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쳐도 모자랄 판에… 같은 팀끼리 볼다툼
한선교 KBL 총재(왼쪽)와 방열 대한농구협회 회장. 사진제공=KBL, 리터칭=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유재학 대표팀 감독은 필리핀 대회가 끝나자마자 귀화 선수 영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표팀의 귀화 선수 쿼터는 이승준의 몫이었지만 그보다 뛰어난 미국이나 유럽 출신의 선수를 영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유재학 감독은 “대회가 끝나자마자 연맹, 협회와 대화를 나눴다. 우리도 귀화 선수의 영입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협회와 KBL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대회가 끝난 시점은 8월 중순이다. 약 5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귀화 외국인 선수 영입 준비가 얼마나 진행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단 1%도 진행되지 않았다.
방열 회장은 대회가 끝나고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국제 대회에 “귀화 선수를 포함한 멤버를 내보내는 것이 현재 저희가 갖고 있는 목표”라고 밝혔다. 이 발언이 귀화 선수의 영입 추진을 공식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실질적으로 대표팀을 이끌어가고 있는, 쉽게 말해 돈줄을 쥐고 있는 KBL의 태도가 돌변한 것이다. 대표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방열 회장이 먼저 귀화 선수의 영입을 천명한 것을 두고 한선교 총재가 섭섭함을 느낀 것 같다”고 귀띔했다.
무슨 뜻일까. 이 관계자는 “귀화 선수를 데려온다는 것은 남자농구 대표팀 역사에 남을 큰 변화인데, 그 일을 한 총재가 주도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방열 회장의 인터뷰가 나간 이후 KBL 고위층은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귀화 선수의 영입과 관련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 “유재학 감독이 원하니까 생각해보겠다”는 식으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KBL은 “귀화 선수의 영입에 대한 모든 내용은 먼저 국가대표 협의회에서 논의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필리핀 대회 이후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국대협이 소집되지 않았다. 당연히 영입 가능한 귀화 선수가 누구인지, 얼마의 금액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여전히 제자리걸음 상태다.
대표팀 운영을 두고 벌어진 대한농구협회와 KBL 사이의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FIBA가 봤을 때 대표성은 협회에게 있다. 협회를 통해 모든 일 처리를 한다. 그런데 협회가 가진 결정적인 문제점은 재정 능력이다. 대표팀 운영을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만 재정 상태가 열악한 협회가 감당하기에는 벅차다. 그렇다 보니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KBL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협회와 연맹 관계자들이 나란히 모인 국대협이 구성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KBL도 답답하다. KBL은 현실적으로 접근하지만 협회는 자존심만을 앞세운다. 한 농구 관계자는 “사실상 대표팀 운영은 몇 년 전부터 KBL이 해왔고 또 앞으로 해나간다고 봐야 하지만 생색은 협회가 내려고 한다”며 구조적인 문제점에 한숨을 내쉬었다. 두 기관이 대표팀 운영의 주체가 되다보니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12월 16일. KBL 회의실에서 이사회가 개최됐다. 대표팀 감독 선임에 대한 안건이 포함돼 있었다. 시즌 중반에 대표팀 감독 선임을 논의한 적은 거의 없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사회 결과 지난해 농구 월드컵 진출을 이끈 유재학 울산 모비스 감독에게 올해 대표팀 지휘봉을 맡기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우승팀 감독을 그 해 대표팀 사령탑에 앉히는 제도를 손질한 것이다. 모비스 관계자는 “대표팀 운영의 연속성을 위해 그렇게 결정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유재학 감독은 담담하게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지만 불만이 없진 않다. 농구계가 2014년 국제대회의 중요성을 제대로 파악했다면 필리핀 대회가 끝나자마자 감독 선임을 비롯한 모든 준비를 시작했어야 한다는 게 농구계의 중론이다. 유재학 감독은 “시즌 중반에 감독을 결정한 것이 아쉽다. 지금은 소속팀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귀화 선수의 영입 문제는 물론이고 언제 어디서 모여 훈련을 시작하고 연습 상대는 누구로 할 것인지 등 대표팀 전력 강화를 위한 구상이 전혀 없다. 올해는 8월 말에 농구 월드컵이, 9월 중순에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관계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체계적인 준비와 관리가 필요하다. 그런데도 국대협은 소집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상황에 협회와 연맹 모두 나 몰라라 하고 있다.
모비스 구단도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한 관계자는 “모든 준비를 해놓고 대표팀 감독을 모시는 모양새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러다가 나중에 감독에게 책임만 떠넘기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했다.
작년 7월 말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드림팀(the dream team)’으로 불리는 미국 남자농구 대표팀의 합숙 훈련이 시작됐다. 세계 최강 미국조차 13개월 뒤에 열리는 농구 월드컵을 대비해 이처럼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 국제대회를 통해 농구 인기의 반등을 꿈꾸는 한국 남자농구가 세계 무대를 향해 내딛고 있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꿈은 이루어진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그냥 이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박세운 CBS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