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6초 ‘순간의 사고’ 부시가 ‘판’ 키웠다
2004년 2월 슈퍼볼 하프타임 쇼 도중에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잭슨의 겉옷을 잘못 떼어내면서 잭슨의 가슴이 전세계로 생중계됐다.
2004년 2월 1일 텍사스의 휴스턴 구장. 슈퍼볼 XXXVIII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가 캐롤라이나 팬더스에 14-10으로 앞선 상태에서 하프타임을 맞이했고, 재닛 잭슨이 등장했다. 마이클 잭슨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이미지의 의상을 입은 그녀는 넘버 원 히트 송인 ‘All for You’로 포문을 열었고 그녀의 불후의 명곡 중 하나인 ‘Rhythm Nation’이 이어졌으며, ‘The Knowledge’의 일부분이 짧게 삽입되었다.
사실 잭슨은 2002년 슈퍼볼 하프타임 쇼의 주인공이 될 예정이었다. NFL을 대표하는 커미셔너인 폴 태글리아뷰는 “재닛 잭슨 같은 톱 스타가 하프타임 쇼에 서 준다면 크나큰 영광”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9·11 테러 이후 쇼는 추모 콘셉트로 바뀌었고, 그 주인공은 아일랜드의 록 그룹 U2가 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잭슨은 드디어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이날의 선곡은 당시 정치 상황과도 맞물려 있었다. 2004년은 부시가 재선되던 해. 슈퍼볼이 있던 시점은 선거 기간이었고, 당시 쇼를 기획했던 MTV는 젊은 유권자들의 정치적 참여를 촉구하는 ‘록 더 보트’(Rock the Vote) 캠페인 중이었다.
잭슨은 여기에 호응하여, 일단 히트곡으로 시작한 후 자신의 노래들 중 사회적 의식을 지닌 두 곡인 ‘Rhythm Nation’과 ‘The Knowledge’를 이었다. 무대 규모도 대단했다. 26명의 댄서, 360명의 밴드 멤버들 그리고 60명의 드럼 라인이 재닛과 함께 쇼를 채웠다. 당시 MTV는 하프타임 쇼 역사에서 굵직한 한 획을 긋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었고, 그런 의도를 안 ‘인터스코프’의 지미 아이어빈은 프로듀서에게 뒷돈을 주더라도 잭슨 대신 자신의 소속사 뮤지션인 노 다우트와 메리 제이 블라이즈와 에미넘을 무대에 올리려고도 했다. 하지만 MTV와 NFL은 요구를 거절했다.
재닛 잭슨의 엄청난 대중적 인기와 팝 아이콘으로서의 위치가 쇼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MTV의 사장이었던 빈센트 토플러는 “슈퍼볼 관객들이 영원히 기억할 무대”를 만들려고 했고, 쇼의 프로듀서였던 샐리 프래티니는 “스타디움을 록 콘서트가 펼쳐지는 무대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그러면서 “쇼의 엔딩에 깜짝 쇼가 있을 것”이라며 언론에 살짝 예고했다. 프래티니의 언급은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그 깜짝 쇼는 재닛 잭슨의 가슴 노출이 되고 말았다.
재닛 잭슨의 노래 세 곡이 끝나자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Rock Your Body’를 부르며 등장했다. 잭슨과 팀버레이크는 끈적한 춤을 추며 무대를 절정으로 끌어올렸고, 마지막 가사인 “난 이 노래가 끝날 때 널 알몸으로 만들 거야”(I gotta have you naked by the end of this song)라는 대목에서 팀버레이크는 잭슨의 가슴 부분 의상을 뜯어내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때였다. 옷이 뜯어지면서 잭슨의 가슴이 드러났다. 유두 부분은 피어싱을 한 주얼리 장식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오른쪽 가슴은 생중계되었다. 당황한 방송진은 황급히 카메라를 돌려 스타디움의 전경을 보여주는 공중 숏을 보여주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1초도 안 되는 순간이었지만, 정확히 0.56초의 노출이었지만, 이후 그 효과는 대단했다. 이른바 ‘니플게이트’(Nipplegate), 다소 민망하지만 굳이 번역하자면 ‘젖꼭지 추문’의 시작이었다.
재닛 잭슨의 홍보 담당자인 스티븐 후베인은, 원래는 붉은 레이스가 있는 브래지어만 드러낼 예정이었지만 팀버레이크가 잘못 떼어내면서 벌어진 작은 해프닝이라며 사고의 규모를 축소시키려 했다.
하지만 반응은 가혹했다. 미국의 연방방송통신위원회(FCC)는 방송사인 CBS에 55만 달러의 벌금을 내라고 명령했다(이 일은 이후 8년 동안 법정 투쟁으로 이어졌고 2012년에 벌금은 무효화되었다). 무려 50만 통에 달하는 항의 전화를 받자, 방송사는 더욱 잔혹한 반응을 했다. 당시 CBS는 비아컴, MTV, 클리어 채널, 인피니티 브로드캐스팅 등과 엮인 거대한 미디어 그룹의 일원이었다. 이들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재닛 잭슨의 노래나 뮤직비디오의 방송을 금지시켰다.
당시 부시 정권은 이란에서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하지 못해 정치적 곤경에 처해 있었는데, 이 일을 통해 보수 세력을 결집시키며 활로를 모색하기도 했다. 수많은 보수파 정치인들은 재닛 잭슨을 공격하며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 영부인 로라 부시까지 나서 “매우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며 힘을 더했다.
방송가엔 ‘의상 불량’(ward-robe malfunction)이라는 용어가 매우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고, 세계적인 여성 언더웨어 브랜드인 ‘빅토리아시크릿’의 스페셜 방송이 그 선정성을 이유로 갑자기 취소되기도 했다. 재닛 잭슨은 갑자기 모든 미국인들을 나쁘게 물들이는 색마처럼 취급되었다. 이상한 건 그 ‘가해자’인 저스틴 팀버레이크에 대해선 그 어떤 비난도 없었다는 것. 이에 대해 여성 단체와 인권 단체는 성 차별이며 인종 차별이라며 비난을 퍼부었고, 팀버레이크조차 인터뷰에서 이 사건을 통해 “미국이라는 나라는 여성에게 더욱 가혹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하지만 계속 이어졌던 후폭풍. 다음 주엔 이 사건이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