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정부 금융권 실세들 청산?
KB국민은행이 잇단 비리 의혹이 터지며 이미지 추락은 물론 고객 피해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요신문 DB
최근 불거진 국민은행 관련 비리들은 국민은행 내의 경영진부터 영업점 직원까지, 즉 윗선부터 말단 직원까지 연루, 그동안 제대로 관리·통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나타낸다. 더욱이 국민들의 돈을 만지는 업계 1위 ‘리딩뱅크’에서 고객 피해와 직결되는 비리가 저질러진 것이기에 그 충격은 더 크다.
세 가지 각각 다른 사건으로 금융감독원의 특별검사를 동시에 받았다는 것은 ‘은행권 사상 초유의 일’로 국민은행으로서는 치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은행은 도쿄지점에서 벌어진 1700억여 원의 부당대출과 비자금 조성 의혹, 예·적금 담보대출 이자 과다 수취 혐의로 금융감독원의 특별검사를 받던 중 은행 본점 직원들이 짜고 국민주택기금채권을 위조·횡령한 사건까지 터졌다.
세 가지 모두 은행에서 발생해서는 안 될 일지만 금융당국과 검찰이 더욱 집중하는 부분은 도쿄지점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국민주택기금채권 위조·횡령 부분이다. 이 두 사건은 조사와 수사가 진행될수록 그 규모가 더 커지고 있다.
국민은행 도쿄지점의 부당 대출을 이용한 비자금 조성 혐의에 대해서는 비자금 일부가 국내로 유입, 상품권 등 구매에 3000만 원가량이 쓰인 것으로 알려졌던 것이 금감원 조사 결과 5000만 원 이상으로 불어났다. 특히 이 상품권 등이 개인적인 용도에 그치지 않고 국민은행·KB금융지주의 고위 인사에 전달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쿄지점 비자금 의혹은 일본 내에서도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산케이신문>, <도쿄신문> 등이 국민은행 도쿄지점 비자금 조성 의혹을 지적하며 일본 금융청이 금융감독원 조사에 협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국민은행의 내부 제보와 자체 조사로 시작된 국민주택기금채권 위조·횡령 사건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90억 원에서 100억 원이 넘는 규모로, 관련 직원도 3명에서 10여 명으로 늘어난 상태다. 직원들끼리 짜고 고객이 맡긴 국민주택기금채권 실물을 위조해 파는 수법으로 횡령한 것으로 알려져 국민은행 내부통제의 허술함이 비난의 도마에 올랐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행장님이 대국민사과를 통해 입장과 계획을 모두 밝혔다”면서 “그 이후 아직 특별히 변화된 사항은 없다”고 말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국민은행 사태가 전체 금융권으로 번지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시중은행 현장에서는 뒤숭숭한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KB를 파다보면 다른 곳도 자연스레 나오지 않겠느냐”면서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건이 전체로 확대될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고 털어놨다.
아니나 다를까, 금융당국은 이른바 ‘빅4’로 불리는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을 중심으로 내부통제 운영 실태를 점검할 것이라고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은행권에도 ‘사정 바람’이 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금융권 실세들로 분류된 인사들의 잔재를 청산하는 작업이 시작될 것이라는 얘기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에 불던 사정바람이 금융권으로 옮아가고 있는 형국처럼 보인다”며 “대형 은행의 현 경영진도 지난 정부 때 일에서 얼마나 자유로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즉 금융당국과 검찰의 금융권 손보기가 끝까지 갈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것. 국민은행을 중심으로 은행들은 “지난 정부 때 벌어진 일인 데다 현 경영진이 당시에 무엇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다”는 식으로 선을 긋는 분위기지만 현재 주요 경영진이 지난 정부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을 감안하면 책임이 아예 없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한편 동양그룹 사태로 궁지에 몰린 금융당국이 국민은행 일로 분위기와 비난의 시선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은 동양증권 등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못해 엄청난 피해자를 발생시켰다는 비판을 받아오던 터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동양그룹 일로 비난과 원성을 받던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KB의 일련의 사건이 때마침 터져준 것”이라며 “동양그룹 책임을 상쇄하기 위해서라도 금융당국이 더 강도 높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