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적대는 동안 증거 인멸 ‘뻔하다’
법원은 조 행정관과 조이제 서울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54)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면서 “현재까지 범죄 혐의의 소명 정도 등에 비춰볼 때 현 단계에서 구속수사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채군 정보유출 의혹과 관련해 시민단체의 고발이 들어온 지 두 달이 지난 지난해 11월 26일 서울 서초구청 행정지원국과 조 국장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 하면서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갔다. 공개수사 초기 조 국장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따라 서울시와 국정원 등에서 근무하며 원 전 원장을 지근거리에서 7~8년 가까이 보좌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정원으로 의혹이 눈길이 쏠렸다.
하지만 이 같은 검찰 내외부의 추측은 바로 뒤집혔다. 조 국장은 검찰조사에서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소속 조오영 행정관을 지목했다.
조 국장은 조 행정관에게서 채 군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문자메시지로 받아 채 군의 신상정보를 확인해 알려줬다고 진술했다. 서울시 공무원 출신인 조 행정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 당시 청계천 복원추진본부 공사담당관 등을 맡아 청계천 공사 실무를 책임진 인물이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중 측근인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 밑에서 총무시설팀 총괄행정관으로 근무해왔다.
조 국장이 혼자 책임을 떠안고 갈 의사가 전혀 없음을 내비치며 조 행정관의 이름을 폭로했을 때만 해도 검찰 수사가 예상보다 쉽게 풀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청와대는 조 행정관에 대한 감찰결과를 발표하면서 평소 친하게 지내온 중앙공무원교육원 국장급인 김 아무개 씨의 요청을 받은 것이고 조 행정관의 ‘개인적 일탈’이라며 확산되는 청와대 개입설을 일축했다.
조 행정관이 이명박 정부 막바지부터 박근혜 정권 초기까지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 근무한 김 국장을 지목하자 다시 의혹의 눈길은 곽상도 전 민정수석에게 쏠렸다.
조오영 청와대 행정관(왼쪽)과 조이제 서초구청 행정지원국장이 지난해 12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는 모습. 구윤성 기자
결국 수사 초기 조 행정관에 대한 압수수색도 하지 않은 검찰은 별다른 물증도 확보하지 않은 채 청와대 발표와 조 행정관의 거짓진술에 휘둘려 수사를 진행하다가 헛발질만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설상가상으로 조 행정관에 대한 구속영장마저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검찰은 이번 사건의 물증은 물론 조 행정관으로부터 제대로 된 진술을 받아내기도 힘들게 됐다.
검찰은 법원의 영장 기각으로 수사가 어렵게 됐다면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의 핵심적인 증거들은 검찰이 수사를 미적거리는 동안 이미 인멸됐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만 검찰이 정보유출의 또 다른 경로인 채 군이 다녔던 초등학교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국정원 정보관이 개입한 정황을 포착하면서 이번 수사에 새로운 물꼬를 틀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정원 측은 송 씨가 유 교육장에게 정보 조회를 요청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채 전 총장의 혼외아들 소문을 듣고 송 씨가 개인적으로 문의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또 국정원은 유 교육장으로부터 ‘법적으로 문제가 있어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을 뿐 정보유출에 관여한 바가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취임 후 이 사건의 빠른 처리를 지시했지만 조 행정관을 축으로 한 청와대 라인과 송 정보관을 축으로 한 국정원 라인 수사 모두 아직까지 별다른 진척이 없다. 여기에 1월 검찰 중간간부들 인사에서 수사팀의 담당 부장검사와 검사가 전격 교체됐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조 행정관 등을 사법처리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채동욱 전 총장 뒷조사 수사는 청와대 개입설, 이명박 정권 개입설, 국정원 개입설 등이 난무하는 가운데 실체적 진실 규명과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윤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