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파 ‘마지막 탑승 경쟁’ 후끈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작년은 예열 과정일 뿐이었다. 영욕으로 점철됐던 2013년은 이미 흘러간 과거였다. 한국 축구의 2014브라질월드컵을 향한 진짜 도전이 시작됐다.
축구계 일각에서는 3주 일정으로 진행 중인 이번 동계훈련을 놓고 ‘반쪽짜리’라고 폄훼하기도 했다. 물론 유럽과 중동 등 해외 무대에서 뛰는 선수들이 거의 대부분 빠진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번 소집 멤버군은 대부분 국내파로 구성됐다. 해외파는 딱 3명이었다. 모두가 아시아권 선수들이었다. 일본 J리그에서 활약 중인 왼쪽 풀백 김진수(알비렉스 니가타)와 김민우(사간도스), 작년까지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FC서울에서 뛰다 중국 슈퍼리그에서 제2의 축구 인생을 시작할 하대성(베이징궈안) 등이다. 나머지 20명은 모두 K리그 클래식과 챌린지(2부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었다.
이 가운데 몇몇만이 전문가 집단에게 “최종 엔트리에 합류할 만하다”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고, 홍명보 감독 역시 “최종 엔트리 구상의 80%는 완성됐다”고 밝힌 바 있었다. 결국 20%의 가능성을 놓고 경쟁이 진행 중인 셈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반쪽짜리’처럼 비쳐졌기에 의미는 더욱 커졌다. 어렵고 희박해 보이는 생존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태극전사들의 진정한 열정이 확인된 자리였다. 홍 감독도 “모두 최선을 다했다. 이구아수에서 진행된 훈련 내내 선수들의 하겠다는 자세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선수들 대부분이 “월드컵이 진짜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느꼈다”고 입을 모았다. 지극히 이국적인 정취의 브라질을 느낄 새가 없었다. 극심한 심적 압박감 탓인지 하루 한 차례 진행된 공식 풀 트레이닝을 제외한 여가 시간에도 숙소를 나가는 선수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선수단과 동행했던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선수들은 대표팀에 소집될 때마다 거의 같은 마음가짐을 보인다. 주위에서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해도 단 1% 희망이라도 엿보이면 이를 잡기 위해 모든 걸 쏟아낸다고 한다. 유럽 일부 국가들은 충성도 없는 선수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는데 우린 그런 상황을 전혀 걱정하진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22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의 LA 콜리세움에서 훈련을 하기에 앞서 선수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브라질월드컵 최종 엔트리는 5월 중 발표될 예정이다. 앞으로 남은 4개월 동안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에 긴장의 연속이다. 모든 포지션에서 적게는 2대1, 많게는 3~4대 1의 혹독한 경쟁이 이뤄지고 있다. 홍명보호는 오래전부터 4-2-3-1 포메이션을 기본으로 활용해왔다. 동계훈련에 참여한 23명의 엔트리에서도 이러한 형태에 맞춰 선수들이 선발됐다.
원톱 스트라이커로는 김신욱(울산 현대)과 이근호(상주 상무)가 자리했고, 섀도 공격수 겸 공격형 미드필더로 이승기(전북 현대)와 송진형(제주 유나이티드)이 나섰다. 왼쪽 윙 포워드로는 염기훈(수원 삼성)이 김민우와 경합했고 반대쪽 측면은 고요한(FC서울)과 김태환(성남 일화)이 경쟁을 펼쳤다.
수비형 미드필더도 2명씩 2개 그룹 운용이 가능했다. 박종우(부산 아이파크)-이명주(포항 스틸러스)-이호(상주 상무)-하대성 등이 포진했다. 포백 수비라인도 2대1의 경쟁구도였다. 김진수와 이용(울산 현대)이 각각 좌우 풀백으로 재신임된 가운데 김대호(포항 스틸러스)와 박진포(성남 일화)가 희망가를 불렀고 중앙 수비수로는 강민수(울산 현대)-김주영(FC서울)-김기희(전북 현대)-이지남(대구FC) 등이 있었다. 골키퍼 진용은 예전과 변함없이 정성룡(수원 삼성)-김승규(울산 현대)-이범영(부산 아이파크)의 3파전.
하지만 문제는 유럽과 일부 아시아권 멤버들로만 따로 베스트 11을 구축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팀에서 해외 무대를 뛰는 선수들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난해 갑작스레 불거진 대표팀 내분설의 중심에 서면서 비난을 받았고, 또 요즘엔 극심한 부침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분명 한국 축구의 한 축을 담당해온 것도 사실이다. 당장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기성용(선덜랜드)과 구자철(볼프스부르크)이 경쟁에 끼어들 수 있고, 좌우 윙 포워드 역할을 손흥민(바이엘 레버쿠젠)-이청용(볼턴 원더러스) 등이 소화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왼쪽 날개와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용 가능한 김보경(카디프시티)도 있다. 물론 기성용과 구자철은 전진 배치도 가능하다. 여기에 최근 설왕설래를 빚고 있는 박지성(PSV 에인트호번)의 대표팀 복귀 여부에 따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패턴의 경합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렇다면 최전방은 어떨까. 요즘 들어 비록 존재감이 퇴색되긴 했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선수가 두 명이나 있다. 박주영(아스널)과 지동원(선덜랜드)은 조금만 페이스가 살아날 수 있다면 대표팀에 폭발적인 시너지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수비진 역시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와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 박주호(마인츠05) 등이 중앙부터 측면까지 커버할 수 있다.
이름값에서는 국내파 위주의 동계훈련 참가 멤버가 비 소집 멤버에 비해 다소 뒤질지 모른다. 하지만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부여하는 게 ‘홍명보 스타일’이다. 청소년 대회와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 과거 연령별 대표팀을 이끌 때에도 전혀 예상치 못한 깜짝 카드를 기용하면서 톡톡히 효과를 봤다.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후에도 새 얼굴을 불러들여 핵심 자원으로 키웠다. 이영표(은퇴)의 빈 자리를 훌륭히 채워내는 김진수와 오른쪽을 철통같이 막고 있는 이용도 바로 홍 감독의 작품이다. ‘신(新) 에이스’의 탄생이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다.
이구아수(브라질) =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