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팀 홈경기엔 ‘제6의 선수’가 뛴다?
11월 20일 열린 SK와 오리온스의 경기에서 오리온스 김동욱이 심판 판정에 항의하고 있다. 경기 다음 날 김동욱의 속공 파울은 일반 파울로, 오심이 인정됐다. 사진제공=KBL
그날 이후 농구 관계자들은 “창원 LG의 다음 경기가 괜히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번 오심 논란과 LG가 무슨 상관일까. 오심 때문에 피해를 본 오리온스의 다음 상대가 바로 LG였다. 혹시나 KBL이 오리온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오리온스에게 유리한 판정으로 일관할 수도 있다는 의혹이 있었다. 다행히(?) 오리온스-LG전에서 특별히 큰 문제가 벌어지진 않았다. 그러나 구단들이 KBL 심판부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떠한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SK도 어떻게 보면 피해자다. 오리온스전 승리로 프로농구 최다 기록인 홈 경기 27연승 휘파람을 불었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러나 오리온스전에서 오심 때문에 이득을 본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그날 이후 다수의 농구 관계자들은 “마침내 올 것이 왔다”라고 입을 모았다. SK는 그동안 홈팀에게 유리하게 판정을 해주는 ‘홈 콜’의 최대 수혜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실 ‘홈 콜’은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미국프로농구(NBA)나 유럽, 국제농구연맹(FIBA) 주관 경기에서도 ‘홈 콜’은 있다. 예를 들어 공격자 파울과 수비자 파울의 경계처럼 육안으로 식별하기가 쉽지 않은 애매한 장면에서 홈팀에게 유리하게 휘슬을 불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정도를 넘으면 안 된다. 농구를 보는 수준이 높은 요즘 팬들은 대부분 SK의 잠실 경기 때 홈팀을 밀어주는 분위기가 있다고 믿는다. SK의 홈 연승 행진이 시작된 지난 시즌부터 SK를 한글 발음으로 읽은 은어 ‘스크’에 심판을 합쳐 ‘판’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구단 감독은 “SK 원정은 그냥 지고 가는 일정”이라고 표현했다. SK의 홈 경기력이 월등해서? 안타깝게도 그런 의미는 아니었다. SK와 원정경기를 치를 때마다 어떤 ‘보이지 않는 손’ 때문에 유독 경기를 풀어가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여기서 ‘손’은 ‘휘슬’로 대체하는 것이 이해하기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한선교 KBL 총재는 지난 8월 필리핀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16년 만의 세계 무대 티켓을 따낸 남자농구 대표팀의 선전에 한껏 고무됐다. 특히 이종현(고려대)을 비롯한 대학 유망주들의 급부상을 보며 즐거워했다. 한 총재는 지난해 과거 농구대잔치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는 프로-아마 최강전을 만든 인물이다. 한 총재는 아시아선수권 대회 직후 열린 제2회 최강전에 대한 기대가 컸다. 농구 부흥의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회식 자리에서 “예전처럼 아마가 프로를 이겨야 흥행이 되지 않겠나”라는 말을 수차례 하면서 고려대를 우승 후보로 언급했다. 그런데 듣는 입장에서는 후보로 언급한 것인지 자신의 바람인 것인지 쉽게 분간이 되지 않았다.
SK와의 경기에서 추일승 오리온스 감독이 판정에 항의하다가 퇴장당했다.
한 총재는 오래전부터 농구 마니아로 유명했고 비교적 솔직한 편이다. 사석에서 자신의 의견을 스스럼없이 내놓을 때가 많다. 그러나 총재의 자리에 있다 보니 구설수에 오를 때가 적잖다. 예를 들어 한 총재는 취임 이후 오세근(안양 KGC인삼공사), 김선형(SK) 등 2011년 신인드래프트 스타들과 그들의 팀이 떠야 농구 흥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다. 공교롭게도 KGC인삼공사는 오세근 데뷔 첫 해에 우승했고(챔피언결정전에서도 판정 논란이 거세게 일어났다), SK는 다음 해 파죽의 홈 연승 행진을 발판 삼아 정규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물론, 그들의 전력은 강했다. 하지만 밖에서 나오는 불만의 목소리가 그저 시기어린 질투로만 들리지는 않았다.
많은 농구 관계자들은 한 총재의 업적 중 하나로 타이틀스폰서 문제의 해결을 든다. 과거에는 인기가 떨어진 프로농구의 타이틀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우승팀이 다음 시즌 스폰서를 맡았다. 그렇다 보니 타이틀스폰서를 하고 있는 기업의 구단을 위한 밀어주기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또한, KBL이 타이틀스폰서를 맡아 화끈하게 지원할 기업(=구단)을 고른다는 소문도 있었다. 즉, KBL이 마음만 먹으면 밀어주기를 통해 얼마든지 순위 경쟁의 흐름을 ‘창조’할 수 있다는 의심이 존재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SK-오리온스전과 관련해 심판에 대한 징계가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도 많다.
KBL은 “결코 가벼운 징계가 아니다. 시즌이 끝나고 심판 평가를 할 때 이번 징계가 벌점처럼 작용해 연봉에 영향을 주고 더 나아가 재계약 불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KBL은 어떻게 심판을 평가하는지, 그 시스템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구단들도 잘 모른다. 그렇다 보니 크게 와 닿지 않는 해명이다.
박세운 CBS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