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맨얼굴’인가 전 동거녀 ‘농간’인가
우디 앨런(79)의 의붓딸 성추행 의혹이 다시금 할리우드를 뒤흔들고 있다. 다소 괴짜인 것처럼 보여도 그간 점잖고 위트 있는 노신사로 알려져 있던 앨런이 성추행범이라니 놀랄 노자.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지난 1992년 앨런이 미아 패로(65)의 양녀였던 일곱 살배기 딜런(현재 말론으로 개명한 상태)을 성추행했다는 것이다. 21년 전 이미 한바탕 할리우드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얼마 전 딜런이 <뉴욕타임스>에 보낸 공개서한 때문이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가 블로그에 공개한 이 서한에서 딜런은 앨런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 처음으로 ‘1인칭 화법’, 즉 ‘나’라는 표현을 써서 세세하게 ‘증언’했으며, 지난 20년 동안 자신이 얼마나 악몽에 시달려왔는지를 전 세계에 호소했다. 만일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간 할리우드의 존경받던 노장이었던 앨런은 한순간에 소녀를 성추행하는 파렴치범으로 전락할 수 있는 처지가 된 상태다. 현재 할리우드는 앨런과 딜런의 입장에서 팽팽하게 맞선 채 진실공방에 한창이다. 그 진실의 열쇠는 앨런도, 그리고 딜런도 아닌 한 여자의 손에 달려 있다. 바로 앨런의 전 동거녀인 미아 패로다.
세계적 감독 우디 앨런과 전 동거녀 미아 패로. 앨런이 의붓딸 딜런 패로(원 사진)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할리우드를 뒤흔들고 있다. 영화 <로마 위드 러브> 스틸컷, AP/연합뉴스
딜런이 <뉴욕타임스>에 보낸 공개서한에서 주장한 충격적인 내용이다. 그녀의 폭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장문의 편지에서 그녀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시절부터 아주 오랫동안 나의 아버지는 내가 싫어하는 그 짓을 했었다. 그는 나와 단둘이 있기 위해서 엄마와 형제들과 친구들로부터 나를 자주 떼어 놓았고, 나는 그게 싫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딜런은 “아버지가 내 입에 엄지손가락을 넣는 게 싫었고, 속옷 차림인 그와 한 침대, 그리고 한 이불 속에 있는 게 싫었다” “아버지가 벌거벗은 내 무릎에 얼굴을 묻고 숨을 쉬고 내뱉는 것이 싫었다. 나는 그게 싫어서 침대 밑이나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곤 했다. 하지만 그는 항상 나를 찾아냈다”라고도 폭로했다.
처음에는 이런 행동들이 아버지가 딸에게 하는 일반적인 애정 표현이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한동안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락방에서의 일은 달랐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그녀는 엄마인 패로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고, 그렇게 앨런의 추악한 면은 21년 전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다락방 사건 이후부터 장난감 기차를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었다고 말한 그녀는 “남자들이 내 몸을 만지는 것이 싫었다. 식이장애도 생겼고, 자해도 했다”라면서 그동안 성추행 후유증으로 인해 고통을 받았노라고 호소했다.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앨런의 추행을 묵인하는 할리우드의 태도였다. 그녀는 공개서한에서 “할리우드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모두 눈을 감았다.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가 알아’라는 태도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굴었다”면서 특히 지난달 골든글로브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앨런을 공개 지지한 특정 배우들(다이앤 키튼, 엠마 왓슨 등)을 비난했다.
21년 전 사건을 다시 끄집어낸 이유에 대해서는 “지난주 앨런은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다. 이번에는 무너지지 않기로 결심했다”면서 “우디 앨런은 우리 사회가 성폭행, 성적 학대 피해자들을 실망시키는 산 증거다. 모든 성추행 피해자들을 위해 다시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사실 딜런의 이런 주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도 딜런은 <버네티페어>와의 인터뷰를 통해 같은 주장을 펼친 바 있다.
하지만 이런 딜런의 주장에 대해 앨런 측은 21년 전이나 현재나 한결같이 “사실이 아니다. 수치스럽다”면서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상태. 또한 앨런의 결백을 믿는 할리우드 관계자들 역시 “앨런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면서 적극적으로 앨런을 두둔하고 나섰다.
가령 유명 방송인인 바바라 월터스는 <더뷰> 토크쇼에서 “앨런 부부와 그들이 키우고 있는 입양 딸들을 여러 차례 만났다. 나는 지금까지 앨런처럼 아이들에게 그렇게 자상하고 세심한 아빠를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앨런이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것에 대해 딜런이 매우 화가 나서 그런 주장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만일 억지 주장이라면 딜런은 왜 아버지와도 같았던 앨런에게 이런 가혹한 벌을 내리려고 하는 걸까. 이에 대해 앨런의 변호인인 엘칸 아브라모비츠는 <투데이쇼>에 출연해서 “앨런에게 상처를 주려는 미아 패로의 욕망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딜런의 뒤에는 패로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아브라모비츠는 “앨런은 딜런을 원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딜런은 그저 가여운 ‘꼭두각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라면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믿도록 패로가 딜런을 세뇌시킨 것이다. 그리고 딜런으로 하여금 성추행으로 아버지를 고발하도록 부추겼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딜런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일곱 살 어린 소녀의 머릿속에 심어준 기억은 절대 지워지지 않는 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20년이나 지난 일이 이제 와서 다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앨런이 골든글로브를 수상하자 패로가 화가 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듯 실제 패로는 지난 1월 11일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리던 도중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TV 생방송 중계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있었던 그녀는 처음에는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하지만 앨런의 평생공로상 시상식이 시작되면서부터 패로의 태도는 싹 바뀌었다. 갑자기 “이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채널을 돌릴 때”라면서 “모두 굿나잇”이라는 글을 올린 것.
