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뜩이나 ‘차떼기’로 집중적인 비난을 받고 있는 한나라당의 대선자금이 2천억원에 이른다는 새로운 주장이 나와 주목된다. 사진은 지난 18일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전경련 앞 시위 장면. | ||
이것이 사실이라면 핵폭탄급에 속하는 사안이다. 가뜩이나 차떼기 등으로 여론의 집중적인 비난을 받은 한나라당이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뚝 떨어졌는데, 이 같은 소문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당 해체 수순을 밟지 않으면 안되는 지경에 이를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최근 몇 가지의 상황들은 이를 단순한 소문만으로 머물지 않게 하는 ‘그럴듯한’ 정황을 제공해주고 있다. 다음은 최근 정치권의 한 인사가 검찰 관계자로부터 들은 후 일점일획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전달했다는 얘기 한토막이다.
“우리는 끝까지 수사합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이회창 캠프와 노무현 캠프 가리지 않고, 수사를 중단하지도 않습니다. 특히 한나라당은 정말 심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한나라당이 2천억원 가까운 돈을 썼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위해서라도 우리 검찰은 이를 끝까지 규명할 것입니다. 모두 옷을 벗을 각오로 하고 있습니다. 나 역시 내 목을 내놓는다는 각오로 수사에 임하고 있습니다.”
이 검찰 관계자와 대면한 정치권 인사는 “검찰이 나로부터 솔직한 시인과 고백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분위기 등으로 미뤄 보건대 정말로 검찰 수사가 깊숙이 진행됐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송짱’ ‘안짱’ 등으로 불리는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대검중수부장의 공개·비공개적인 발언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암시한다.
송 총장은 최근 공·사석에서 “누가 뭐라 해도 지금 이 수사는 되돌릴 수 없고 수사를 정도에 어긋나게 물줄기를 바꿀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두 사람이 검찰 수사와 관련해 의지를 피력한 부분은 “검찰의 길은 오직 한 가지,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로 요약된다.
“검찰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는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진상 규명이 돼서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할 것입니다. 내년 총선 뒤에까지도 계속됩니다. 다음 선거에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체불명의 돈이 정치권에 제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 일부 기업 관계자들 수사는 현재도 진행중입니다. 불법대선자금 전모에 대한 수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 한나라당은 2천억원 주장에 대해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사진은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노무현 정권 규탄대회. | ||
대검의 핵심 관계자는 이에 덧붙여 “삼성과 LG에 (불법 대선자금이) 더 있다”고 했다. 1백억이니 1백50억이니 그렇게 나왔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라는 말도 했다. 이 관계자는 “삼성이나 LG와 관련해 지금까지 나온 수사 결과가 다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수사 종결 시점은 따라서 이들 돈의 용처가 모두 해명될 때까지라고 한다. 검찰은 이와 관련, 양당 공히 여러 가지 공식적인 또는 비공식적인 계좌에 대한 추적 작업을 본격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이 5대 그룹은 물론 10대 그룹, 20대 그룹으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으며 거의 전모 파악을 마쳤다는 얘기가 나돈다. 일각에서는 1백대 그룹 전체에 대한 수사로 확대하는 문제를 강력 검토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특히 삼성에 대한 정밀조사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등의 자금 조성과 관련, 확인할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경우 여죄를 캐기 위해 검찰이 이학수 본부장을 다시 부를 계획이라는 점도 확실한 것 같다.
이런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터져나왔다. “지난 대선 당시 선관위에 신고한 법정 선거비용이 2백60억∼2백80억원 규모인 걸로 알고 있다. 신고하지 않은 불법자금을 합쳐도 3백50억∼4백억원 규모를 넘지 않는다”는 게 발언의 골자다. 민주당이 대선을 마치고 선관위에 신고한 선거비용은 2백74억1천8백만원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발언을 근거로 선관위 신고비용을 기준으로 삼아 추산해보면 최소 76억원에서 최대 1백26억원이 선거비용으로 초과 사용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관심은 이것이 노 대통령의 지난번 언급, 즉 ‘10분의 1’ 발언과 어떤 연관이 있느냐다. 노 대통령의 이번 언급은 한나라당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일 수도 있다. “내가 밝혔으니 너도 밝히라”는 메시지일 수 있다는 뜻이다. 여론의 힘을 빌려 한나라당에 대해 검찰 수사에 협조할 것을 재촉하는 면도 없지 않다.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에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검찰 주변에서 2천억원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노 대통령의 ‘10분의 1’ 발언이 한나라당의 대선자금 규모를 대략적으로 파악한 뒤 나온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내비치고 있다.
물론 한나라당측은 ‘대선자금 2천억설’에 대해 터무니없는 ‘낭설’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검찰 일각과 여권이 ‘야당 죽이기’를 통해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 등에 물타기를 하려는 의도라는 것.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현재 밝혀진 것보다 대선자금 규모가 다소 커지긴 하겠지만 2천억에 이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한나라당의 대선자금은 일단 신고비용 기준으로 2백26억3천여만원이다. 여기에 검찰이 밝혀낸, 4대 재벌로부터 받은 돈 5백2억원이 있다. 이렇게 되면 한나라당의 대선자금은 최소한 7백28억원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는 검찰 수사가 진행될수록 이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최돈웅 의원이 대선 무렵 1백대 기업들에 전화를 걸어 후원금 납부를 요구했고, 자신도 직접 20∼30개 기업에 전화를 했다고 언급한 점에 비춰 한나라당이 받은 불법 대선자금은 지금보다 훨씬 더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은 편이다. 당사 건축비 부채 상환 50억원, 합법을 가장한 불법적인 특별당비, 여기에 앞으로 확대 진행될 기업 수사 등에서 얼마의 ‘검은돈’이 더 나올지, 그 결과 한나라 불법대선자금 2천억원설의 향배가 어떤 식으로 귀착될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