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 학생을 보며 왜 내 어린 시절이 생각이 났을까.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어 했던 엄마. 그러나 엄마가 좋아하는 것과 내가 좋아는 것은 달랐다. 한번은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서 용돈을 모두 털어 나는 안개꽃과 장미 몇 송이를 샀다. 엄마, 이거 예쁘지? 내가 엄마에게 꽃다발을 내밀자 빨래를 하다 꽃에 시선을 준 엄마는 무표정하게 이렇게 말했다. 다음부터는 그런데 돈 쓰지 마! 그때 나는 얼마나 무안하고 외로웠는지.
어렸을 적부터 외롭다고 느끼는 아이들이 많다. 요즘은 함께 느끼는 형제, 자매가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아이가 소중하다고 느끼는 것을 엄마가, 아빠가, 가까운 사람이 무시해왔기 때문이다. 열심히 놀이터에서 친구하고 모래장난을 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더럽다고, 빨리 가서 씻고 공부하라고 성화하는 엄마들의 마음은 분명 자식을 위한 것이겠으나 그것이 정말 자식의 성장에 도움이 될까.
사춘기가 된 아이는 문을 닫고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는데, 무슨 나쁜 짓을 하려고 문을 걸어 잠그느냐고. 그건 부모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훈계하는 부모는 자식에게 올인하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자식 일에 밤 놔라, 대추 놔라 할 부모일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은 숨을 막힌다.
엄마가 아이에게 올인하는 나라,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서 학원으로 지치도록 공부만 하는 아이들 때문에 가정경제가 휘청하는 나라, 그래서 아이들이 영어 수학은 잘하고 상식은 많지만 진작 자기결정권은 없는 나라, 그 이상한 나라에서는 엄마도, 아이도, 청소년도 안녕하지가 않다.
유럽에서 오래 살고 돌아온 친구가 우리 청소년들은 너무 어리다고 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엄마에게 너무 밀착되어 있고, 책상머리에서 하는 공부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다고. “유럽의 청소년들은 자기 삶은 자기가 계획해. 하고 싶은 것이 있고, 도전할 수 있는 열정이 있고,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있어. 그들은 자기 인생에 대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며 살아. 그런데 우리 애들은 이상해. 죽어라 공부하는데 자기열정도 없고 꿈도 없어. 꿈까지 부모가 꿔주잖아.”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왔던 부모가 아이에게 바라는 건 좋은 대학 들어가서 좋은 직장을 잡아 안정된 생활을 누리는 것이겠다. 그러나 그것을 꿈이라 부를 수는 없겠다. 일단 내가 무슨 꿈을 꾸고 있는지 알아채려면 나를 자유롭게 던져보고 흔들어봐야 한다.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스스로 자신이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도 알아보고, 방학 때는 여기저기 여행도 해보고, 교회도 가보고 절에도 가보고 성당에도 가보고, 친구도 많이 사귀면서 그들의 열정과도 교류해봐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안개 속에서 길이 보이듯 희미하게나마 자기 색깔이 드러난다. 자기가 무엇을 지향하며 살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된다.
수원대 교수 이주향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