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월30일 한나라당 의원총회. 유출된 당무감사 자료에서 낮은 등급을 받은 의원들의 성토가 이어지자 이강두 정책위의장과 이재오 전 사무총장(왼쪽부터)이 심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특히 한나라당 내 공천 갈등이 ‘분당’ 가능성으로까지 번지면서 정치권의 새로운 지형변화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민주당도 최근 당내 소장-개혁파들을 중심으로 ‘호남 물갈이론’이 점차 거세지고 있으며, 열린우리당도 중진들과 정치신인 간에 대립과 긴장이 서서히 구체화되고 있다.
물갈이 혹은 공천 갈등은 역대 총선에서 매번 있던 일. 그러나 이번 총선의 경우는 지역구도의 해체 움직임과 상향식 공천론의 정착, 그리고 ‘1여3야’의 다당 경쟁구조로 인해 이전과 양상이 크게 달라졌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이 때문에 각당 지도부는 ‘총선 승리’라는 궁극적인 목표 달성에 앞서 공천문제를 어떻게 매끄럽게 매듭짓느냐에 더 고심하고 있다.
우선 의원-원외 위원장을 A~E등급으로 나눈 당무감사 자료가 언론에 유출되면서 시작된 한나라당 공천 갈등은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최병렬 대표와 서청원 전 대표가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당내에서는 분당 등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공천을 매개로 한 신·구주류 간 전면적인 권력투쟁이란 분석도 나온다.
최 대표와 이재오 전 사무총장, 김문수 당 공천심사위원장 등 주류측은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제1당을 유지하기 위해선 대대적인 물갈이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텃밭인 영남권의 경우 현역 의원을 70% 이상 바꿔야 여권의 전방위 공세에 맞설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주류측은 아울러 이번 사태가 궁극적으로는 총선 승리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홍준표 의원은 “개혁공천 문제를 둘러싸고 당내에서 이견을 보이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지지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주류측이 이처럼 강경하게 나오는 것은 비주류의 공세가 궁극적으로 최 대표의 낙마를 겨냥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 서 전 대표측이 감사에서 C~E등급을 받아 공천 탈락의 위기감을 갖고 있는 의원들을 규합해 의원-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를 통해 ‘반(反) 최병렬’ 분위기를 고조시킨 후, 종국적으론 임시전당대회를 열어 최 대표 체제를 전복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반면 서 전 대표 등 비주류측은 현재의 공천작업을 ‘구주류 말살작전’으로 보고 있다. 권철현 의원은 공개적으로 “이회창계와 서청원계, 영남권을 의도적으로 공천에서 배제하자는 의도”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비주류측은 또 최 대표 본인이 5·6공 시절 핵심 요직을 지냈음에도 ‘5·6공 청산론’을 주장하는 것은 “자가당착의 극치”라며 비아냥대고 있다.
특히 서 전 대표는 “나는 비민주적으로 당을 운영하고 독선, 독주를 하며 밀실에서 공천을 하는 최병렬 체제를 뿌리뽑는 등 야당 민주화에 앞장설 것”이라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그는 “공천 강행은 밀실 조작을 통한 정치인에 대한 사형선고 사건에 대한 반발을 잠재우려는 수법” “당무감사에서 C~E등급을 받은 분들 사이에서는 최 대표가 사약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는 등의 극언도 서슴지 않고 있어 사실상 최 대표측과의 ‘결별’을 예고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의 공천 갈등이 ‘활화산’이라면, 민주당은 아직 ‘휴화산’이다. 그러나 갈등이 전면화될 경우 폭발력은 한나라당에 못지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가장 큰 쟁점은 역시 ‘호남 물갈이론’이며 중진 대 소장-개혁파, 수도권 대 호남권의 대립구도다.
‘호남 물갈이론’의 중심에는 추미애 상임중앙위원이 있다. 추 위원은 연초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민주당이 하락세를 보인 것과 관련해 “11월28일 전당대회 이후 안주한 점이 있으며 호남과 수도권에서 지지율이 큰 폭으로 하락했는데, 여기에는 현재의 기득권 세력들로는 (나와도) 안 찍어주겠다는 생각이 투영돼 있다”고 주장해 물갈이 필요성을 제기했다.
▲ 추미애 의원 | ||
신진인사들과 외부 영입인사들도 공천제도 개선 주장을 통해 물갈이론 확산에 나섰다. 구해우 전 SK텔레콤 상무와 신현구 전 국회 정책위원, 김현종 전북도지부 부위원장 등 친(親) 한화갑계 인사들이 “현재의 공천제도는 현역 지구당위원장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돼 있다”며 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여기에 박준영 전 청와대 공보수석과 조순용 전 청와대 정무수석, 최인기 전 행자부 장관 등 중량급 외부인사들도 가세하고 나섰다. 이들 중 박 전 수석은 동교동계인 김옥두 의원과 전남 장흥·영암에서, 조 전 수석은 김경재 상임중앙위원과 전남 순천에서, 최 전 장관은 동교동계인 배기운 의원과 전남 나주에서 공천경합중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그러나 ‘물갈이’ 대상으로 거명된 중진들이 강력 반발하고 있어 진통이 불가피한 상황. 박상천 정균환 김옥두 의원 등 호남권 구주류 중진들은 물론 중도파인 김경재 상임중앙위원까지 호남권을 타깃으로 한 물갈이론에 노골적인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김 위원은 “왜 호남만 갖고 따지느냐. 전남의 경우 지난 총선 때 60% 물갈이가 됐다. 현역을 팽개치면 총선 등록 (기호) 2번도 놓쳐버릴 수 있다”며 반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 민주당처럼 독점적 지역기반이 없고, 특히 영남권의 경우 ‘선수’가 부족한 터라 공천 갈등의 내용에 차이가 있다. 우선 인적 측면에서 보면 영입대상으로 거명되고 있는 중량급 인사들이 대부분 경선을 기피하고 있는 반면 이들과 경합하는 정치신인들은 죽기 살기로 경선을 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어 교통정리가 쉽지 않다.
열린우리당은 당헌 부칙에 “지역구 총수의 30% 이내는 상향식 공천 예외 지역구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수요에 부응하자면 턱없이 부족한 실정. 그렇다고 ‘상향식 공천’이란 대원칙에 위배되는 ‘낙점’ 케이스를 늘리자니 ‘새 정치’ 이미지에 역행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열린우리당 한 핵심관계자는 “영입논의가 거의 끝난 인사들이 ‘공천 보장’을 요구하지만 공천시스템상 확약할 수가 없어 결렬된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 좀 물러나 줬으면 하는 신인들은 끝까지 경선을 해야 한다고 요구하거나 아니면 다른 ‘자리’를 요구해 이래저래 고충이 크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세대교체론’ ‘비리인사 배제론’을 매개로 한 내부 갈등도 예상되고 있다. 영남권 핵심 친노(親盧)인사로 당권에 도전한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이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정대철 천용택 의원과 거액 도박 혐의로 물의를 빚은 송영진 의원의 ‘총선 불출마’를 요구하고 나섰다.
역시 당권 도전에 나선 이부영 의원도 “한나라당도 죽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당도 영남지역에 참신하고 국정운영 능력이 있는 사람을 영입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여기에 소장개혁파의 핵심인물인 천정배 의원도 “우리당도 긴장감을 갖고 세대교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