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들 반칙은… 누가 심판하나요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축구협회 1급 심판 자격증을 보유한 프로축구 K리그 전임심판 중 한 명이 9월 파주NFC에서 진행된 톱(Top) 레프리 코스 교육을 받다가 무단으로 교육 장소를 이탈, 지인과 술을 마시고 새벽녘 돌아와 고성방가를 해 처벌받은 사실은 차라리 애교 수준이었다.
대전에서 5월 진행된 심판 체력테스트에서 부정행위가 나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011년까지 K리그 전임심판으로 활동하다 체력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던 모 심판이 동료 심판의 도움을 받아 뜀박질 거리를 단축시키려다 현장 감독관에 의해 적발됐다. 다행히 테스트 직전에 상황이 확인됐고, 당사자는 탈락했다.
그런데 명백한 징계감인 두 심판들에 대한 축구협회 차원의 사후 조치가 전혀 없었다. 당시 축구계에는 이재성 심판위원장이 모 심판을 비호하며 부정행위를 방조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지만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언론 보도로 뒤늦게 사실이 공개되자 축구협회는 10월에야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렸다. 이 위원장의 부당 지시가 있었다는 결론까지 나왔음에도 특별징계위원회를 통한 심판위원장 교체까지 한 달이 훌쩍 넘는 시간이 걸렸다.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는 과정이었다. 특별징계위가 두 차례나 열렸음에도 결론은 차일피일 미뤄지기만 했다. “사건 처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고 물으면 축구협회 측은 그저 “추가조사가 필요하다”고만 답했을 뿐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문제를 뿌리 뽑으려는 자세를 취하기보단 그저 조용히 사태가 수습되기를 기다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다보니 축구협회의 고위층과 심판들이 맞닿아 있어 처벌 내리는 것을 꺼린다는 불편한 말도 나왔다.
한 현역 심판은 “심판들 사이에도 일종의 라인(Line)이라는 게 있다. 줄을 잘 서면 좋은 배정을 계속 받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 당연히 고위층과 친분이 두터워야 오래 갈 수 있다”고 했다.
또 8월에는 한 여성 국제 심판이 자신이 일명 ‘몸 로비’를 통해 좋은 배정을 받았다는 소문을 퍼뜨렸다는 혐의로 유력 남자 심판 2명을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등으로 경찰에 고소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당사자들의 강한 부정과 증거 불충분 등으로 일단 무혐의로 무마되긴 했지만 축구계는 한바탕 소란을 겪어야 했다. 물론 오해의 시선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 진흙탕 심판
사실 축구협회에만 심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순간순간이 치열한 전쟁인 프로축구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예나 지금이나 좋지 않은 소문들이 많다.
지난 2013시즌 중에는 A 구단이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A 구단의 실무 책임자인 B 씨가 프로축구연맹 실무위원회에서 밝힌 충격 고백 탓이었다. B 씨는 다른 구단 실무자들 앞에서 “모 심판이 자신이 우리 팀 경기에 배정됐다고 알려왔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심판계는 이 같은 행위를 저지른 사람이 누구인지 발본색원하는 대신, A 구단을 오히려 압박했다. “대체 누가 그랬느냐. 지금 당장 밝히지 않으면 앞으로 곤란하다.” 명백한 위협 행위였다. 억울했지만 A 구단은 그저 쉬쉬하며 사태가 확산되는 걸 막아야 하는 입장이 됐다.
유감스럽게도 K리그는 잦은 판정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시작부터 그랬고, 시즌 종료가 가까워지며 우승 팀이 가려진 그 순간까지도 그랬다. 스플릿 시스템과 승강제 본격 시행 등과 맞물려 깨끗하고 정확한 판정이 필요했지만 신뢰와는 거리가 멀었다. 빤히 보이는 파울을 그대로 지나치고, 정반대의 판정을 내렸다. 정당한 몸싸움에는 카드를 꺼내들고, 시뮬레이션 액션은 건너뛰었다. 이런 모습에 구단들은 화가 치밀어도 그저 침묵하고 참아야 한다. 자칫 언론 등 어디에라도 호소하기라도 하면 즉각 벌금이 부과된다.
그에 반해 심판들은 단 한 번도 자신들의 잘못을 외부에 떳떳하게 인정한 적이 없다. 프로연맹에서는 “심판들이 배정 금지 등 자체 징계를 내리고 있다”고 하는데 현장 축구인들은 이미 심판을 믿지 않는다. 더구나 심판 권위 훼손 등을 이유로 어느 정도 징계가 내려졌는지 공개하기를 꺼린다. 당연히 서로가 불신할 수밖에 없는 비정상적 구조다.
아마추어 축구인들도 심판들에 대해서는 고개부터 젓는다. 학원축구 입시 비리가 나올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해당 학교 감독들과 학부모, 그리고 심판이다. 상급 학교 입시 과정에서 성적이 필수적인데, 여기에 심판이 연루됐다면 이는 간접 승부조작으로도 비쳐질 수 있다. 학부형이 준 돈을 감독이 건네받아 심판에게 전달하며 “잘 봐 달라”고 하는 순간, 공정한 경기가 이뤄질 수 없다.
심판계는 지난 8월 국제 역량 강화를 통한 월드컵 심판 육성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대대적으로 공표했다. 어느 순간 명맥이 끊긴 국제 심판들을 적극 성장시키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이후 국내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여기저기서 터지자 최근 축구협회 비전 선포식을 통해 축구협회와 프로연맹으로 나뉜 심판 행정을 일원화해 통합 관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임 (심판) 계약제를 폐지한 대신 자유경쟁 등 객관성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복안인데,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구조에서 실현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땅에 떨어진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하는 게 내년 시즌 심판들이 할 일이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