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의 ‘왼팔’로 불린 안희정씨가 지난 14일 밤 구속수감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표정1>
안씨는 구속이 결정된 14일 오후 검찰청사의 포토라인에 서서 “대한민국이 새로워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안씨는 비관적인 표정을 감추고 애써 밝은 표정을 지어보이려 했다. 그는 검찰에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정치권이 더욱 깨끗해질 것”이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표정2>
안씨는 지난 12일 검찰에 출두하기 직전 지인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현실정치와 선거라는 진흙탕 싸움 속을 헤치고 나왔으니 어찌 내 바짓가랑이에도 진흙이 묻어 있지 않겠습니까. … 내 바짓가랑이에 묻어 있는 진흙의 많고 적음을 갖고 자위하거나 합리화하지는 않겠습니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받을 만한 도덕적 권위를 확보하는 일이 문제 해결의 출발이며 이는 솔직한 반성이 선행돼야 성립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표정3>
안씨는 역시 검찰 출두 직전 평소 친하게 지낸 정치권의 한 인사와 만나 심경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 인사가 전하는 안씨의 얘기는 이렇다. ‘이번에 다 안고 가겠다. 구시대의 마지막 기차의 마지막 칸이 되겠다….’ 그는 이렇게 해석했다. ‘희정이가 혼자 다 뒤집어쓰고 가겠다는 뜻이다.’
위의 세 가지 표정들은 안씨가 노무현캠프의 불법 대선자금 문제의 최종 책임이 자신에게 있으며, 자신이 법적 책임을 짐으로써 다른 모든 것에 대한 면죄부를 얻겠다는 의도를 드러내주는 것이라는 해석과 통한다. 안희정 독박론은 몇 개의 다른 상황 속에서도 드러난다.
우선 주목할 것은 썬앤문의 문병욱 회장이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에 주었다는 1억원의 행방과 관련된 부분이다. 안씨보다 먼저 검찰에 소환됐던 이광재 전 실장은 이 돈을 ‘안희정에게 줬다’고 진술했고, 안씨는 이를 시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곧이 곧대로 믿으려고 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씨 진술의 신빙성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썬앤문쪽 1억원의 행방과 관련해 안씨가 모두 뒤집어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 역시 안희정 독박론과 맥락이 통하는 얘기다.
썬앤문 1억원의 행방과 관련한 또 하나의 의문점은 열린우리당 쪽의 태도다. 대선 때 노 캠프의 공식적인 자금 수급 총책이었던 이상수 의원은 당초 이 돈이 당에 유입되지 않았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유입됐을 수도 있다며 말을 바꾸었다. 처음에 이광재씨가 당에 전달된 것 같다는 주장을 했을 때 부인하다가 나중에 안씨를 경유해 당에 유입됐다는 진술이 나오자 번복한 것이다.
전달자로서의 안희정 역할이 드러나면서 당 재정의 흐름을 잘 알고 있는 인사들 역시 일제히 ‘안희정 역할론’을 거들고 나왔다. 안희정 독박 시나리오에 힘을 실어주는 정황들이다.
일부 검찰 관계자들이 이 시나리오에 ‘동참’하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검찰 조사 결과 노 캠프의 비공식 후원라인에서 벌어진 모든 자금 흐름이 노무현 후보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는데도 이 부분에 대한 명확한 수사 의지를 밝히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 이광재씨 | ||
그렇다면 안희정 독박 시나리오는 결국 노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겉으로는 검찰이 현직 대통령의 ‘왼팔’을 사법처리한 것으로 보이나, 이는 노 대통령 보호색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한나라당은 검찰 수사에 대해 “몸통을 보호하기 위한 솜방망이 수사”라고 폄하하면서 불법 대선자금 수사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한나라당 등 야당 내에서는 “장수천의 실제 소유주인 노 대통령을 직접 조사하라”는 촉구가 이어지는 형국이다.
안희정씨가 구속된 강금원씨와 사전 모의해 입을 맞추며 사건의 은폐를 시도한 점 역시 노 대통령의 왼팔인 안씨의 개입 사실이 밝혀질 경우 그 여파가 곧장 노 대통령을 겨냥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한 행위다. 장수천 빚 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노 대통령을 의식해 강금원씨가 노 대통령 최측근인 안씨에게 돈을 줬다면 이는 곧 노 대통령에게 정치자금을 건넨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정가 일각에선 이 연장선상에서 안씨를 뛰어넘어 여권 최고위층 차원에서 사건 실체 은폐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좌희정 우광재’로 불리며 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여겨졌던 두 사람의 운명은 지금 엇갈리는 것으로 보인다. 안씨는 구속돼 치명상을 입었고, 이씨는 일단 풀려나 재기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두 사람은 지난 대선 후에도 처지가 엇갈렸다. 이씨는 당당히 청와대에 입성한 반면 나라종금 사건에 휘말린 안씨는 당에 남아야 했다. 엇갈린 운명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좌희정 우광재 두 사람 사이에 권력투쟁이 벌여졌으며, 그 결과 안씨가 당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순망치한’의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몰이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제 관심은 과연 안희정 독박 시나리오가 끝까지 유지될지에 쏠린다. 이를 전망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검찰쪽의 다음과 같은 시각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특검법안에 명시된 대상자 3인 중에 최도술은 이미 구속됐고, 양길승은 더 나올 게 거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광재밖에 없다. 특별검사로서는 뭔가 결실을 맺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이광재가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요컨대 검찰 수사에 이어 특검수사가 시작되고 ‘살아 남은’ 이광재씨에 대한 집중적인 수사가 이뤄지면 그 역시 ‘희생양’의 운명을 비켜가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즉 안희정 독박 시나리오가 원안 그대로 유지된다고 보기가 어렵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