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부진은 핑계 실제론 미운털 콕
# 자진 사퇴? 경질?
결론부터 말하면 경질이 맞다. 이상범 감독이 먼저 구단을 떠나겠다고 선언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계약 기간이 1년 더 남아 있었다. 둘째, 안양 프랜차이즈 구단은 이상범 감독에게 제2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금전 관계를 넘어 정으로 엮여있다.
지휘봉을 내려놓는 이상범 KGC 감독의 빈자리를 채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이상범 감독은 지난 2011-2012시즌 구단에 창단 첫 우승을 안겨줬다. 우승의 과정을 돌이켜보자. 이상범 감독은 2008-2009시즌부터 팀을 이끌었다. 당시 안양 KT&G의 김호겸 사무국장과 합의해 파격적인 리빌딩을 시작했다. 주축 선수들을 한꺼번에 군 입대시키고 그 사이 신인드래프트 지명권으로 좋은 신인들을 모아 주축 선수들이 돌아오는 시즌에 정상을 노린다는 장기 계획이다.
계획은 결실을 맺었다. 김태술과 양희종이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동안 박찬희, 이정현 등을 영입했고 2011년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오세근을 영입해 화룡점정을 했다. 팀은 2011-2012시즌 정상에 올랐다.
“매일 양복 안주머니에 사표를 넣고 다녔다.” 리빌딩의 고통을 물을 때마다 돌아온 이상범 감독의 대답이다. 하지만 파격적이었던 리빌딩은 결국 대성공을 거뒀다. 이상범 감독의 지도력과 인내에 감동한 구단은 3년 재계약이라는 선물을 건넸다. 자신의 유산을 버리고 먼저 팀을 떠난다? 어불성설이다.
# 고위층과의 갈등 이유는?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 우승을 차지해 기뻐하는 모습. 박은숙 기자
이상범 감독은 작년 8월 필리핀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다. 대표팀을 돌보느라 코치들에게 소속팀을 맡겼다. 7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도 불참했다. 1년 농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외국인선수 선발을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결국 올 시즌 외국인선수 선발은 최악이었다. 이를 두고 이상범 감독과 구단 고위층이 마찰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것은 결과론이다. 이상범 감독은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최종예선 당시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다. 그때도 이상범 감독은 책임감 때문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가지 않았다. 코치와 스카우트에게 외국인선수 선발을 맡겼다. 당시 데려온 선수의 기량이 나쁘지 않았다. 당시 구단과의 마찰은 없었다.
국가대표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지난 1월 “이상범 감독이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구단과의 사이가 점점 나빠지고 있는 것 같다. 대표팀은 작년 7월 트라이아웃 때 이상범 감독에게 미국에 다녀와도 된다고 허락했다. 하지만 이상범 감독은 국가대표팀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이를 고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구단이 책임을 물으면 사실 할 말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대표팀을 위해 희생한 것 때문에 피해를 보면 안 되지 않느냐”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우려는 불과 한 달여 만에 현실이 됐다.
이상범 감독의 경질은 구단 고위층과의 마찰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성적은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는 또 있다. 경질 소식이 발표되기 직전까지 구단 프런트 직원들은 그 내용을 모르고 있었다.
# 차기 감독은 최인선?
이상범 감독의 사퇴 소식이 전해진 뒤 최인선 전 서울 SK 감독이 차기 사령탑으로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KGC인삼공사는 그 누구와도 접촉한 적이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 그런데 결코 뜬소문은 아니라는 게 농구계의 중론이다.
지난해 12월 1일 안양 KGC와 인천 전자랜드와의 경기에서 KGC 김태술의 돌파가 수비수에게 저지 당하고 있다. 사진제공=KBL
최인선 전 감독은 1년 만에 기술고문의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구단 고위층과는 계속 친분을 유지하고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차기 사령탑 내정설의 근거다.
누가 새 사령탑으로 부임한다 하더라도 이상범 감독의 빈자리를 채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올 시즌이 끝나면 김태술과 양희종이 자유계약선수가 된다. 벌써부터 군침을 흘리는 구단들이 많다. 구단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만약 구단이 시원하게 지갑을 열지 않을 경우 이상범 감독이 정과 의리로 호소하는 한이 있더라도 재계약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상범 감독과 선수들은 지도자와 선수의 관계 이상으로 끈끈한 편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동력이 사라졌다. 만약 FA 재계약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박세운 CBS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