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검사실 조사에 변호사로서 입회했었다. 20대 검사와 30대 서기가 앉아 조사를 시작했다. 서기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미란다원칙을 알리고 조사를 시작했다. 검사나 서기는 먼저 왔다 간 고소인의 진술에 완전히 세뇌된 것 같았다. 갚을 능력이 없는데 왜 손해를 보게 했느냐고, 서기는 사기죄로 몰아가고 있었다. 조사받는 의뢰인은 그들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독기와 분위기에 질려 완연히 허둥대고 있었다.
그는 갚을 능력이 충분한 재산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파트와 차가 있었다. 그걸 얘기하라고 옆에서 말했다. 갑자기 서기가 발끈해서 “왜 수사의 틀을 깹니까? 조서 작성은 내 권한입니다. 그건 안 받아 적을 거예요”라고 소리쳤다. 꼼수로 똘똘 마는 걸 뻔히 눈뜨고 묵인하라는 얘기였다.
“아까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왜 얘기했죠?”
화가 나서 되물었다. 그때 옆에 있던 검사가 소리쳤다.
“고문하나 안하나 변호사는 그것만 지켜보면 돼요. 당신 같은 기성 법조인들은 다 썩은 세대야. 불쾌해. 그리고 진단서를 제출했는데 영남제분 사모님 사건 후 난 진단서를 절대 안 믿어.”
젊은 검사는 논리를 비약해서 나의 세대 전체를 욕했다. 나의 의뢰인은 사정이 있어서 입원해 있었다는 진단서를 제출했었다. 젊은 시절 나도 모르는 늙은 변호사가 나타나면 싫었다. 그래도 노골적으로 그런 모욕적인 말은 자제했었다. 젊은 검사와 서기는 오전부터 밤 12시 가까이까지 하루 종일 거의 쉬지 않고 기록을 읽고 모니터를 보면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수사는 고된 중노동이었다. 힘들다 보니 인내하지 못하고 그런 말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공중에 하얀 달이 걸린 한밤중 검찰청을 나오면서 나는 묘한 두 감정을 맛보았다. 이성으로는 그들의 수고와 노력을 칭찬해줘야 했다.
그런데 감정은 검찰청 하얀 유리창에 침을 탁 뱉어주고 싶었다.
공권력은 국민을 위해 공정하게 사용하라고 법이 준 권한이다. 설익은 검사들이 권력의 완장을 차고 미숙한 언행을 하면 국민들의 마음은 떠나 버린다. 특정인을 위한 지나친 해결사 노릇 역시 당하는 측에서는 폭력이나 다름없다.
검사가 성형수술을 한 연예인을 위해 병원장에게 압수수색을 하겠다고 협박을 하고 배상을 받아주었다가 구속된 사건이 일어났다. 인격과 경험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법무장관은 겸손과 함께 믿음이 깊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총장 역시 내공을 쌓아온 인격적인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장관과 총장은 설익은 후배 검사들이 홍시같이 익은 인간으로 변할 수 있도록 그 떫은맛을 빼주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변호사 엄상익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