 범죄를 차단하기 위해 계속 수사 중이다”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