어릴적 딜런 패로.
패로의 이 질문에 곧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열띤 논쟁이 시작됐다. 온라인상에서는 앨런의 의붓딸 성추행 사건이 화두로 떠올랐으며, 저마다 <버네티페어>의 인터뷰 기사 링크를 퍼나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리꾼들은 “예술과 예술가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까?” “미국은 우디 앨런을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등의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름 후 딜런은 <뉴욕타임스>에 공개서한을 보내 패로의 주장에 불을 붙였고, 그렇게 성추행 의혹을 다시 끄집어내려 했던 패로의 작전(?)은 성공한 셈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딜런의 주장에 허술한 구석이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영화제작자인 로버트 웨이드는 <데일리비스트>에 기고한 기사에서 앨런이 딜런을 성추행했다고 주장하는 시점이 가장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성추행 의혹이 처음 불거졌던 것은 지난 1992년. 당시 패로는 앨런과 자신의 양녀였던 순이의 관계를 알게 된 후 앨런과 결별을 선언했고, 앨런을 상대로 세 자녀에 대한 양육권 소송을 벌이고 있었다.
재판이 한창 진행되고 있던 어느 시점에서 패로는 갑자기 딜런이 앨런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어느 날 앨런은 패로와 세 자녀들이 머물고 있는 코네티컷의 전원주택을 찾아왔으며, 그곳에서 몰래 딜런을 다락방으로 데리고 가 성추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녀는 그날 저녁 딜런이 원피스만 입은 채 팬티를 입고 있지 않아 이상하게 여겼다고도 증언했다. 의사들을 찾아가 검사를 받은 결과, 앨런이 자신의 딸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던 패로는 직접 딜런의 증언을 녹화한 비디오테이프를 증거로 내세우면서 앨런을 성추행범으로 몰아세웠다.
하지만 과연 패로의 주장이 사실일까 의심하고 있는 웨이드는 “만일 사실이라면 하필 소송이 한창이어서 행동을 조심해야 할 때 굳이 전 여자친구의 집을 찾아가서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앨런은 밀실공포증이 있는 사람이다. 집안에 가득한 아이들과 유모들의 눈을 피해서 재빨리 일을 저질렀다는 것인데 이건 말이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코네티컷주 경찰 수사팀이 법정에서 “딜런은 성추행을 당하지 않았다”라고 최종 진술한 점을 상기시켰다. 의학전문가들의 조사 결과 당시 딜런의 몸에서는 어떠한 상처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딜런의 심리 상태를 조사했던 전문가들은 딜런의 증언에서 모순된 점이 여럿 발견됐다고 말했다. 가령 처음에는 앨런이 자신의 은밀한 곳을 만지지 않았다고 했다가 다시 만졌다고 번복하더니 나중에는 다시 안 만졌다고 주장한 것이다. 또한 조사팀은 딜런의 말투가 마치 미리 연습을 한 것처럼 어색했다고도 말했다.
일곱 살 소녀였던 딜런의 말에는 또 하나 눈에 띄게 두드러진 점이 있었다. 성추행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이상하게 ‘아버지와 순이 언니’ 그리고 ‘불쌍한 엄마’라는 두 가지 이야기를 꼭 짝지어서 이야기한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이에 당시 조사팀을 이끌었던 존 레벤탈 박사는 두 가지 가설을 세웠다. 첫째, 감정적으로 동요되어 있는 소녀의 머릿속에 박혀 있는 진술이란 점, 둘째 사전에 코치를 받았거나 혹은 엄마에게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이 의심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어쩌면 둘 모두가 섞여 있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힘들다고 진술했다. 이에 앨런 측 변호인은 “패로가 딜런을 세뇌시킨 것이 틀림없다”라고 주장하면서 거듭 결백을 주장했었다.
결국 재판은 앨런의 성추행 의혹에 관한 한 아무런 판결도 내리지 않은 채 종결됐고, 앨런은 성추행을 증명할 이렇다 할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결국 기소되지 않았다. 검찰 측은 “어린 딜런의 상태가 너무 위태로워서 재판을 중단하는 것이 옳다”면서도 “딜런의 말은 믿을 만한 근거가 충분히 있다”고 애매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앨런의 가면일까, 패로의 복수심일까. 이에 대해 럿거스대학의 데이비드 그린버그 역사학 교수는 “우리 사회는 강간과 아동학대를 받은 피해 아동들의 주장을 무시해버리던 분위기에서 이제는 너무 쉽게 믿어버리는 분위기로 바뀌었다”면서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 실제 관련자들 말고 누가 알겠는가? 잘못된 기억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게 진실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때문에 “무엇보다도 양쪽의 말을 다 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결코 섣부른 판단을 내려선 안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사실 어쩌면 답은 하나일지도 모른다. ‘진실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