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수키즈(김 총재가 발탁해 중용한 인사들)’ 지고 ‘주얼리맨(이 후보자와 뜻이 맞는 인사들)’ 뜨나
이주열 한은 총재 후보자(왼쪽)는 한은 재직 당시 김중수 현 총재(오른쪽)와 마찰을 일으켜 2012년 4월 퇴임한 이후 2년 만에 화려한 컴백을 한다. 연합뉴스
금융권 관계자는 “한편에선 통화정책에 대한 한은의 독립성을 지켜 경제안정에 방점을 찍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정부와의 정책공조를 통해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면서 “이 후보자의 한마디에 시장이 출렁거릴 것이 분명한 만큼 보다 신중하고 정제된 표현들을 기대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엄밀히 따지면 이 후보자가 한은 총재로서 적임자인지를 판가름하는 최우선 잣대는 기관의 고유업무 수행에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지 여부다. 한국은행법 제1조는 ‘물가안정 도모를 통해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고, ‘통화신용정책 수행 시 금융안정에 유의한다’고 그 목적을 밝히고 있다.
반면 시장에선 이 후보자가 중앙은행의 목적에 집착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통화정책에 경제안정과 함께 고용확대와 경제성장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이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중앙은행의 전통적 역할인 인플레이션 파이터 역할을 고집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고 경제지표가 나아지고 있다며 섣불리 금리인상에 나섰다가 경제를 망쳐서도 안된다”고 밝혀 그러한 기대를 숨기지 않고 있다.
정부의 경기부양 정책에 대한 협력과 한은의 독립성 확보는 서로 상충될 때가 더 많다. 그 견제와 협력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것이 한은 총재의 역할인 것이다. 그런 점에선 보면 이 후보자는 김중수 현 총재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연성이 높은 편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인상으로 물가안정을 꾀하는 ‘매파’, 경제성장을 중시해 재정지출 확대와 금리인하를 단행하는 ‘비둘기파’ 가운데 이 후보자가 ‘중도파’의 행보를 보여 왔다는 평가가 많다.
이 후보자는 최근 언론 기고문에서 “한은이 달성하고자 하는 물가안정은 그 자체가 최종 목표라기보다는 국민경제 발전을 뒷받침하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며 “물가안정 목표 달성 기간을 보다 길게 해 중기목표제(2004년 이후 3년 단위)를 운용하고 있는 것도 단기적인 물가 목표에 얽매여 경기를 그르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장치”라고 주장했다. 물가안정에만 매달려 금리인하를 통한 성장 견인의 역할을 간과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한은 내부 출신들이 그간 매파로 분류돼온 것과도 사뭇 다른 모습이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대해 호의적으로 평가한 점도 눈에 띈다. 그는 기고문에서 “정부가 확실한 성장전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과거 개발연대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앞날의 비전을 제시하고 한 방향으로 힘을 모으는 돛의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지난 2월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놓고 실효성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한은 독립성에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는 대목이다.
그는 한은의 통화정책 운영에 대해서도 “한은이 제때에 대응하지 못하고 늘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는 평가 일색이다. 불확실성을 이유로 정책결정을 주저하는 데 따른 영향”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선제적인 통화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지적인데, 이는 김 총재가 그간 보여 온 행보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으로 해석될 수 있다.
김중수 총재는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잇따라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기준금리를 2.50%로 9개월째 동결시켰다. ‘김중수 금리’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전혀 다른 스타일의 통화정책 운영이 현실화할 경우, 이를 둘러싼 논란이 적지 않게 불거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한은 총재에게 부여된 내부 통합의 관점에서 봐도 우려되는 지점들이 적지 않다. 한은에서만 오랫동안 근무해 보수성과 폐쇄성에 대한 우려가 이와 연관돼 있다. 실제로 이 후보자는 지난 6일 인사청문회에 대비할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며 자신과 뜻이 맞는 11명을 모았다. 사실상 신임 총재의 첫 인사인 셈인데, 대부분 김 총재 시절에 한직으로 밀려났던 인물들이다. 앞으로 한은에 ‘인사폭풍’이 불어 닥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 후보자 스스로도 2012년 4월 당시 부총재를 끝으로 한은을 떠나면서 김 총재의 조직 운영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 바 있다. 이후 한은엔 김 총재가 발탁해 중용한 인사들을 일컫는 ‘김중수 키즈’, ‘독수리 5남매’, ‘리틀 김중수’ 등의 조어가 회자돼왔다. 앞서의 금융권 관계자는 “외곽으로 밀려난 이들을 복귀시켜 현재 핵심 라인을 교체하는 ‘주얼리(주열, 리)의 칼바람’이 불 것이란 이야기가 파다하다. 구체적인 인선안도 나돌고 있다”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전했다.
이 후보자의 부상으로 그동안 국내 금융권을 쥐락펴락 했던 ‘모피아(옛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덕훈 전 우리은행장이 최근 수출입은행장에 임명됐는데, 민간 은행 출신이 그 자리에 앉은 것은 21년 만이다. 외환은행에서도 모피아 출신인 윤용로 현 행장을 밀어내고 내부 출신인 김한조 외환캐피탈 사장이 내정됐다. 지난해 말에는 권선주 기업은행장이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모피아 출신을 따돌리고 사상 첫 여성 은행장이 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특수은행과 17개 시중지방은행장(수협 제외)이 모두 비 모피아로 물갈이 됐고, 그중 서강연세대 출신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이 권력 이동의 배경에 청와대가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