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전략 부재…‘박심’만 바라본다
오는 6월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에 나설지 저울질 중인 새누리당 A 중진 의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벌써 1월인데 말이야, 당이 지방선거 (출마자) 방향성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어. 완전히 새 사람으로 갈 것인지, 국회에서 빼서 갖다 끼울 건지…. 보통은 이맘때쯤 어떤 분위기라도 풍겨야 하는데, 이건 완전히 오리무중, 깜깜소식이야.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이) 흥행하려면 인지도가 있는 사람이 나오면 되는데 그러면 현역에서 뽑아 가면 될 거잖아. 하고 싶어 하는 (나 같은) 사람도 많은데 말이야. 마음만 바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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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출마를 저울질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당 지도부의 선거 전략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은숙 기자
“출마해 볼 생각이 더 크긴 한데, 당도 청와대도 어떻게 생각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현역 배제라느니, 관료 우대라느니, 싸그리 출전 후 모조리 경선이라느니 설만 무성하고 팩트(사실)는 확인이 안 된다. 당이 느슨한 것인지, 전략이 없는 건지.”
지방선거에 눈을 돌린 새누리당 현역 의원들이 ‘멘붕’ 직전이라 한다. 당 지도부가 가진 생각이나 전략이 공유되지 않고, 작은 귀띔조차 자취를 감췄다는 푸념도 있다. 청와대에 아무리 촉수를 뻗어도 걸려드는 게 없다고 한다. 함구령이 내려졌다는 말도 있고, 정말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는 말도 돌아온다. 여당 사정에 밝은 정치권 한 인사는 이런 말을 했다.
“선거의 여왕이 빠진 첫 선거다. 불이 났는데 박근혜라는 소방수가 없는 격이다. 골수 표를 자극할 인물이 없고,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해 본 지도자가 없다. 큰 캔버스를 놓고 그림을 그려본 인물이 없다는 말이다. 야당에선 손학규, 문재인, 안철수 등 이른바 스타급이 전국을 돌아다니는데…. 깜깜한데 출구는 안 보이는, 그런 형국이랄까.”
다른 인사는 “새누리당에 대중적인 인물이 없다는 것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과 같다”며 “관객 몰이를 할 수 있는 사람, 나가면 악수를 부르는 사람이 대중성을 갖췄다고 본다면 지금 당에는 그런 인물이 한 사람도 없다. 작은 바람이라도 일으킬 순풍형 인사가 없는 것이 당 지도부의 큰 고민이 아닐까 한다”고 했다.
서울시장을 두고 벌어진 일들은 더 큰 혼란을 낳고 있다. 의원들과 정치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다. 홍문종 당 사무총장이 정몽준 의원 차출설을 흘렸을 때만 해도 정치권은 현역 차출설로 해석했다. 그래서 움직여보려고 당 원내 지도부 라인에 팩트 확인에 나섰는데 전혀 다른 말이 돌아왔다. ‘정몽준보다는 김황식’이라는 것이었다. 그게 언론에 보도되면서 현역들의 분위기는 출렁였다.
그러면서 당·청이 관료 출신 중 각 지역에 맞는 단체장 후보자를 발굴 중이란 말이 회자했다. 박 대통령이 교수 출신을 좋아해서 학계에서 사람을 찾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서울시장은 정몽준, 경기지사는 김황식’이라는 출처 불명의 소식도 전해지면서 현역들이 더 미궁에 빠졌다는 것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이렇게 평했다.
“당이 완전히 전략부재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서울시장? 간보다가 배부를 격이랄까. 처음에 김황식 영입설이 나왔을 때만 해도 조금은 신선한 맛이 있었다. 호남 출신의 새누리당 후보, 최장수 국무총리, 공직사회의 우호적 평가 등등. 그런데 몇 개월간 너무 뜸을 들였다. 김 전 총리도 ‘사실무근→제안 없었다→미국행→제안 온다면 생각해보겠다’ 등 오락가락하면서 공분을 샀다. 정몽준도 나오니 안 나오니 왔다 갔다 하면서 잰다. ‘서울시장 누가 시켜준대?’라고 화내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어 문제다.”
설을 앞두고 현역들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지고 있다. 설 차례상을 둘러싸고 대화가 오갈 때 자기 이름이 거론되어야 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앞서의 A 의원은 “괜히 되지도 않을 곳에 숟가락을 얹었다가 지역구민의 미움을 살 수도 있고, 그러다 다른 현역이 먼저 치고 나가는 바람에 부각이 안 될 수도 있고 참 괴롭다”며 “수도권에서 일단 그림이 그려져야 전체 그림이 나올 텐데…”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국회 과반 의석 붕괴를 막고자 현역들은 빼지 않을 것이란 설도 조금씩 뭉개지고 새로운 소문이 퍼진다. 민주당에서 중진 현역들이 대거 광역단체장 출마로 유턴하면서 ‘민주당과 의석이 동시에 빠지면 과반수가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라는 논리가 생긴 것이다. 현재 새누리당에선 서울, 경기, 부산, 대구, 울산에 현역 의원들이 대거 기웃거리고 있고, 민주당도 전남·북, 광주, 경기에 현역 의원들이 도전하고 있다.
게다가 정치권 일각에선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5분의 3이 되지 않는 이상 과반은 의미가 없다. 그러니 현역을 빼서 무조건 집권당의 유력 정치인이라는 인물론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새누리당의 지방선거 전략은 민주당 등 야권에 대응하는 수동형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에 최근 새누리당 현역들이 힘을 부쩍 내기 시작했다. 부산시장 출마 후보군 중 한 명인 서병수 의원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온두라스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다는 것이다. 부산시장에 ‘서병수 띄우기’로 해석되면서 현역들이 청와대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여권의 한 소식통은 이렇게 봤다.
“박 대통령이 직접 선거에 나설 수는 없지만 박심이 어떤지는 넌지시 보여줄 수 있다. 서 의원 같은 경우엔 박 대통령 본인 대신 이 사람을 보내겠다고 국·내외적으로 밝힌 셈이 됐으니 서 의원의 급이 업그레이드됐다고 분석할 수 있다. 부산 사람들도 그렇게 해석하지 않겠는가. 공천 전까지 박 대통령의 동선을 파악한다면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어느 지역 행사장에 가는지, 그 행사장은 누구의 지역구인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정치권은 결국 지방선거 전략도 박심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새누리당의 모습을 지적하고 있다. 언제까지 청와대 하달만 바랄 것이냐는 목소리다.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