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운영비 1억’ 협회는 지금 ‘벌집’
대한야구협회가 대회 운영비 1억 원 증발로 인해 검찰 수사가 예상되면서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협회 상임이사들의 사표 제출은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가 발단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부터 문체부는 대한야구협회 감사를 진행하며 몇 가지 의혹을 찾아냈다. 대표적인 게 2012년 8월부터 9월 초까지 서울 목동구장에서 치른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였다.
문체부는 당시 대회 운영비를 면밀히 분석하다가 대회를 치르고 남은 운영비 가운데 1억 원 이상의 큰돈이 증발한 걸 발견했다. 문체부는 협회에 이 사실을 통보하고, 소명을 요구했지만, 협회는 정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협회 관계자는 “우리도 그렇게 큰돈이 어떻게 증발됐는지 알 수가 없다”며 “설령 증발이 사실이라도 누가 횡령을 했는지 알 길이 없다”고 털어놨다.
협회가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덴 이유가 있다. 당시 대회 운영을 맡았던 협회 핵심 관계자들이 모두 협회를 떠났기 때문이다. 한 아마추어 야구인은 “지금으로선 이 돈을 찾으려면 검찰 수사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협회의 소명이 부족하자 최근 검찰에 협회를 고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만약 문체부가 협회를 고발하면 자동적으로 검찰 수사가 이뤄져 사라진 거액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전임 집행부에서 벌어진 일인데 어째서 현 집행부 이사들은 재신임을 묻는 사표를 낸 것일까.
협회 윤정현 전무는 “사표엔 만약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뜻과 협회장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함께 섞여 있다”며 “현 협회 집행부는 사라진 거액에 대해 일말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검찰 수사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협회는 이번엔 ‘낙하산 사무국장’ 논란에 휩싸여 있다. 발단은 이렇다. 협회는 지난해 6월 전 사무국장이 명예퇴직하고서 후임자를 구하지 못했다.
협회를 잘 아는 야구인은 “전 사무국장이 갑자기 명예퇴직을 신청해 협회에서 퇴직금을 줬는데, 이 돈을 주고 나니 새 사무국장 월급 줄 돈이 없었다”며 “그 때문에 8개월 가까이 사무국장 자릴 공석으로 남겨두게 됐다”고 귀띔했다.
사무국장 공개 모집에 응시한 프로야구 프런트 출신의 한 인사가 면접을 위해 협회를 찾았다. 오랜만에 그를 본 한 야구인이 이런저런 안부를 묻다가 “이미 사무국장은 내정돼 있는데 뭐 하러 왔느냐”고 말했다. 이 야구인은 나중에 “그저 농담이었을 뿐”이라고 변명했는데, 정작 그 말을 들은 상대는 진심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는 면접장에 들어가자마자 “이미 사무국장이 내정됐다는 말이 있는데, 그럼 우릴 왜 불렀냐”며 거칠게 따졌다. 협회는 “내정설은 사실무근이자 오해”라는 말로 이 인사를 진정시켰다. 그리고선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다면평가를 실시했다. 이때 6명의 후보자 가운데 선수 출신 A 씨의 점수가 가장 낮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협회는 애초 5명의 후보자를 추려 이병석 협회장에게 보낼 방침이었다. 이 가운데 한 명을 협회장이 선택하면 새 사무국장으로 선임하기로 했다. 하지만, 협회는 어찌된 일인지 최하 점수를 받은 A 씨를 포함한 6명의 후보자 모두를 협회장에게 보냈다.
협회장이 최종 낙점한 인사는 놀랍게도 A 씨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일부 야구인은 “어떻게 최하 점수를 받고, 그것도 모자라 최종 후보자 명단에서 제외됐어야 했을 사람이 사무국장으로 선임될 수 있느냐”며 “사무국장 내정설은 오해가 아닌 사실이었다”고 분개했다.
덧붙여 “A 씨 선임엔 한 국회의원의 측면 지원 덕이 컸다”며 “정치권의 힘으로 사무국장에 당선된 A 씨는 전형적인 낙하산”이라고 맹비난했다.
A 씨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초대 사무총장으로 야구계에선 개혁적인 인물로 통한다. 그런 그가 정치권의 힘을 빌어 낙하산 사무국장이 됐다면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A 씨는 “협회장은 고사하고, 협회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며 “세간에 거론되는 국회의원 역시 일면식이 없는 분”이라며 펄펄 뛰었다. A 씨는 “사무국장에 선임되고서 협회장으로부터 ‘아마추어 야구계 발전과 개혁을 위해 애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며 “속으로 내가 개혁적 인사라서, 사무국장에 발탁한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A 씨의 사무국장 선임을 긍정적으로 보는 야구인도 많았다. 한 고교 감독은 “A 씨는 야구인 가운데 얼마 되지 않는 출중한 행정력을 갖춘 사람”이라며 “개혁적 성향을 고려할 때 산적한 아마추어 야구 문제들을 잘 풀어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재 A 씨는 낙하산 논란 속에서도 협회 사무국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야구계는 “이병석 신임 협회장 취임 이후, 전임 협회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전국대회 축소, 주말야구 도입 등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그렇다고 신임 회장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아닌 상황이라, 도대체 아마추어 야구가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