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앞에 선 회장님들 ‘비상구는 없다’
2월 선고를 앞두고 있는 이재현 CJ. 구윤성 기자
이석채 전 회장은 KT를 경영하는 과정에서 부동산을 헐값에 매각하는 등 1500억 원대 횡령·배임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서 네 차례나 소환조사를 받았다. 두 사람은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검찰은 두 회장에 대해 상당부분 조사를 마친 만큼 조만간 사법처리 방향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김진태 검찰총장이 지난 12월 취임 후 검찰의 신뢰 회복을 위해 세밀한 부분까지 수사지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기업인에 대해선 구속기소가 ‘원칙’이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지난 12월 19일 검찰의 사전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한 고비를 넘겼지만 재판에서도 위기를 넘길지는 미지수다. 검찰은 영장 재청구 없이 조 회장과 그 아들들을 불구속기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달 중 최종수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인신구속이란 최악의 상황을 면한 조 회장은 재판에 대비해 법무법인 김앤장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조 회장은 1997년 이후 효성물산 등의 부실을 털어내기 위해 1조 원대의 분식회계를 통해 1000억 원대의 탈세를 하고 차명재산을 운용한 의혹을 받고 있다. 횡령과 배임액은 700억~800억 원대다.
2월 선고를 앞두고 있는 김승연 한화 회장. 임준선 기자
지난해 실형을 받은 대기업 회장들도 올해 진행될 재판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게 된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서울중앙지법에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2000억 원대 횡령·배임·탈세 혐의로 기소됐는데, 이달 중 심리를 마치고 2월에는 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현재 신장이식수술 등으로 구속집행정지 상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대법원의 최종심을 남겨놓고 있다. 상고심은 사실관계를 판단하는 1, 2심과 달리 법률 적용에 잘못이 있는지만 따지는 법률심이다. 최 회장은 항소심에서 횡령 등의 혐의로 1심과 같은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그의 동생 최재원 수석부회장도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2심에서 최 회장과 공범으로 인정돼 징역 3년 6월을 받고 법정구속됐다.
이에 따라 특별한 상황변화가 없는 한 항소심의 형이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SK 측은 공범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 대한 선고결과에 따라 파기환송될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도 최종 판결을 앞두고 있다. 현재 서울고등법원에서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이다. 검찰은 지난 12월 26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지난 1, 2심과 같은 징역 9년에 벌금 1500억 원을 구형했다. 선고일은 2월 6일. 한화그룹 관계자는 “파기환송심이어서 밖에서는 여러 정황상 집행유예 선고로 풀려나는 시나리오를 이야기하고 있으나 내부적으로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속기소가 점쳐지고 있는 이석채 KT 전 회장(왼쪽)과 현재현 동양 회장.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 사면법 개정안에는 대통령 특별사면 대상을 제한하는 특정범죄의 종류를 명시하고 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공갈, 횡령, 배임, 재산 국외 도피, 금융회사 임원 수재 등이다. 과거 기업인들이 형사처벌을 받은 이후 대통령이 슬그머니 사면하는 관행을 없애겠다는 취지다.
정부도 이 같은 방향으로 법 개정에 찬성하고 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9월 국무회의를 통해 ‘사회 지도층에 대한 법집행 공정성 강화 현황 및 향후 계획’을 보고했다. 황 장관은 이 자리에서 경제사범에 대한 사면 복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주변에선 관련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박 대통령의 임기 내 기업인 사면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굳이 법으로 대통령 사면권을 제한하지 않더라도 박 대통령 스스로 사면에 관한 원칙을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대기업 회장들이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집행유예를 받거나 형량이 낮춰지는 선처를 기대할 수 없는 분위기다. 이제 기업인이 사면 대상이 되는 시절도 갔다고 보면 된다”면서 “사회의 변화에 맞게 기업들의 경영자세도 달라져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