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유력한 후보인 정동영 의원. | ||
최근 열린우리당(우리당)의 한 관계자가 던진 말이다. 1월11일 당의장 선출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우리당 안팎에서 꼽는 1위 후보는 단연 정동영 의원. ‘정동영 대세론’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인식될 정도다. 그러나 우리당 내 상당수 관계자들은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와 서청원 전 대표의 사례를 보라’고 말한다. 지난 대선과 지난해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서 대세론을 앞세운 이들 후보들이 끝내 역전을 허용해 고개를 떨군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회창 후보에게 지지율에서 크게 뒤지던 노무현 후보는 선거를 코앞에 두고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성사시켜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열세가 예상되던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도 이회창 전 총재의 핵심측근들을 포섭하고 ‘창심’(昌心)을 부추겨 서청원 전 대표에 극적 역전승을 거두고 당대표직에 올랐다.
결국 노 대통령이나 최 대표의 경우처럼 우리당 당의장 경선에서도 ‘대세’로 인식되는 정동영 후보를 넘어설 수 있는 비책으로 2위권 주자들의 ‘전략적 합종연횡’이 거론되고 있는 셈이다. 당의장 선거가 1인2표제로 치러지는 특수성을 잘 활용하면 이 같은 연합구도를 통해 정 후보의 독주를 충분히 ‘위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로 독자적 1위를 자신하는 정 후보와 후보간 연대를 비판하는 신기남 후보를 제외한 나머지 후보들은 저마다 연대에 대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이 중 당 안팎에서 가장 주목받는 ‘가상 커플’은 바로 김정길 후보와 이부영 후보의 연합 구도다. 정 후보측은 “김정길 전 장관과 이부영 의원이 연대한다던데…”라며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김-이 연합’이 실현될 경우 정 후보를 압박할 여러 변수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영남권 후보들 중 유일하게 예비 경선을 통과한 김정길 후보는 “총선 필승 관건인 영남권 공략을 위해 영남권 인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반면 수도권 출신 이부영 후보측은 “총선 최대 접전장이 될 수도권을 대변할 수 있는 간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수도권과 영남권 지역 대의원들 수를 합치면 전체 대의원의 절반을 훌쩍 뛰어넘는다. 당내에서 수도권과 영남을 대표하는 두 후보가 연합할 경우 파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두 후보의 개인 경쟁력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정가 일각에서 이번 당의장 경선이 정동영-김정길-이부영 3강 구도로 치러질 것으로 전망할 정도다.
김 후보는 자연스럽게 이뤄진 영남후보 단일화가 큰 호재다. 전체 대의원 35%에 달하는 영남권 대의원들이 1인2표제 투표에서 적어도 한 표 정도는 김 후보에게 행사하는 시나리오를 그릴 수 있다.
▲ 전략적 합종연횡의 1순위로 거론되는 김정길(왼쪽)-이부영 카드. | ||
영남권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 위원의 ‘역할론’에 대해 장영달 후보는 최근 한 TV토론에서 “노 대통령 측근인사가 일부 인사들 간의 연대 구도를 만들려는 것 같다”고 태클을 걸었다. 정동영 후보측도 “영남권 대의원들이 특정 지역 후보에게 표를 몰아 지역 맹주를 만들어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선수’를 치고 나선 상태다.
당 안팎의 이런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이 위원은 “당의장 경선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다. 그러나 김 후보측은 “이 위원이 역량을 보이려면 총선 승부처로 인식되는 영남권에서 당 지지세를 확산해야 하는데 과연 누가 당의장이 되는 게 바람직하겠는가”라며 지원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얼마 전 김 후보는 이 위원과 만나 당의장 경선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수도권을 대표하는 이부영 후보도 상당한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비밀에 부쳐졌던 예비 경선 득표 결과가 일부 언론에 보도돼 파장이 일기도 했는데, 1위 정동영 후보에 근소한 차로 이부영 후보가 2위를 차지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당에서는 ‘보도 내용의 근거가 없으며 해당 언론사에 법적 대응을 강구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각 후보 진영에 돌려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언론에 보도된 ‘정동영-이부영 접전’이란 내용은 이미 당내에 잔잔한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같은 한나라 탈당파인 김부겸 의원도 지지 선언을 하고 나서 ‘이부영 대망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민주당 밖 신당 추진세력 후보군이 이 후보로 단일화된 점도 그에겐 호재로 작용할 듯하다.
‘연대 불가론’을 펴고 있는 정동영 후보측은 “후보간 합종연횡이 결국은 대의원들에게 부정적으로 비쳐져 큰 실익을 얻지 못할 것”이라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러나 당내에선 정동영 후보의 독주를 막고 경선 흥행을 불러올 최대 변수로 이미 개인적 파괴력을 검증받은 김정길 이부영 두 후보가 전략적 연합을 할 경우가 꼽히고 있다.
두 후보는 아직 “연대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김-이 후보가 몇 번 의견조율을 했다는 소문이 무성하지만 양측 모두 “상황에 따라 연대 여부도 결정할 것”이란 유보적인 반응만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동영 후보의 독주를 비판적으로 보는 당내 중진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경우 두 후보의 연대 가능성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