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정치인들이 김대중 대통령 묘소만 참배하는 것은 어느덧 관행처럼 돼 버렸다. 2012년 대선 당시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그랬고, 민주당 당직자들이 대선 패배 후 국민들에게 사죄한다면서 대거 현충원에 갔을 때도 그랬다. 올해도 민주당 사람들은 김대중 묘소 다음에 노무현 대통령 묘소, 광주 5·18 묘역, 서울 수유리 4·19 묘역 등을 찾았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국립묘지 참배 행보는 세 대통령 묘소를 모두 참배한 박근혜, 안철수 후보의 행보와 극명하게 대조됐다. 당시 그런 협량(狹量)의 참배 방식을 보고 문재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민주당 정치인들이 김대중 대통령의 묘소만 찾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겉으로는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정치에 대한 거부감을 내세우지만, 속으로는 참배로 인한 지지층 이탈 또는 결속 이완을 우려하는 정치공학적 계산도 깔려 있을 것이다.
대결구도를 최대한 고조시켜 지지층의 결속을 강화하는 선거 전략이 유효한 경우가 있는데, 민주당 내 친 노무현 세력 중에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는 과거의 적대 세력(김종필)과 연합하여 대선에서 승리한 김대중 대통령의 선거 전략은 ‘성공한 야합(野合)’일 뿐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반대자까지를 포용해야 하는 공인으로, 개인적 또는 파당적 고려를 배제해야 하는 자리다. 전직 대통령 중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은 과도 있지만 각각 건국과 산업화에 공이 더 크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들에 대한 참배 거부가 그런 공조차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면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에 대한 의심은 피할 길이 없다.
3%포인트라는 근소한 표차의 패배로 인한 아쉬움 때문이겠으나, 민주당은 대선 패배 후 1년 내내 국정원의 선거개입 문제에 매달렸다. 하루에 유포되는 SNS 메시지만도 수백억 건에 이르는 현실에서, 국정원 댓글 100만 건을 100만 표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은 안철수 신당 절반에도 못 미치는 10%대다. 민주당은 그 원인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묘역 참배를 하지 않았다고 하나, 갔으면 세 곳 묘소 모두를 참배했을 것이다. 민주당은 안철수 의원을 닮든지, 그것이 끝내 내키지 않거든 차라리 박 대통령의 방식을 따르는 게 나을 것 같다.
국회 동서화합포럼의 경북 전남 출신 의원 25명이 지난 15일 전남 신안군 하의도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아 “동서는 하나다”를 외쳤다고 한다. 그런 화합의 정신이 오는 6월의 지자체 선거 때까지만이라도 유지돼 파당적 이기주의에 매몰된 정치를 변화시키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한남대 교수 임종건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