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 사진이란 무엇이었을까. 그의 사진은 그저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히 한때의 추억도 아니고, 기록도 아니고, 고발하기 위한 수단도 아니었다. 그의 사진은 구도의 흔적이다. 그는 보이는 사진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와 의미를 일깨우고자 했다. 때로 그 세계가 불편하고 두려운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상식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뉴욕 국제사진센터(IPU) 개인전 이후, 세계적 작가가 김아타 선생이 오랜만에 전시회를 열고 있다. 313 아트프로젝트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 ‘리 아타: on-air’에서 그는 그를 세계적으로 발돋움하게 해준 온-에어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그는 특정 장소에서 조리개를 8시간이나 열어둔 채 사진들을 찍었는데, 그것이 마법이었다. 사진 속에서는 움직인 모든 것이 사라져 있었다. 그 이전 박물관 작업 속에서 살아있는 개체를 예술로 승화시킨 그가 온 에어 작업 속에서는 움직이는 개체를 해체시켜버린 것이었다. 8시간이나 도시의 한복판에 서있던 그의 카메라는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움직이는 것은 사라진다. 빠르게 움직이면 빠르게 사라진다.
움직임을 거둬낸 도시를 찍은 사진의 첫 인상은 차갑다는 것이었다. 그 차가운 사진 앞에 서 있으면 이상하게도 차분해진다. 무너진 바벨탑 앞에, 파르테논신전 앞에 서 있는 기분이 그럴까. 예루살렘성을 지은 솔로몬의 영화도, 파르테논신전을 지은 페리클레스의 영화도 한철이다! 그리고 우리의 숙명은 영화 뒤에 몰락을, 몰락 후에도 평화로울 수 있는 힘을 찾아가는 것이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처럼.
나는 생각한다. 바로 그 힘이 그를 인달라 작업으로 인도했을 거라고. ‘인달라’란 그가 만든 언어로 인도와 만다라의 합성어다. 그는 색즉시공의 인도정신과 그 자체로 완전한 세계인 만다라의 정신을 한 장의 사진으로 보여주고 했다. 그것은 어떤 작업을 거치는 것일까?
그는 도시마다 다니며 만 장의 사진을 찍었고, 그것을 일일이 포갰다. 만 컷이 합쳐져 희뿌연 한 장의 사진이 된 것이다. 형태도 없이, 색깔도 없이, 텅 비어 있는 것 같은 그 사진은 실은 세상의 모든 풍경을 담은 것이었다. 그가 찍고자 했던 것은 색즉시공, 공즉시색이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왜 승복이 회색인지를. 그 색은 세상의 모든 색이 무너진 색이고, 또 세상의 모든 색을 담은 색이었다. 만 장의 사진을 버리며 그가 얻은 것은 형태 없는 한 장의 사진이 아니라 텅 빈 충만이었다.
수원대 교수 이주향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