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와 관련해, 새해 벽두부터 정치권과 재계에 한바탕 회오리가 몰아칠 전망이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대검 중수부(부장 안대희 검사장)는 최근 “해가 바뀌면 1월 중 불법 대선자금을 받아 개인적으로 유용한 정치인들의 명단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검찰은 역시 1월 중 삼성 등 4대 그룹의 구조본부장급 이상 고위층을 공개적으로 소환해 조사할 계획임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대선자금 조성 과정의 분식회계 및 자금세탁 등 곁가지 범죄행위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정치권의 반발과 재벌기업의 비협조로 애를 먹고 있는 수사팀이 다소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이번 기회에 ‘끝장’을 보기로 마음을 먹은 것 같다”고 해석했다. 우선 기업체들로부터 받은 대선자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정치인들의 경우, 여·야를 합쳐 무려 10여 명이 검찰의 수사망에 걸린 상태다.
안대희 중수부장은 지난 17일 이 문제와 관련해 “불법 대선자금의 용처 수사는 참으로 중요한 항목”이라며 “불법자금이 선거가 아니라, 개인 유용이나 축재에 사용됐다면 반드시 몰수 추징해야 한다”고 강력한 수사의지를 피력했다.
안 검사장은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검찰 수사를 ‘편파 수사’라며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한 이날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하고, “정치자금법은 이런 불법자금을 추징 대상이자 증여세 부과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로 미루어 수사팀은 이미 상당수 정치인들이 직접 기업체들로부터 모금했거나 당에서 내려온 대선자금을 선거와 전혀 무관한 용도로 사용한 단서를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아직까지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는 여권의 ‘뉴 페이스’가 거액의 대선자금을 유용한 단서가 검찰에 포착된 것으로 알려져 진위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사정당국 소식통은 “현재 J씨, S씨 등 여권의 전·현직 국회의원 등 3~4명이 선거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고 있는데, 이중 S씨가 검찰이 말하는 ‘곧 공개될 뉴 페이스’라는 설이 유력하다”고 전했다.
물론 정치인들의 이런 비리는 지난 1997년 12월 대선과 관련한 ‘세풍’사건 때도 한 차례 문제가 된 바 있다. 검찰 수사결과, 당시 한나라당의 서상목 전 의원 등 10여 명은 이석희 국세청 차장 등이 기업체들로부터 불법 모금한 대선자금을 당에서 전달받은 뒤 이 중 각각 2백만~5억2천8백만원을 개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수사팀은 이런 ‘세풍’ 돈이 정치인의 가족과 보좌관, 이웃집 주부나 이미 숨진 사람의 이름으로 개설된 차명계좌에 입금됐다가 선거 후 가족 회식비나 주택 수리비 등에 사용된 사실을 밝혀냈다. 심지어 일부 정치인은 개인 소장용 미술품 구입비나 내연녀의 생활비로 ‘세풍’ 돈을 쓴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회창 전 총재의 경우 대선 다음해인 98년 2월 부인과 함께 지방 출장을 갈 때 항공료 등으로 ‘세풍’자금 중 2백만원을 썼던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정치인들이 불법 전용한 것으로 확인된 금액은 수표로 사용돼 추적이 가능했다”며 “따라서 실제 개인적으로 빼돌린 돈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현재 대검 중수부도 수표 추적을 통해 정치인들의 불법 선거자금 전용 혐의를 수사하고 있으며, 이 돈의 사용처는 ‘세풍’사건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정치권 인사는 “추잡하게 선거자금을 사적 용도나 치부 수단으로 사용한 사실이 공개되는 의원들은 4월 총선 출마를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검찰은 “불법 자금을 받은 정치인 가운데 수수액이 1억원 이상이면 신상을 공개하고, 5천만원 이상은 죄질이 나쁜 경우에 공개하고, 5천만원 이하는 일괄 처리할 때 공개하겠다”는 원칙을 정한 상태다.
더욱이 해당 정치인들은 한번 ‘망신’을 당하는 수준을 넘어서 형사처벌에 몰수 추징까지 당할 형편이어서 검찰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세풍’ 수사팀은 이런 저런 이유로 관련 정치인들을 소환조사도 하지 않다가 결국 “횡령죄 시효(5년)가 지났다”며 면죄부를 줬으나, 안 검사장의 말로 미뤄 이번에는 어물쩍 넘어갈 가능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세풍’사건 때처럼 언론계로 불똥이 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당시 수사팀은 중앙일간지 정치부장 출신 등 신문·방송사의 간부급 언론인 10여 명이 한나라당측으로부터 적게는 2백만원에서 많게는 1천5백만원의 ‘세풍’ 돈을 촌지 형태로 받아 쓴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검찰은 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배임수재죄 공소시효(5년)가 끝났다는 이유로 역시 소환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만약 이번에도 불법 대선자금에 언론인들이 연루된 사실이 드러날 경우 검찰이 어떻게 처리할지 주목된다. 여기에 대선자금 유용 비리와 별도로 썬앤문그룹의 문병욱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정치인들도 여·야를 합쳐 8~9명에 달하고 앞으로 불법자금 용처 수사에 따라 십수 명은 더 드러날 것으로 보여 적어도 30명 이상의 정치인이 된서리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이미 여택수 청와대 행정관과 신상우 전 의원, 양경자 한나라당 지구당 위원장 등은 수천만원대의 썬앤문 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고, 2억원을 받은 혐의가 있는 한나라당 S의원에 대해서는 수사가 진행중이다.
이진기 언론인
온라인 기사 ( 2024.12.12 10: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