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면 술병과 씨름 밖에서 새는 바가지 있더라
# “용병이 몸살 났어요”
미국 애리조나 서프라이즈에서 전지훈련 당시 롯데는 강도 높은 훈련을 펼치고 있었다. 롯데 권두조 수석코치는 “4일 훈련, 1일 휴식으로 캠프를 진행하고 있다”며 “선수들이 피곤한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해 훈련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넥센의 스프링캠프는 다른 팀에 비해 훈련량이 적고 여유가 넘쳤다.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롯데는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 동안 야간훈련을 소화했다. 대개 팀들의 야간훈련이 웨이트트레이닝 위주로 이뤄진다면 롯데 선수들은 오전 훈련보다 더 치열하게 야간훈련에 매달렸다. 어찌나 훈련량이 많은지 롯데 주축타자 손아섭은 3일 연속 코피를 쏟아낼 정도였다.
하지만, 고통은 항상 대가를 수반하는 법. 롯데 캠프를 참관한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롯데 야수들의 몸놀림이 무척 민첩해졌다”며 “젊은 타자들의 성장세도 인상적”이라고 평했다.
롯데 외국인 타자 루이스 히메네스는 이런 팀 분위기를 일찌감치 파악하고, 코칭스태프의 야간훈련 동참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외국인 선수가 야간훈련에 동참하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다. 히메네스는 “일본 니혼햄에서 뛰었을 때도 야간훈련을 소화했다”며 “난 체력이 강한 선수”라고 강조했다. 히메네스는 첫날 야간훈련에 나와 2시간 동안 열심히 땀을 흘렸다. 이를 지켜본 롯데 코칭스태프는 “역시 히메네스”라며 엄지를 치켜세웠고, 한 코치는 “이런 모범 용병이 있다는 걸 신문지상을 통해 알려야 하는 게 아니냐”며 활짝 웃었다.
다음날. 야간훈련을 지휘하던 모 코치는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강철 체력을 자랑하던 히메네스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 트레이너가 난처한 표정으로 한 말은 이랬다. “저, 코치님. 오늘 히메네스 감기 몸살 때문에 못 나왔는데요.”
코치가 긴 한숨을 내쉬는 사이 롯데 선수들은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저 자유휴식권 쓸래요”
롯데가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식 훈련을 소화한다면 넥센은 시쳇말로 ‘만만디’다. 오전 8시 30분에 시작한 훈련은 사실상 오후 1시면 끝이다. 선수들은 1시에 점심을 먹고서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오후 3시까지 훈련한다. 하지만, 이때 참여하는 선수는 자신이 훈련량이 모자라다고 판단해 추가 훈련을 자청한 이들이다.
롯데의 용병 히메네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넥센 베테랑 투수 마정길은 “염경엽 감독님께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팀 훈련에 동참해 다치면 선수도 손해, 구단도 손해’라고 말씀하시며 캠프 기간 중 모든 선수에게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1일 자유휴식권’을 주셨다”고 말했다.
넥센 훈련을 지켜본 모 구단 관계자는 “넥센은 훈련량도 적은데 훈련 일정도 ‘3일 훈련, 1일 휴식’으로 다른 팀보다 노는 날이 많다”며 “지난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고서 너무 자신감에 취한 것 같다. 이러다 시즌 들어가 크게 후회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염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염 감독은 “스프링캠프는 선수들이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는 ‘보충수업’ 기간이자 풀타임으로 뛸 몸을 만드는 ‘웜업’ 과정”이라며 “스프링캠프에서 모든 힘을 소비하면 정작 정규 시즌에 들어가선 체력 저하에 시달릴 수 있다”고 반박했다.
덧붙여 염 감독은 “만약 선수들이 내 뜻을 잘 이해해 따라주지 않았다면 우리도 다른 팀처럼 강훈을 소화했을 것”이라며 “하지만,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훈련에 참여하고 알아서 자율훈련을 하는 통에 그럴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일까. 다른 구단 관계자들은 “인정하기 싫지만, 미국에서 전지훈련 중인 팀 가운데 넥센 선수단의 컨디션이 가장 좋아 보인다”며 “넥센이 올 시즌에도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다면 넥센의 메이저리그식 훈련법이 리그의 상식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 만날 술이야~
선수들은 전지훈련지로 미국보단 일본을 선호한다. 음식도 입에 맞고, 훈련이 끝나면 밖에 나가 ‘파친코’ 등을 하며 소일거리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롯데 선수들이 가고시마 전훈지에서 야간훈련을 하고 있다.
그래서 코칭스태프와 선수, 구단 관계자들이 몰리는 곳이 바로 한국식당이다. 애리조나엔 야구인들의 사랑방인 한국 식당 A가 있다. 오후 6시가 넘으면 A 식당엔 어디서 알고 찾아왔는지 한국 구단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단골이 C 씨다. C 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A 식당을 찾는다. 두주불사형인 그는 A 식당에 들렀다 하면 얼큰하게 취해 돌아가기 마련이다.
문제는 그가 술에 취해 무단결근을 했다는 루머가 돈 것이다. C 씨의 소속구단은 “감기로 출근하지 못했을 뿐 숙취 때문은 아니었다”고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A 식당에서 C 씨를 본 모 구단 관계자는 “이틀 전 만취 상태로 돌아갔던 C 씨가 사건 전날에도 곤드레만드레 취해 돌아갔다”며 “전날까지 멀쩡했던 사람이 출근도 못 할 정도로 감기 몸살이 걸렸다는 건 별로 설득력이 없는 소리 같다”고 말했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은 밤늦게까지 ‘죽어라’ 훈련하는데, 혼자서 미국의 얼큰한 밤을 즐기는 C 씨를 보고 한 야구인은 “미국에서 이 정돈데 한국에서 오죽 하겠느냐”며 혀를 찼다.
최강민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