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가 이부진 “올해는 성장 원년”
등기이사로 재선임 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의장직을 직접 맡아 주주총회를 진행했다. 사진제공=호텔신라
지난 14일 삼성그룹 17개 상장사 전부가 일제히 개최한 주총은 아슬아슬한 분위기 속에서도 비교적 무탈하게 마무리됐다. 주력사인 삼성전자는 지난해 주총 때 출범시킨 ‘3톱’ 경영체제를 그대로 유지했다. 부품(DS)부문장인 권오현 부회장, 소비자가전(CE)부문장 윤부근 사장, IT무선(IM)부문장 신종균 사장이 각자대표로 주요 사업부문을 나눠서 이끌게 됐다.
이번 주총에서도 이건희 회장이나 그의 장남 이재용 부회장의 등기이사 등재는 이뤄지지 않았다. 경영책임과 법적책임 소재가 불일치하는 상황, 그렇다고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오너 일가의 ‘그림자 경영’에 대한 문제점은 실적호조에 대한 기대와 배당금 잔치, 경영비전 발표에 올해도 가려졌다.
주주들은 삼성전자가 지난해 매출 229조 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점을 감안해 박수로 안건을 신속히 승인했다. 사내외 이사 9명의 총 보수한도를 일반보수 300억 원과 장기성과보수 180억 원을 합쳐 총 480억 원으로 결정했다. 지난해 총 380억 원에서 26%가 늘어난 것이다. 보통주 1주당 1만 3800원, 우선주 1주당 1만 3850원의 기말 배당도 결정했다. 이는 지난해(보통주 7500원)보다 84% 늘어난 수준이다. 중간 배당금까지 더하면 삼성전자가 지급하는 연간 총 배당금은 2조 816억 원으로 지난해(1조 1313억 원)에 비해 45% 증가한다.
삼성가에서 계열사 등기이사직을 맡은 유일한 오너 경영인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도 이날 주총에서 재선임됐다. 의장직을 직접 맡은 이 사장은 인사말에서 올해를 성장과 도약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재계 2위 현대차그룹에선 오너 경영인들이 등기이사로 재선임되면서 법적 지위를 다졌고, 3세로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포석도 놓았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 주총에서 재선임됐으나 현대제철 등기이사직에서는 임기를 마치고 물러났다. 업계에서는 정 회장의 이번 퇴진이 후계자인 정의선 부회장의 입지를 다져주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그룹 내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정의선 부회장은 이날 열린 현대모비스 주총에서도 등기이사에 재선임됐다. 이에 따라 정 부회장은 올해부터 현대차그룹 내에서 현대모비스를 비롯해 현대차, 기아차, 현대제철, 현대오토에버, 현대엔지비, 총 6개 계열사의 등기이사를 맡게 된다. 아버지(현대차, 현대모비스, 현대파워텍, 현대엔지비, 현대건설)보다 더 많은 계열사에 법적 책임을 지게 되는 셈이다. 부자간에 수직분업구조 형태의 경영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LG전자도 이날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정기 주총을 열고 임기가 만료된 오너 경영인인 구본준 부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했다.
포스코는 이날 주총에서 새 리더를 맞았다. 권오준 사장(기술부문장)을 제8대 회장으로 선임했다. 권 회장은 재무와 조직 부문에서 쇄신을 단행하겠다고 밝혀 대대적인 사업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재계 6위(공기업 제외)의 몸집을 갖고 있지만 수익성은 그에 걸맞지 않게 악화된 포스코의 위기감이 나타난 주총이었다.
오는 21일 열리는 다른 대기업들의 주총에서는 ‘오너 경영체제’가 최대의 도전을 받게 된다.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이번 주총를 거쳐 등기이사에서 퇴진할 예정이다.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 기업은 도의적 책임을 인정한 오너 경영인들이 경영일선에서 퇴진하는 대신 전문경영인들의 집단경영체제를 주총을 통해 확립하게 된다. 오랜 재벌그룹의 관행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신해야 하는 분수령에 서 있다.
박웅채 언론인
소액주주들 현장 모습 이들 따돌리려 116곳이 한 날에? 지난 14일 ‘슈퍼 주총데이’에서도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의안에 대한 찬반투표에서 대세를 바꿀 만한 영향력을 갖지는 못했지만, 국민연금의 주주권 강화 움직임 등과 맞물려 눈길을 끌었다. 삼성전자(위)와 포스코의 주주총회 모습. 삼성전자의 주총은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지만, 소액주주가 회의 중간에 질문을 던지거나 발언 기회를 요청하면서 의장을 맡은 권오현 부회장이 진땀을 흘렸다. 자신을 소액주주라고 밝힌 한 남성은 “사내이사 4명과 사외이사 5명, 즉 총 9명의 이사들이 480억 원 받는다는 건 엄청난 일”이라며 “이사들의 개별적인 지급 내역은 밝히고 있지 않은데, 주주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밝혀줬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또 다른 주주는 “한국 최고의 회사인 만큼 이익이 많았으면 배당도 많이 해줘야 할 것이다. 이사보수한도 상승도 있는데 개인주주는 별 소득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삼엄한 분위기를 연출한 포스코 주총장에선 한 주주가 근로자 처우 개선 문제를 놓고 이사회 및 다른 주주들과 충돌하는 일도 벌어졌다. 사내 하청 노동자임을 자처한 한 주주는 “이사 보수한도는 현재 과도한 수준이며 노동자들 수준으로 더욱 낮춰야 한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맞다. 내려라”, “이사들이 뭘 했다고 보수를 올려주느냐”는 등 일부 동조의 목소리가 나왔다. 결국 이 주주는 주총이 끝난 직후 경호원들에 의해 강제로 끌려 나갔다. 한편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의 상장법인 116개 업체가 같은 날 일제히 주주총회를 여는 것을 두고 “주주로부터 곤란한 질문을 받지 않으려는 이유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꼼수’라고 비꼰 셈이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