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불러들였나 호랑이 굴로 들어갔나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위원장이 2일 6·4 지방선거 전 신당 창당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로써 야권 정계개편이 현실화됐다. 연합뉴스
일단 정치권에선 이번 통합을 두고 안철수 의원의 신당보다는 민주당 김한길 지도부에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모처럼 주류와 비주류 양 진영에서 환영 의사가 주를 잇고 있다. 당 내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문재인 의원 역시 일단 환영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얻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철수 진영의 경우 통합 선언 직후 김성식, 윤여준 등 독자론을 내세웠던 인사들이 안철수 의원의 결정에 불쾌함을 토로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컨설턴트는 “형식상 5 대 5 통합이지만, 지방선거를 앞둔 현재 의석으로 따지면 126 대 2의 통합이다. 사실상 흡수나 마찬가지”라며 “또 과거 야권 통합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기계적 통합이었다면 이번 통합은 분명 정치개혁이라는 명분이 있다. 현실적 지분 구도로 보자면, 김한길 대표는 명분과 실리 모두 얻은 셈”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안철수 진영에 대해선 “현재도 내홍이 감지되고 있지만 이번 결정으로 한동안 정치개혁과 야권 단일화 불가론을 피력해온 윤여준, 김성식, 이계안, 김효석 등 추종세력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됐다. 내심 안철수 의원의 결정에 섭섭할 것”이라며 “안 의원의 이번 결정은 결국 안철수 본인은 정당 정치엔 그다지 관심이 없고, 오로지 대권만이 목표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번 통합에 대한 양 진영의 실익 평가와는 별개로 야권 권력구도 재편이 불가피하게 됐다. 크게 친노 진영을 주축으로 하는 주류와 비노 진영을 주축으로 하는 비주류 진영으로 이뤄진 민주당에 안철수라는 또 다른 ‘거대 계파’가 합류함에 따라 지방선거는 물론 차기 총선과 대선의 향방이 오리무중에 빠진 셈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이제 본격적으로 ‘문재인을 중심으로 하는 친노 진영’과 ‘안철수를 중심으로 하는 친안 진영’이 야권 구도를 양분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당 측 인사와 민주당 내부에서 신당에 우호적인 민주당 비주류 진영이 ‘합’을 이뤄,기존 야권 내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친노 진영을 협공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이다.
야권 ‘통합신당’ 합의에 따라 대권을 향한 문재인-안철수의 싸움이 조기에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대선 불공정 문제 발언과 관련 취재진의 질의에 답변하는 문재인 의원 모습. 박은숙 기자
물론 여기에 몇 가지 변수가 존재한다. 첫 번째는 야권 내 또 다른 대권주자로 꼽히는 ‘손학규계’의 스탠스다. 손학규 민주당 고문은 오랜 기간 민주당과 신당 측 중간지대에서 나름의 다리 역할을 하면서도 본인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왔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도 여전히 대권의 꿈을 버리지 않은 상황이다.
앞서의 민주당 관계자는 “현재 손학규계는 민주당 내에서 대략 20석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주도권을 잡거나 독자적 행보를 하기는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야권 내 양분화 된 구도를 흔들 수 있는 적잖은 숫자”라면서 “만약 대표적 손학규계 인사로 꼽히는 김부겸 전 의원이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서 선전하고 잠행 중인 손 고문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손학규계 전체가 야권 재편에 하나의 세력으로 힘을 받을 수도 있다. 손학규계의 힘은 야권 내부에서 여전히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변수는 주류인 친노 진영의 분할 가능성이다. 현재 민주당 내 친노 진영은 정통 주류와 범주류에 속하는 정세균계, 그리고 386 진영이 융합된 상황이다. 이에 야권 재편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랜 기간 잠잠했던 정세균계와 386 진영이 자기 나름의 지분 확보를 위해 또 다른 이합집산을 시도할 여지가 있다는 것. 이는 결국 문재인 의원의 정치력과 리더십에 달려있다는 것이 정치권의 분석이다.
세 번째 변수는 민주당과 신당 내 잔류세력 존재 여부다. 이미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통합신당 창당에 반발하고 있다. 창당 결정이 발표된 날 민주당 김광진 의원(비례대표)은 이 같은 결정을 기자회견 5분 전에 문자메시지로 일방통보 받았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대부분의 의원들에게 문자 통보만 갔다. 이렇게 전쟁을 치르듯이 급하게 발표해야할 상황이었는지 모르겠다”라며 “정당공천제 폐지 문제는 계속 논의가 되고 있었지만 합당 문제는 한 번도 의총이나 공식적인 발언이 있었던 적은 없다”고 전했다. 이러한 반발이 거세 신당에 합류하지 않는 경우 야권 구도는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띨 수 있다.
그러나 앞서의 두 가지 변수보다 실현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 중론이다. 앞서의 정치컨설턴트는 “이번 야권 통합은 과거의 그것과는 좀 성격이 다르다. 과거 야권의 통합이나 분열은 지역구도에 따른 정치 야합의 성격이 강해 명분이 약했다. 하지만 이번 통합은 최소한 명목상 정치 개혁을 근간으로 한다”며 “이번엔 민주당 잔류세력이 독자적으로 당을 유지할 명분도 힘도 없다. 한동안 존재하더라도 조만간 흡수되거나 소멸될 것”이라고 단정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