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훈수’에 휘둘릴 수 없다
특정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는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원칙 중 하나라고 한다. 일요신문 DB
청와대와 여권 관계자들은 이런 해석에 대해 고개를 가로젓는다. 박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언론 인터뷰에 잇따라 응했지만, 이번에도 그 언론사들은 해외에만 국한됐다. 결국 국내의 특정 매체와 인터뷰하지 않는 기존의 기조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스타일 면에서 박 대통령이 이전 대통령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특히 언론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취임 후 1년 동안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은 대통령은 이전에는 없었다. 심지어 일부 대통령은 인터뷰에 응했을 뿐 아니라 신문사 창간기념일, 방송사 개국기념일 등의 행사에 축하 메시지를 보내거나 언론사 주최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 대통령과 같은 바로 전임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런 차이는 언론과 접촉하기를 꺼려하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박 대통령을 지켜본 주변 사람들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국내의 특정 매체와 인터뷰하지 않는 것 역시 박 대통령의 원칙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냥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목적을 갖고 일부러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 이유는 우선 쇄도하는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다 응할 수 없는 상황에서, 특정 매체와 인터뷰를 할 경우 그 자체로 시비 거리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칫 대통령과의 인터뷰에 먼저 성공한 언론사에 힘이 실리고 인터뷰에 실패한 언론사는 뒷전으로 밀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언론과의 인터뷰가 국민과의 소통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불필요한 논란을 낳는 화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전의 보도들과 차별성을 가져야 하는 언론의 특성상 대통령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강조점보다는 화제가 될 만한 발언들을 집중 부각시키게 되고, 이것이 오해와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생방송 기자회견에 소극적인 것과 같은 이유다.
이런 박 대통령의 언론관, 언론 대응법은 한국 언론에서 대통령 인터뷰가 사라지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다른 양태의 변화로도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청와대 발 특종, 특히 인사 관련 특종이 자취를 감췄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부터 ‘밀봉, 불통’ 등의 비판이 쏟아졌지만 박 대통령은 일관되게 인사와 정책 결정 과정에서 극도의 비밀주의를 유지했다. 심지어 첫 조각과 청와대 참모 인선 당시에는 인수위 주변에서 “신문에 난 사람은 일부러 안 쓴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박근혜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청와대에 출입하는 한 신문 기자는 “진보정권이라는 김대중 정부에서조차 지난 1998년 첫 인사 당시 국가정보원장 등의 명단이 보수지인 <조선일보>에 특종으로 보도됐었다”며 “최소한 박근혜 정부는 표면적으로 언론을 차별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정권에 의해 등용되는 언론인들의 면면이다. 박근혜 정부에선 이전 정부에 비해 언론인 등용이 훨씬 줄어들었고, 그나마 등용된 일부 인사들도 소위 ‘비주류’에 가깝다. 이전에는 보수정권에선 <조·중·동> 출신이, 진보정권에선 <한겨레> 출신이 시쳇말로 잘나갔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도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 <동아일보> 출신들과 김효재 전 정무수석 등 <조선일보> 출신, 김두우 전 홍보수석 등 <중앙일보> 출신들이 등용됐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등용된 언론인은 이남기 전 홍보수석과 윤창중·김행 전 대변인, 최형두 홍보기획비서관 정도다. 이들도 이 전 수석은 기자가 아닌 SBS PD 출신이었고 윤 전 대변인과 최 비서관은 <문화일보> 출신이었다. 김 전 대변인은 <중앙일보> 출신이지만 ‘정통 기자’는 아니었다. 이종원 전 <조선일보> 부국장이 홍보기획비서관에 기용될 것으로 전해졌으나 결국 없던 일이 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 나타나는 이 같은 변화를 관통하는 것은 ‘기존의 언론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박 대통령의 무언의 메시지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언론이 ‘밤의 대통령’처럼 국정운영을 좌지우지하려 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비정상의 정상화’로도 읽힌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언론은 언론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게 박 대통령의 소신이고, 이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이 임기 내에 국내의 특정 언론과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