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하나 넘었더니 더 큰 산 ‘형까지…’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대기업 사정 분위기가 일면서 롯데가 주목받았다. CJ, 효성 등 지난 이명박 정부와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던 기업들이 사정기관의 조사를 받고 총수가 구속되는 등 재계에 회오리바람이 불자 사람들의 시선은 롯데로 향했다. 롯데가 이명박 정부에서 여러 특혜설에 휘말렸던 터다.
지난해 7월 국세청이 롯데쇼핑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하자 재계 일부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또 지난해 11월 세무조사 기한을 80일 연장하자 ‘큰 건을 잡았을 것’이라는 얘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길고 강도 높은 조사에 비해 결과는 싱거웠다.
비록 600억 원대의 추징금이 롯데로서는 사상 최대 규모인 데다 1년 만에 또 다시 수백억 원을 부과받은 것이지만 수천억 원의 추징금에 총수가 관련된 다른 기업과 비교하면 충격은 덜하다. 검찰 고발로 이어지지도 않았으며 총수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롯데 관계자는 “추징금에 대해 아직 정식으로 통보받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며 “검찰 고발 문제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아직 확실히 정해진 것은 아니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어쨌든 분위기로 봐서는 신동빈 회장으로서는 한 고비 넘긴 셈이다.
지난 1월 20일 박상훈 롯데카드 사장이 고객 정보유출 사건과 관련 고개 숙여 사과하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로 인한 신뢰 추락과 이미지 훼손이 불가피하다. 사태 발생 이후 보안 강화에 투자를 꾸준히 해온 것으로 조사된 삼성카드·현대카드 등 다른 대기업 계열 카드사와도 대조적인 모습이어서 신 회장의 자존심에 상처가 날 법했다.
박상훈 롯데카드 사장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따가운 눈총을 받는 이유 중 하나다. 사건 발생 직후 심재오 KB국민카드 사장, 손경익 NH농협카드 분사장, 박상훈 롯데카드 사장이 모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심 사장과 손 분사장의 사표는 수리된 것과 달리 박 사장은 보류된 상태다. 롯데 측은 “사태의 조속한 수습을 위해서”라고 해명했지만 다른 카드사들이 CEO(최고경영자)를 문책한 후 사태를 수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재계 관계자는 “사기업인 롯데가 아무래도 정부의 눈치를 많이 봐야 하는 KB나 농협과 다르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며 “해당 지주사 회장들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신동빈 회장에 대한 책임론이 상대적으로 덜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지적했다. 고객 정보 유출 사태의 책임을 카드사 CEO가 아닌 최고책임자인 지주사 회장, 즉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임종룡 NH농협지주 회장에게도 물어야 한다면 롯데카드와 관련해서는 마땅히 신동빈 회장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얘기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박 사장 사표 수리가)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사태와 관련해 급한 부분이 수습되면 곧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신동주 일본 롯데 부회장
신 부회장의 롯데제과 지분 매입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후계구도 변화 가능성 때문이다. 롯데의 거듭되는 위기 속에 일본롯데를 담당하고 있는 신동주 부회장이 한국롯데까지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롯데홀딩스는 일본롯데 지주회사로서 우리나라 롯데와 관련이 없고 사업적으로 교류하지 않는다”는 롯데 관계자의 단호한 말처럼 롯데그룹 자체적으로 ‘한국롯데는 신동빈 회장, 일본롯데는 신동주 부회장’이라는 구도가 확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 더욱이 지분 매입을 통한 경쟁이라면 딱히 막을 명분이 없다.
신 부회장의 행보에 롯데 측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워낙 지분 매입이 소규모인 데다 한국과 일본으로 나뉘는 후계구도가 이미 확립돼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롯데 관계자는 “신 부회장의 의중이나 일본 쪽 사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제과전문가로서 롯데제과 주가가 저평가됐다고 판단, 투자목적으로 매입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일본롯데의 사업은 대부분 제과에 치우쳐 있다.
여기에다 신 회장 누나인 신영자 롯데삼동복지재단 이사장의 움직임도 관건이다. 비록 롯데쇼핑 경영에서는 물러난 상태지만 신 이사장의 복귀 가능성은 열려 있는 상태다. 신동빈 회장으로서는 이래저래 신경 쓰이는 일이 많은 한 해가 될 듯하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