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음주·연애 금지… 사생활 관리 ‘아이돌급’
지난 12일 오후 서울 김재규경찰학원에서 학생들이 진지한 모습으로 강의를 듣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광주 인화학교 사건, 일명 ‘도가니 사건’에서 피의자가 실형을 받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음주운전을 한 부잣집 도련님이 가장 두려워하는 처벌은 무엇일까”.
오전 9시부터 시작된 형법 수업시간. 기자의 첫 수업은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이 나열된 두꺼운 책과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강사의 질문으로 시작됐다. 어려운 법률용어에 눈과 귀가 잠시 멍해졌지만 수업 분위기에 압도돼 참을 수밖에 없었다. 범죄나 그에 가해지는 형벌에 관한 법률을 배우는 ‘형법’은 올해까지 경찰공무원시험 필수과목이었지만 2014년부터는 선택과목이 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혼란이 가중되기도 했지만 경찰이 되면 꼭 익혀야 하는 법률인 만큼 학생들은 집중력을 가지고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김재규 경찰기숙학원 원장은 “과거 이명박 정권에서 고등학생도 경찰이 될 수 있는 문을 넓히겠다며 국어, 사회, 수학, 과학을 선택과목으로 늘려 내년부터 시행하게 됐다”며 “그러나 경찰시험의 경우 남학생은 필수적으로 군대를 다녀와야만 응시가 가능하다. 2년 동안 군대에 다녀온 남학생들이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 비해 불리해지는데 절름발이식 정책이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김재규 원장.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휴식시간 10분 동안 재빨리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수험생들은 커다란 거울 앞에 대열을 맞춘 뒤 구령에 맞추어 몸을 푸는 것으로 체력단련을 시작했다. 경찰 체력 시험 종목은 100m, 1000m 달리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악력 총 다섯 종목이다. 각각 10단계로 자신의 체력이 평가되고 그에 따라 점수가 책정된다. 체력시험이 45%가 반영되는 경찰특공대를 준비할 경우 운동의 강도는 더욱 강해진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팔굽혀펴기와 윗몸일으키기 훈련이 있는 날이었다. 주변의 학생들은 일그러지는 얼굴과 흘러내리는 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훈련에 임했다. 훈련이 끝나고 힘에 겨워 터덜터덜 러닝머신으로 이동하는 기자에게 한 여학생이 “오늘은 상체운동 위주라 훈련의 강도가 세지 않았다”며 “하체운동을 하는 날이면 3일 동안 다리가 아프다”고 말했다. 순간 ‘며칠만 늦게 왔어도’ 하는 생각과 함께 정신이 아찔해졌다. 5시간의 형법 강행군에 이어 곧바로 2시간의 고강도 체력훈련에 기자의 몸은 이미 파김치가 됐다.
5시간의 형법수업에 이어 오후 3시부터 2시간의 고강도 체력훈련에 들어갔다. 기자도 ‘살인적인’ 스케줄에 똑같이 임했다. 최준필 기자
김재규 경찰기숙학원은 테스트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수험생들의 생활이 엄격하게 관리된다. 스마트폰은 물론 인터넷, 음주, 학원 내 이성교제도 금지된다. 외출은 한 달에 한번만 허용된다. 대학에서 경찰행정학을 전공한 오선정 씨(여·24)는 “외출이 한 달에 한 번이다 보니 나가면 무엇을 할지 일일이 번호를 적어서 우선순위를 정한다. 필요한 것을 구입하고, 가족과 친구를 만나 시간을 보내다 보면 하루가 모자란다”며 “처음엔 이런 생활이 불편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소중한 사람과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일일 테스트가 끝나고 곧이어 같은 식당에서 점심과 비슷한 메뉴로 저녁을 먹었다. 한 시간의 식사시간이 끝나면 곧바로 영어수업이 2시간 동안 이어진다.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의 일정중 휴식시간은 중간중간 주어진 10분 외에는 없었다.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기본수업이 끝나면 자율학습이 밤 10시까지 계속된다. 기자도 학생들도 똑같이 형법책을 보며 자율학습에 임했다. 하지만 눈꺼풀을 내리누르는 졸음과의 싸움은 어쩔 수 없었다.
10시에 자율학습이 끝나면 생활지도교사가 종례를 실시한다. 그리고 곧바로 학생들은 기숙학원 옆에 위치한 고시텔 숙소로 이동한다. 1인 1실의 방은 침대부터 책상 화장실이 오밀조밀 들어가 있었다. 보통 10시 30분 정도면 모두 소등하고 잠자리에 든다. 경찰기숙학원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었다.
경찰기숙학원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공부에 방해되는 요소를 철저하게 제거하고 자신을 통제해야 하는, 부단한 노력이 요구되는 곳이었다. 이틀째 되는 날 만난 전송현 씨(여·24). 그녀는 필기와 체력시험에 합격해 면접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전 씨는 필기합격 발표가 있는 날에도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지 않고 다음 전형인 체력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체육관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녀는 “결과는 어차피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하던 것처럼 체력단련을 하러갔다”며 “체력단련이 끝나고 필기합격 소식을 전하자 어머니께서 ‘수고했다’ 한마디 하셨는데 그제야 1년간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기자는 2박 3일의 체험기간 동안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늦은 나이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경찰공무원 공부를 시작해 그 꿈에 가까이 다가선 원정연 씨(36), 나쁜 일을 당할 뻔한 친구를 지켜주고 싶어 경찰이 되고 싶었다는 박문선 씨(25), 미국드라마를 보다 과학수사원이 되고 싶어 엉뚱한 학과에 입학했다 경찰수사관의 꿈을 다시 이루고자 경찰기숙학원으로 들어왔다는 김지아 씨(21) 등 뚜렷한 동기를 가진 수험생들도 많았다.
조성렬 생활지도교사는 “안정적이라는 장점 때문에 공무원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물론 있다. 하지만 4년간 지도교사를 하며 만나온 수험생들에게는 각자의 사연과 목표가 있었다. 그 꿈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스파르타식 기숙학원 생활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