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차돌리기 채찍질… 전성기 그때 그 모습
우선 경주부터 살펴보자. 22일 토요경마 1경주에서 박태종은 7번 래쉬비상을 타고 2위를 했다. 래쉬비상은 인기 3위권이었기 때문에 성적 자체는 큰 의미가 없지만 레이스의 전 과정을 보면 달라진 박태종이 피부에 와닿는다.
이 경주는 인코스 마필들이 기습전을 펴면서 초반 페이스가 국6군 경주치곤 너무 빨랐다. 더구나 외곽에 있는 10번 진격의여왕이 선행을 강탈하면서 더욱 가속도가 붙었고, 그 분위기에 박태종의 래쉬비상도 가세했다. 평소라면 이런 페이스는 박태종에겐 종반 몰락을 예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박태종은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면서 추입마들에게 역전을 허락하지 않았다.
3경주에선 14번 과천거목을 탔다. 비록 경주에선 마필능력 부족으로 참패를 했지만 또 한번 뛰어난 스타트와 중간가속 능력을 보여줬다.
5경주에선 10번 왕호를 타고 3위를 6마신이나 따돌리고 2위를 했다. 특히 이 경주에선 스타트를 잘하고도 중간에 다른 마필에 진로가 막혀 후미로 처져 선두권을 따라잡기는 역부족으로 보였다. 그렇지만 박태종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말을 독려하면서 탄력을 붙이는 데 성공했다. 말 위에서 다리를 고정시키고 풍차처럼 채찍을 돌리며 밀어주는 모습은 딱 전성기의 그 모습이었다. 이 경주의 재방송을 보면서 필자뿐만 아니라 필자 주변의 다른 전문가들도 ‘이번 주는 박태종을 노려야 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리고 7경주. 박태종은 인기 1위마인 12번 악셀갤러퍼에 올랐다. 평소 같으면 박태종 기수가 이런 어중간한 인기마에 오르면 뒤로 돌리기 일쑤였지만 이날은 경마전문가들도 주저없이 축마로 추천했다. 실전에서도 박태종은 기대에 부응해 1위를 했다. 게이트가 불리해 시종 외곽에서 경주전개를 했지만 차분하게 말몰이를 했고, 직선에서 강하게 몰아주며 앞서가는 세 마필을 모두 제쳤다.
9경주는 박태종의 진가를 보여준 한판이었다. 인기 4위마 오늘이를 타고 외곽선행(안쪽 선행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맨 앞에서 뛰는 것)에 나선 뒤 그대로 굳히기를 해 1위를 했다. 오늘이는 전형적인 추입마였다. 그런데 너무도 자연스럽게 선행에 나섰다. 채찍으로 독려하지도 않았고 강하게 추진하지도 않았지만 오늘이는 마치 등에 아무도 올라타지 않은 것처럼 가볍게 선두권에 가세했다. 경주 중에 말이 불편함을 전혀 못느끼도록 중심을 잘 잡고 박자를 잘 맞춰주었다.
10경주에선 인기 최하위 락슈미를 타고 선입권에 가세했지만 12위에 그쳤고, 이어 벌어진 11경주에선 러시포스를 타고 좋은 출발, 적절한 거리유지, 막판 추진이라는 교과서적인 작전으로 1위를 했다.
지난해 노쇠한 기미를 보이며 부진했던 박태종 기수(48)가 최근 들어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부활을 알리고 있다. 사진제공=KRA한국마사회
4경주에선 부상을 당한 조경호 기수 대신 9번 하나의태양에 기승해 3위를 차지, 삼복승 48.9배의 배당을 터트렸다. 이 경주도 뛰어난 스타트 능력이 가져온 이변이었다.
6경주와 8경주에서는 부진마 바다마을과 굿럭키를 타고 각각 8위와 11위를 했다. 하지만 이 두 경주에서도 스타트와 초반 가세는 발군이었고, 한때 또 터트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사기까지 했다.
9경주에선 악벽마인 11번 시타델에 올라 외곽주행을 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 4위를 했다. 1800미터로 치러진 이 경주는 중반 페이스(뒷직선에 4코너까지)가 너무 느렸는데도 특별한 견제가 없었기 때문에 조금 일찍 시동을 건 말들이 1, 2, 3위를 차지해 삼복승식 497.0배가 터졌다. 경주가 이런 양상으로 흐르면 추입마가 입상하기는 쉽지 않다.
10경주도 바로 이런 흐름이었다. 4번 구만석이 선행을 나서는가 싶었지만 7번 장비사랑이 기습을 하면서 선행이 뒤바뀌어 경주 초반이 조금 빠르게 진행됐다. 하지만 선행을 나선 장비사랑이 곧바로 제어에 들어가면서 경주는 지나칠 정도로 느리게 전개가 됐다. 이런 흐름이 4코너를 돌때까지 지속되는 바람에 구만석과 장비사랑은 직선에서 탄력을 붙이는 데 실패했다. 흐름을 정확하게 파고든 기수는 최범현(슈퍼리치 1위)과 서승운(싱그러운 2위)이었고, 박태종 선수도 조금 일찍 가세했지만 늦게 탄력을 붙이는 바람에 3위에 만족해야 했다. 경주가 지나치게 느리고 앞선이 끝까지 참고가면 결승선 오르막에 도착하기 전에 한발 앞서 탄력을 붙여야만 앞선을 따라잡을 수 있다. 앞선과 똑같은 시점에서 탄력을 붙이면 힘이 남은 앞선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아무튼 박태종은 이틀간 13회 기승해 3승 2위3회 3위2회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성적 자체도 괄목할 만한 변화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예전과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우선 체력이 좋아졌다. 1경주 시작부터 마지막 경주까지 변함없는 말몰이는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두 번째는 하체가 굳건히 버텨주면서 경주 중에 말한테 무리를 전혀 주지 않은 것은 물론 강력한 추진까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간혹 한 번씩 터져 나오는 ‘풍차 돌리기 채찍’은 그의 부활을 확실히 알려주는 것으로 필자는 해석했다.
사실 박태종의 부활은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지난해 기승 때는 말 위에선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간혹 보였고, 하체가 뒷받침되지 않아 추진력 자체도 강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 들어 부상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 운동량이 늘면서 이미 성적도 좋아지고 있었다. ‘새해맞이기념 헤럴드경제배’의 우승은 그런 변화의 신호탄이었다. 전문가들과 경마팬들의 선입견이 그런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1987년 4월 1일 데뷔 이후 2월 28일 현재 1만 2144전을 치르며 1872승(2위 1707회, 3위 1419회)을 올리며 전인미답의 길을 가고 있는 박태종 선수. 부상 후유증 때문에 한동안 고개를 떨궈야 했던 그. 그런 그가 지천명이 가까운 나이(만48세)에 부활을 알리며 또 다시 질주하고 있다. 올 한해도 부상없이 꾸준히 활약해주길 기대하는 것은 필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김시용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