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차는 부담금만…” 투정에 정부 ‘후진’하나
박근혜 대통령 인도 방문 당시 경제사절단을 주관한 대한상의가 ‘저탄소차 협력금’ 제도 기준완화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자동차 러시아 딜러점. 사진제공=현대자동차
이와 관련,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은 지난 1월 21일 박근혜 대통령의 인도 방문 성과를 설명하는 기자간담회에서 느닷없이 “국산차 업체한테 벌금을 받아 외국 수입차 업체에 보조금을 주는 결과를 낳고, 독일 일본 미국 등 다른 선진국에는 전례가 없다”며 “제도의 시행을 늦추거나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이 당초 목적인 인도 방문에 대해선 짧게 언급한 뒤 장황하게 저탄소차 협력금제만을 강조해 ‘인도 경제사절단에 동행한 현대자동차 쪽에서 강력한 주문을 받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관련 질문에 “(현대차) 고위 임원에게서 들었다. 현대차에서 정부 쪽에도 건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대표주자 격인 현대차가 저탄소차 협력금제의 기준 완화를 위해 ‘발품’을 팔았다는 얘기다. 이 부회장은 기자간담회가 끝난 뒤 로비로 해석될 가능성이 엿보였던지 서둘러 “특정 기업을 거론한 것은 적절치 않으니 자동차 업계로 해달라”고 요구했다.
인도 방문 경제사절단의 귀국 시점에 제도 시행에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온 환경부가 돌연 재평가 작업에 들어간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박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맞춰 구성된 경제사절단은 인도(15∼18일)의 경우 대한상의가 주관했고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이 포함돼 있었다. 윤상직 산업부 장관과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도 동행했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사절단으로 참여하는 것은 기업들이 투자나 사업에서 발생한 애로를 양국 간 최고 채널의 힘을 빌려 해결하려는 차원인 동시에 수행단 내부에서 업계 의견을 정부 측에 전달하는 기회도 된다”면서 “인도 경제사절단이 돌아오자마자 자동차 업계의 최대 현안인 저탄소차 협력금제에 대한 이야기가 급속히 전개된 과정을 보면 거기서 모종의 이야기가 오갔다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정기국회 때 현대차가 저탄소차 협력금제의 도입을 늦추고 규정을 완화하려 여야 의원들을 백방으로 찾아다니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면서 “가뜩이나 국내 매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이 제도가 가격경쟁력을 더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아 초미의 현안이었다”고 전했다.
저탄소차 협력금제 시행은 이미 지난해 예고된 사안이다. 환경부가 마련한 초안대로라면 현재 판매 중인 현대차의 주력 차종인 ‘쏘나타’와 ‘싼타페’, 기아차의 ‘K5’, 쌍용차 ‘코란도C’ 등 중형차(2000㏄급)에도 부담금(25만∼75만 원)이 붙게 된다. 소형인 ‘i30’, ‘엑센트(이상 현대차)’ 등도 25만 원의 부담금이 적용되는 구간에 속해 있다. 부담금 최고액 구간(700만 원)에는 ‘에쿠스 3.8GDI(현대차)’, ‘체어맨 2.8(쌍용차)’이 해당된다.
이렇듯 외제차에 유리하게 설계된 부담금 때문에 자동차 업계는 “주력 차종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고 반발해왔다. 자동차 업체로선 부담금을 차 값에 반영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어서 이를 떠안거나, 저탄소 차량을 개발해 내놓아야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환경부는 이런 반발에 따라 초안의 구간 설계에서 경차나 일부 소형차는 보조금 구간에 넣고, 일부 중형차(2000㏄급)는 중립구간에 포함되도록 조정해 3월 중 확정안을 내놓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현대차의 쏘나타나 기아차 K5 등은 중립구간에 속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의 반발은 그동안 환경 관련 규제와 세계적인 기후변화 대응에 게을리해온 탓이 크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연비, 탄소배출 억제 등의 기술에서 뒤떨어져 있는 약점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국산차 보호를 내걸어 회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강광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럽, 일본에 비해 중·대형차 비중이 월등히 높은 우리나라는 차량 구매단계에서부터 경·소형차를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경·소형차 비중은 유럽, 일본의 경우 60% 안팎인데 비해 한국은 다양한 경차 지원제도에도 불구하고 34%에 그치고 있다.
자동차 업계가 “저탄소차 협력금제를 실시하는 선진국이 없다”고 주장해온 것도 사실과 다르다. 프랑스는 지난 2008년 ‘보너스-맬러스’ 제도를 도입해 새로 등록되는 모든 승용차를 대상으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차량에는 부담금(맬러스)을 징수하는 대신, 이러한 세수를 바탕으로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는 차량에는 보조금(보너스)을 지급하고 있다.
저탄소차 협력금제의 도입 근거는 오염자부담 원칙이다. 경·소형차에 비해 중·대형차가 탄소배출량이 더 많아 지구온난화의 피해를 더 많이 초래하는 만큼 그 구매자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자는 것이다. 소비자로서도 구입 단계에서부터 소비자가 청정연료, 우수한 연비, 저탄소배출 차량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