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공관들이 주재국 정부청사 근처에 밀집해 있는 것은 업무 편의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정보수집 업무와도 무관치 않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이른바 4대 강국의 대사관이 모두 청와대와 정부청사로부터 지근거리에 위치한 서울의 경우는 특히 그런 편이다.
미국 국가안보국(NSA) 전직 직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미국 시민은 물론 외국 정부, 심지어 외국의 국가 원수에 대한 NSA의 무차별적인 도청 사실이 드러나 전 세계가 분노하고 있다. 9·11과 같은 테러 방지를 명분으로 한 NSA의 도청은 독일의 메르켈 총리 등 우방국 원수를 도청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주미 한국대사관이 도청을 당했다는 보도에 대해 우리 정부가 사실 확인을 요청하자 미국은 “당신의 입장을 이해한다”며 사실상 도청했음을 시인했다. 다른 나라들의 항의에 대해서도 미국은 “도청은 모든 나라가 하는 게 아니냐”며 딴청을 피우고 있다.
우방국들이 항의하고, 재발방지를 요구한 것과는 달리 중국과 러시아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서로 상대를 도청하고 있는 터라 뭐라고 말하는 것이 쑥스러울 것이다.
냉전 시절 러시아는 미국을 능가하는 스파이 강국이었다. 러시아 스파이의 전통은 정보기관 KGB의 총책임자였던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에 오른 것으로 증명된다. 최근 들어서는 중국이 러시아 이상으로 미국의 강력한 첩보 경쟁자로 대두됐다.
첩보기술 면에서 미국은 아직도 절대 강자라고 할 수 있다. 극단적인 폐쇄국가로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정보수요로 인해 한국에서 미국의 정보수집 활동은 특히 활발하다. 국내에서 NSA 외에 중앙정보국(CIA) 요원 수십 명이 암약하고 있으며, 한미 간에 공조체제도 운영되고 있다.
NSA의 도청은 국가가 다른 국가, 또는 기업 개인 등 민간을 대상으로 행해진 것이나, 반대로 기업이 정부나 다른 경쟁 기업을 상대로 행하는 도청도 흔하다. 정보는 기업에도 사활이 걸린 요소이기 때문이다.
스노든의 폭로로 새삼 알려진 사실은 구글 야후 등 미국의 대형 IT(정보기술) 기업들이 NSA와 협력관계였다는 점이다. 개인들이 기업들에 맡긴 신상정보가 도청에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도 경계해야 할 일이고, 전방위적인 과제가 돼야 할 이유다.
도청의 폐해는 민주주의의 후퇴이자 신뢰의 파괴다. 최근 공개된 오바마 대통령이 해외여행 중 도청방지 장치가 돼 있는 천막에서 회의를 하는 사진은 도청이 미국에 부메랑이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NSA 도청이 이 시대에 전하는 아이러니한 메시지라고 하겠다.
한남대 교수 임종건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