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마들 오버하면 추입마가 ‘어부지리’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세 번째로 빠른 말은 라이징패스트였다. 이 말은 데뷔전에서 빠른 레이스에 가세했다가 직선주로에서 외곽으로 급사행하는 악벽을 보였다. 물론 그 다음인 두 번째 경주에선 선행을 나선 뒤 무사히 결승선까지 통과하긴 했지만 초중반 페이스가 너무 느렸기 때문에 악벽이 고쳐졌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그 다음 주목해야 할 편성상의 특징은 부진마급 중에서 컨디션 호조를 보이는 마필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마필은 추입마였다. 우선 최근 입상은 못했지만 최상의 컨디션을 보이고 있는 9번 욕심쟁이는 두어 달 전에도 이와 비슷한 편성에서 추입으로 ‘어부지리 이변’을 터트린 적이 있었고, 3번 파티레이나는 그동안 다리가 약해 강훈련도 못하고 컨디션도 떨어져 있었지만 다리 상태가 호전되면서 컨디션도 올라왔다.
정리를 하면 이 경주는 선행마 세 마리가 능력이 우세했지만 주행습성이 비슷한 스타일의 경주마였고, 특히 압도적인 인기를 끌었던 클레이샷과 딕시바니가 선행 일변도의 도주성 마필이었다는 점에서 두 마리가 선행 경합을 하다 자멸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인기 3위마인 라이징패스트도 힘들면 정상적인 주행을 하지 않는 악벽이 있는 말이었다. 실전에서도 클레이샷과 딕시바니는 선행을 나서기 위해서 죽기 살기로 뛰면서 후미권과 수백미터 이상의 거리를 벌렸지만 막판에 걸음이 섰고, 그 뒤에서 덩달아 오버페이스를 한 라이징패스트도 결승점을 목전에 두고 사행하던 악벽이 도지면서 뒤따르던 말에게 추격을 허용했다.
결과는 5위로 뛰던 욕심쟁이가 1위, 꼴찌에서 두 번째(8위)로 뛰던 파티레이나가 2위, 7위로 뛰던 8번 시크릿밸류가 3위를 차지했다.
경마의 정석 중에는 선행마가 많을 땐 추입마를, 추입마가 많을 땐 선행마를 공략하라는 말이 있다. 선행마가 많으면 선행마들끼리 경쟁하느라 ‘오버페이스’를 할 가능성이 많아 추입마가 더 유리하고, 반대의 경우엔 선행마가 그만큼 수월하게 초중반을 달릴 수 있기 때문에 막판까지 힘을 낼 가능성이 많다는 데서 착안한 전략이다. 경마장 출입 3개월만 하면 알게 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베팅전략이다. 그렇지만 재결에서 오래전부터 무리한 선행경합을 징계하면서 잊혀온 것도 사실이다. 이 경주가 끝난 후에 재결에선 딕시바니를 탄 김혜선 선수에게는 기승정지 4일을, 클레이샷에 기승한 김태훈 선수에게는 기승정지 2일 처분을 내렸다. 필요 이상의 경합을 했다는 판정이었다.
필자는 이 경주에서 베팅전략을 두 가지로 세웠다. 우선 신인인 김태훈 선수는 무조건 선행을 시도할 수밖에 없고, 그 경우 김혜선 선수는 선행을 양보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클레이샷을 축으로 한 마권을 구입했다.
두 번째는 김혜선 선수도 선행으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선행형 선수’라 선행을 양보하지 않는다면 두 마리가 경합하다 다 무너진다는 예상을 하고 그 뒤에서 편하게 따라갈 라이징패스트를 축으로 후미권의 추입마를 구매하는 작전을 세웠다. 두 번째 추리가 멋지게 맞어떨어졌지만 라이징패스트가 막판에 외곽으로 급격히 치우치며 진로를 이탈하는 바람에 적중엔 실패했다.
1월 12일 ‘이변의 레이스’를 펼친 4경주(위)와 9경주. 각각 욕심쟁이와 차이밍비카가 우승했다. 사진제공=KRA
같은 날 벌어진 11경주는 그런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1군말들의 1400미터 레이스로 치러진 이 경주에선 1번 여의골드와 7번 풀문파티가 앞서의 경주처럼 선행 일변도로 달리는 말이었고, 선두력도 비슷했다.
초반 스피드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말들이 한 경주에서 부딪친 셈이다. 당연히 초반부터 불꽃을 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경기도 그렇게 흘러갔다. 하지만 중반에 접어들기 전에 문세영 선수가 안쪽에서 머리를 맞대고 달리던 1번 여의골드의 조한별 신인선수에게 선행을 양보했다. 선행을 시도해보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동반자살’보다는 안쪽에 있는 상대를 인정해준 것이다.
물론 결과는 선행을 나서지 못했던 7번 풀문파티는 8위를 했고, 선행을 나섰던 1번 여의골드는 3위를 했다. 신인선수와 노련한 선수가 선행마를 나눠 탄 똑같은 상황에서 앞서의 경주가 동반자살로 귀결됐다면 11경주는 한 마리는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다른 것이다.
한편 편하게 선행을 나선 후 이변을 터트린 말도 있었다. 이 날 9경주는 전형적인 선행마인 1번 팍스코와 선행으로 뛰다가 최근 들어선 선입작전을 곧잘 구사하는 선행형 선입마 9번 주말환희만 선두권에서 뛸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경주 직전에 1번 팍스코가 발주대까지 와서는 경주를 취소했고, 9번 주말환희는 착지불량으로 늦출발을 했다. 문세영 선수가 기승했던 5번 차이밍비카가 선행마가 없어진 상황에서 수월하게 선행을 나섰고, 덕분에 2012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선행마 두 마리 중에서 한 두는 취소되고 한 두는 착지불량으로 자멸한 덕분이긴 하지만 늘 최선을 다하는 문세영 선수의 기승자세가 빚어낸 승리였다는 평이다. 어부지리 승리도 최선을 다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선수들도 명심하길 바란다.
김시용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