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의 배우자’? 알고보면 더 잘나가
[일요신문]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흥행세가 심상찮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이 영화는 지난 19일 누적 관객수 40만 명을 돌파하며 조용한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또 하나의 약속>은 서울 행정법원이 삼성반도체 근무 중 백혈병에 걸린 고 황유미 씨에 대해 산재 인정 판결을 내린 실화 사건을 소재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딸을 지키기 위해 법정싸움을 감행해 승소판정을 이끌어낸 황상기 씨의 실화를 다뤘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다소 무거운 소재에다 상영관 수도 적지만 개봉 이후 관객들의 성원이 이어지며 상영관이 늘어가는 추세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 윤유선 씨의 남편이 현직 부장판사라는 점이다. 윤 씨의 남편은 춘천지법 강릉지원에 근무하고 있는 이성호 부장판사다.
스타-법조인 커플의 공통점은 아는 지인의 소개를 통해 연애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 부장판사는 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설을 주장했다가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판사를 맡고 있던 이 부장판사는 조 전 경찰청장에게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하며 “피고인이 경솔하게 허위 내용을 유포하고, 법정에서도 무책임한 언행을 반복했다”며 따끔한 훈계를 덧붙이기도 했다. 윤유선 씨와 이 부장판사는 2001년 지인의 소개로 만나 결혼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왼쪽부터 윤유선, 한지혜. 검사와 결혼한 배우 한지혜는 “친언니가 메일로 남편의 스펙을 보내줘서 소개팅을 했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유명 연예인과 결혼한 판·검사는 많다. 탤런트 송일국 씨의 부인도 정승연 인천지법 판사다. 정 판사는 사법연수원생 시절 지인의 소개로 송 씨를 알게 돼 1년 6개월을 연애하고 결혼했다. 송 씨가 교제하는 상대가 예비판사라는 점은 송 씨가 송사에 휘말리면서 알려졌다. 2008년 송 씨는 집 앞을 지키고 있던 프리랜서 여기자로부터 폭행시비에 휘말렸고, 송 씨는 무죄를 주장함과 동시에 폭행설을 제기한 여기자에게는 5억 원, 폭행설을 최초로 보도한 한 인터넷 매체와 기사를 작성한 해당기자에게는 총 15억 원을 청구했다.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던 여기자는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송 씨가 강한 법적 대응에 나서자 언론에서는 송 씨의 결혼상대가 예비판사라는 점을 보도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배우 한지혜 씨는 현직 검사와 결혼했다. 한 씨의 남편은 서울서부지검에 근무하는 정혁준 부장검사다. 정 검사는 한성과학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기계항공공학과를 졸업한 ‘공대 출신 검사’로 사법시험 1, 2, 3차 시험을 한 번에 패스하며 2003년 제45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한 씨는 언니의 소개를 받아 결혼에 골인했다. 한 씨는 지난해 10월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친언니가 메일로 남편의 스펙을 보내줬다. 종교적인 믿음이 강하고, 사법시험을 한 번에 패스한 사람이고, 평창동에 집이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머지 조건은 보지도 않고 소개팅을 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딸과 TV에 출연한 미스코리아 출신 설수진. 작은 사진은 남편인 박길배 부장검사.
미스코리아 출신 연예인 설수진 씨도 검사와 결혼했다. 설 씨의 남편은 청주지검 충주지청에 근무하는 박길배 부장검사다. 박 부장검사는 2011년 부산저축은행 비리 사건을 맡으며 유명세를 탔다. 6조 원대 불법대출과 3조 원대 분식회계 등이 적발되고,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전·현직 공무원 등 42명이 구속된 대형사건이었다. 당시 박 부장검사는 이 사건을 처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 언론사에서 시상하는 ‘올해의 검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설 씨 역시 지인의 소개로 박 부장검사를 만나 3년간의 열애 끝에 결혼했다.
이들 유명인-법조인 커플의 공통점은 소개를 통해 연애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한 변호사는 “연예인들이 실상은 불안한 미래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안정적인 데다 퇴직 후에도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판·검사를 배우자로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반대로 판·검사들이 배우자로 유명인을 선호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공직인 만큼 일 외적인 면으로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판결을 한 판사’ 혹은 ‘어떤 수사를 한 검사’가 아닌 ‘누구의 배우자’로 각인되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현직 검사가 실제 유명인과 결혼해 곤욕을 치른 사례도 있다. 황수경 전 KBS 아나운서와 결혼한 최윤수 전 전주지검 차장검사가 대표적이다. 현재 대검 검찰연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최 전 차장검사는 지난해 부부가 파경위기에 처했다는 루머가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당시 최 전 차장검사 부부는 이런 루머를 기정사실인 것처럼 허위보도했던 조정린 TV조선 기자를 상대로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가 취하했다. 소송을 당했던 조정린 기자는 연예인 출신으로 2012년 TV조선 공채에 지원해 기자가 됐다.
최 전 차장검사 부부는 언론사 정정보도와 기자 명의의 사과 편지를 받고 소송을 취하했다. 당시 최 전 차장검사는 사실과 다른 루머가 퍼진 데 대해 크게 분노하며 일간지 기자 박 아무개 씨를 상대로도 형사처벌을 해달라는 취지로 고소했다. 박 기자 역시 최 전 차장검사에게 사과를 했고, 소송을 취하함에 따라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몇 년 후면 검사장 승진 대상이 되는 기수인 최 검사 입장에서는 일반인들에게 ‘황수경 남편’으로 각인되고 가정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이미지까지 겹쳐 굉장히 억울했을 것 같다”며 “굳이 근거 없는 소문에 민·형사 소송을 낸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선영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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