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영 우리당 의장이 지난 14일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를 방문했다. 이종현 기자 | ||
대선자금 수사로 불이 붙은 정치개혁 열망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꽃피워내 한국 정치를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곧 ‘4급수’ 정치를 ‘1급수’로 끌어올려 국가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하는 시대적 과제와도 맥이 통한다.
이런 점에서 17대 총선에 영향을 미칠 각종 변수와 흐름을 미리 짚어보고 유권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제시된 일반적인 총선 변수로는 물갈이의 진폭, 세대교체의 수준, 지역주의 수위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밖에도 이번 선거에 적잖이 영향을 미칠 ‘숨은 1인치’ 변수들도 많다. 이번 설에는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함께 5대 관전 포인트를 ‘화투’ 삼아 ‘정치판’을 휘저어보는 것이 어떨까.
1. 극과 극 달리는 ‘노무현 효과’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월14일 기자회견에서 “열린우리당 입당 시기는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입당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정성 시비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힘을 실어줘 이번 총선을 ‘개혁 대 반(비)개혁’ 구도로 이끌어가겠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속내다.
일각에선 노 대통령이 오는 2월께 현 각료와 청와대 고위인사들, 친노 성향 정치신인을 대거 규합해 우리당에 입당한 뒤 총선에 승부수를 던지는 ‘올인 전략’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열린우리당은 ‘대통령 입당’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노풍의 재점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각종 ‘장밋빛’ 공약을 제시할 수 있는 여당 프리미엄도 무시 못할 강점이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1년간 노 대통령의 실정에 민심이 완전히 등을 돌렸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노무현 입당’이 곧 열린우리당 파멸의 서막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밖에 대선자금 수사와 측근비리 특검의 두 변수가 ‘노무현 효과’를 극대화 내지는 반감시킬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결국 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평가에 따라 ‘노무현 효과’는 극과 극을 달릴 것이다.
2.‘사지’에서 얼마나 살아남을까
노무현 대통령은 17대 총선의 최대 화두로 지역주의 타파를 꼽고 있다. 먼저 관심을 끄는 곳이 한나라당의 전통적 텃밭인 영남지역이다. 노 대통령은 특히 대구·경북 지역에 중량급 인사나 측근들을 대거 출마시켜 길 뚫기에 나설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 핵심부에선 ‘떨어지더라도 나가서 싸우다 죽어야 한다’는 이른바 ‘옥쇄론’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대구·경북권에선 당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지역에 따라 다소 편차가 있지만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여전히 10%대 미만에 머물러 있다고 전해진다. 또한 한 번 선택하면 쉽게 변하지 않는 보수적인 정서도 열린우리당에 대한 파격적인 선택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한나라당 또한 호남지역에서 비슷한 처지다. 한나라당은 이번만큼은 반드시 호남권에서 의원을 배출시키겠다는 각오다. 최병렬 대표는 최근 “전남·광주·전북지역에 각각 1명씩 3명이 당선될 수 있는 전국구 순번을 주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전국구(비례대표)와 지역구를 동시에 출마할 수 있는 ‘석패율제’를 이번 선거에 관철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사지’에서 깃발을 꽂기 위한 나름의 방책인 셈이다.
이처럼 각 당에 뚜렷한 ‘취약지역’이 있는 현재의 고질적 지역 구도는 최근 정치권이 협의중인 ‘권역별 정당명부제’가 실시될 경우 커다란 변화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즉 각 당이 비례대표를 권역별로 뽑음으로써 ‘사지’에서도 금배지를 배출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 조순형 대표 등 민주당 의원들이 15일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을 반개혁세력이라고 규정한 데 대한 항의로 청와대 앞에서 침묵시위를 벌였다. 임준선 기자 | ||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에서도 영남지역의 압승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영남 사람들이 ‘생각 없는 거수기’ 역할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적신호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어 당도 바짝 긴장한 상태다.
그 단초는 지난해 지하철 화재 참사 이후 대구의 민심에서 발견된다.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뒤 한나라당 의원들과 단체장들의 무기력한 사후 수습 능력에 민심이 폭발 일보직전까지 갔던 게 사실이다. 지하철 참사 이후 실시한 지역 여론조사에서는 ‘총선에서 현역 의원을 찍지 않겠다’는 응답이 70%에 달했다.
그렇다고 지역 정서상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을 한나라당의 대안으로 상정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이런 까닭에 이번 대구·경북지역 선거에서는 무소속이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공을 들이고 있는 부산·경남지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기류가 발견된다. 특히 경남지역의 경우 ‘당선 매너리즘’에 빠진 일부 중진 의원들에 대해 유권자들이 크게 실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 정당이 없다’고 밝힌 ‘무당파’가 상당 비율을 차지하는 것도 무소속 돌풍의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4. 영입경쟁 승자는?
현재 각 당은 개혁적이고 참신한 외부 인사 영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영입 인사들의 활약 여부에 따라 총선 성적표도 크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 하지만 현재까지 어떤 당도 영입 경쟁에서 뚜렷한 우위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먼저 한나라당은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을 중심으로 각계 명망가들의 영입작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물갈이가 한바탕 지나가야 그 빈자리에 새로운 인물을 채울 수 있어 아직까지 뚜렷한 실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한선교(경기 용인을), 이계진씨(강원 원주) 등 유명 방송인을 영입해 어려운 ‘수혈’작업에 다소 숨통을 틔운 상태다.
민주당은 최근 MBC 앵커 출신 박영선씨 영입에 공을 들였으나 박씨가 열린우리당을 선택함으로써 쓴맛을 봤다. 그래서 ‘라이벌’ 열린우리당과의 영입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최인기 전 행자부 장관, 박준영 전 청와대 공보수석, 조순용 전 정무수석 등 ‘김대중 정부’ 인사 ‘빅3’를 영입해 열린우리당의 호남 공략에 대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영입인사들이 공천 방식을 두고 비난 성명을 발표하는 등 자중지란을 겪고 있어 획기적인 수습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열린우리당은 ‘정동영 효과’로 당세가 뻗어나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외부 인사 영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정 의장도 청와대에 직접 ‘구원요청’을 하는 등 적극적인 ‘구애’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이 내부적으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강남 갑에서 최병렬 대표와 맞대결하는 카드’ 등을 여전히 만지작거리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5. ‘3김’ 마지막 영향력 미칠까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은 30여 년 동안 한국 정치의 최정점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정객들은 노무현 정부 탄생과 함께 “이제 3김 시대는 저물었다”고 말했지만 이번 총선에선 다시 3김의 긴 그림자가 발견된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최근 ‘안풍’ 사건과 관련해 수세에 몰려 있다. 9백억대의 자금을 강삼재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에게 직접 건네줬다는 의혹 때문이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이번 사건이 총선에서 역효과를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모든 책임을 YS에게 떠넘기려는 듯한 한나라당의 태도가 부산·경남권(PK)에서 반작용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 거제에서 무소속 출마 예정인 YS의 차남 현철씨가 어떤 ‘성적’을 올리는가가 주목된다.
반면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이번 선거에서 더욱 주가를 올릴 전망이다. 아직까지도 호남 민심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국민의 정부 시절 DJ맨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눈물겨운 경쟁을 펼치고 있다. 맏아들 홍일씨가 목포에서 또 출마한다면 YS처럼 아들을 위해 ‘김심’을 드러낼지도 주목거리다.
김종필(JP) 자민련 총재는 최근 ‘총선 뒤 2선 후퇴’를 선언했다. 거꾸로 읽자면 이번 총선에서 여한 없이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는 심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