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2년차…원칙과 뚝심만으론 안된다
현오석 부총리(왼쪽에서 두 번째)가 최근 신용카드사들의 개인정보 대량유출 사태와 관련해 국민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7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4년 경제정책방향 논의를 위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입장하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1월 6일 신년 구상 발표 및 내·외신 기자회견, 이후의 공식 회의 발언 등을 통해 드러난 박 대통령의 신년 국정운영 구상을 곱씹어 보면 그의 복잡한 심경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박 대통령의 신년 구상은 크게 봐서 두 가지 축으로 이뤄졌다.
첫째는 ‘경제 재도약 드라이브’다. 취임 첫해였던 지난해가 본격적으로 일을 하기 위한 사전 정지기였다면 박 대통령에게 올해는 ‘정말로 일을 하는 해’다. 이를 위해 박 대통령이 제시한 수단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각종 규제 완화, 세일즈 외교 등이다. 정부가 2월 말까지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해 발표할 예정인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창조경제 실현 등을 통해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서비스산업 육성과 투자 활성화에 방점을 둔 규제 완화 대책은 2월 임시국회에서 각종 법안 처리로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통령은 27일 회의에서 “2월 임시국회에서 주요 법안들이 통과되지 못할 경우 지방선거 등으로 인해 9월 정기국회에나 법안 통과가 가능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경제활성화나 민생안정 등을 위한 정책들을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신년 구상의 또 하나의 축은 ‘개혁 드라이브’다. 이미 취임 첫해부터 ‘비정상적 관행의 정상화’를 내걸고 각종 개혁에 시동을 걸었지만, 올해에는 그 초점을 특히 공기업을 비롯한 공공부문 개혁에 집중하는 양상이다. 박 대통령은 이미 코레일노조 파업을 정면돌파하면서 물러섬 없는 공공기관 개혁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2월 중 각 부처별로 산하 공공기관 개혁안을 확정하고, 그 내용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로 돼 있다. 박 대통령은 “공공기관 부채를 대통령이 직접 챙기겠다”고 호언했고, 현오석 부총리와 윤진식 산업통상부 장관 등은 산하 공공기관장들을 불러 모아놓고 “부채 감축 등 경영상황을 개선할 자신이 없으면 물러나라”고 윽박지르기까지 했다.
전반적으로 내치, 그 중에서도 경제에 집중함으로써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겠다는 게 박 대통령 신년 구상의 핵심인 셈이다. 박 대통령이 현오석 부총리를 경질하지 않은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같은 신년 구상은 설 연휴 이후 본격적인 실행 단계로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 출발점은 2월 5일부터 시작되는 부처별 업무보고다. 하지만 이런 박 대통령의 구상이 계획대로 이행될지에 대해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이미 예상됐던 변수뿐 아니라 생각지도 못했던 환경 변화가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어려운 까닭에서다.
무엇보다도 주목되는 것은 카드사 개인정보 대량유출 사태에서 비롯된 ‘내치의 위기’를 박 대통령이 순탄하게 넘어설 수 있을지 여부다. 이는 대통령의 재신임에도 불구하고 현오석 부총리가 경제수장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지와 직결되는 문제다. 이미 민주당은 박 대통령까지 싸잡아 비판하면서 현 부총리에 대한 즉각 경질을 주장하고 있다. 그의 거취가 쟁점으로 부상할 경우 2월 임시국회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또 현 부총리가 국민의 신임을 받을 수 있을지도 여전히 불분명하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점 말고 2차, 3차 피해가 발생하거나 또 다른 정보 유출 사례들이 무더기로 나올 경우 더 이상 현 부총리를 감싸고 돌 수는 없을 것”이라며 “청와대의 사인이 없었다면 벌써 여당 지도부가 현 부총리 경질을 요구했을 것”이라고 현 부총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전했다.
공기업 개혁 등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는 ‘개혁의 위기’를 정부가 어떻게 극복할지도 관심사다. 정부가 코레일 파업에서는 원칙 대응을 통해 노조 파업을 무력화시키는 성과를 거뒀지만, 공기업 전체를 대상으로 한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몰고 올 반발력은 이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클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공공기관 부실과 부채 증가에는 역대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도 상당하다는 점에서 개혁을 명분 삼아 막무가내로 찍어 누를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른 새누리당 관계자는 “공기업 개혁은 결국 부실 사업 정리와 인건비 축소가 핵심”이라며 “아무리 공기업 부실이 심각하다고 해도 대규모 구조조정이 가시화되면 엄청난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시작된 신흥국들의 금융위기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도 무시 못 할 변수다. 미국 등 선진국들의 양적완화 축소에서 비롯된 신흥국들의 위기는 한국과 같은 중진국 역시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다. 실제로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한국 경제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던 전례가 있다. 이번에도 증시와 외환시장이 출렁이는 등 위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외부 충격에 의한 것이라 해도 경제가 위기상황에 빠질 경우 사실상 개혁이나 경제체질 개선은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
장성택 처형 후 예측 불가능성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북한 역시 박 대통령의 신년 국정운영에 영향을 미칠 주요 변수다. 박 대통령은 확고한 안보태세 속에 원칙 있는 대응으로 평화통일 기반을 구축해 나가겠다는 구상이지만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이미 어디로 튈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일치된 진단이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이른바 ‘1말3초(1월 말∼3월 초) 위기설’을 공개적으로 언급할 정도다.
남북관계가 경색을 넘어 충돌 단계로까지 나아갈 경우 그 여파는 비단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내치와 경제에 집중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구상이 안보 정국에 완전히 묻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