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흔들리고 있다. 총선이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지지도 하락 ▲물갈이 논란 ▲총선전략을 둘러싼 내부 갈등 등 ‘악재’가 겹치면서 시련을 맞고 있는 것.
지난해 11월28일 전당대회 이후 이른바 ‘조순형 효과’로 지지도 1위를 차지했던 것도 잠시, 최근엔 ‘고정적’ 3위로 떨어졌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전당대회(1월11일) 이후 ‘정동영 효과’로 지지도 1위에 올라 민주당을 긴장시키고 있다.
▲ 지난 15일 조순형 대표 등 민주당 당직자들의 청와대 앞 침묵시위를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들고 가로막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다급한 사정은 조순형 대표의 ‘입’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1월8일과 15일 두 차례 가진 기자회견에서 조 대표는 노 대통령의 ‘양강 구도 만들기’를 저지하는 데 사활을 걸 것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15일엔 평소 품격있는 ‘쓴소리’로 정평이 있는 조 대표가 ‘악담’(惡談)이라 할 만한 수사로 노 대통령을 맹비난해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조 대표가 발끈한 것은 노 대통령이 전날(14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을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집단인 양 비하했다”는 것 때문. 그러나 노 대통령이 ‘민주당=반(反) 개혁집단’이라 직접 지칭한 것도 아니고, 맥락상 지난 대선에서 반노(反盧) 입장에 섰던 후단협 인사들을 지칭한 것으로 해석하는 의견이 더 많다는 점에서 ‘오버 액션’이란 평가다.
“자신이 마시던 우물에 침을 뱉는 행위” “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덕성과 품성, 신의도 갖추지 못했다” “더러운 입으로 개혁을 말해서는 안 된다” “노 대통령의 언어습관이 국가적 불행을 낳고 있다. 가장 시급하게 개혁돼야 할 것은 노 대통령의 입”이라며 맹공을 퍼부은 것은 오히려 민주당이 위기감을 스스로 드러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추락하고 있는 정당지지도도 민주당의 ‘양강 구도 공포증’을 배가시키는 원인. 열린우리당이 전당대회 직후 지지도 1위로 올라섰다는 내용의 리서치&리서치, 한국사회여론연구소-TNS 조사를 내놓을 당시만 해도 “사이비 개혁세력의 치밀하고 음습한 여론조작”(김영환 상임중앙위원)이라고 평가절하했던 민주당은 ‘열린우리당 1위-민주당 3위’의 여론조사 결과가 계속 나오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MBC-코리아리서치 조사(1월16일 보도)에서 열린우리당이 24.5%의 지지율로 한나라당(20.1%)은 물론 민주당(11.6%)을 두 배 이상 앞선 것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사태. 앞선 리서치&리서치 조사(열린우리당 20.7%-한나라당 20.6%-민주당 12%), 한사연-TNS조사(열린우리당 25.8%-한나라당 19.6%-민주당 9.3%)와 격차가 그대로 유지되거나 오히려 확대된 것이다. 우려했던 대로 ‘양강 구도’가 여론조사를 통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은 겉으론 “전당대회 효과에다, 50대 초반의 정동영 의원이 당 대표가 된 데 따른 일시적인 상승세”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지만, 실제 파장은 상당했다. 특히 전북 출신인 정 의장이 열린우리당의 상승세를 리드하면서, 호남권 저변의 노 대통령에 대한 ‘분열과 배신’ 주장을 중화시키고 있음에 긴장하고 있다.
아울러 L, K의원 등 전남지역 일부 의원들의 탈당설이 대두되면서 사정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양상. 노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염동연 전 대통령후보 정무특보는 최근 기자들에게 “조만간 몇몇 민주당 호남 의원들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할 것”이라고 공언, 눈길을 끌었다.
문제는 민주당이 여권 핵심부의 ‘양강 구도 만들기’ 전략이 전방위적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주장하면서도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공중파 TV 3사의 시사토론 프로그램이 주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의원들만을 초청하고 있는 데 대해 민주당은 “‘민주당 죽이기’에 방송 3사가 보조를 맞추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어디에선가 민주당 고사작전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장전형 수석 부대변인)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책이라곤 조 대표 명의의 항의서한을 보내는 것이 고작. 뉴스의 초점에서 사라져가고 있음에도 상황을 반전시킬 계기를 못 찾고 있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다.
시선을 당 안으로 돌려보면 물갈이를 둘러싼 내부 논란이 지지도 하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고령-다선 의원은 물론 40대 초선(오세훈 의원)까지 ‘불출마 러시’를 이루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텃밭인 호남지역 의원들 중 아직 단 한 명의 불출마 선언도 나오지 않고 있다.
그나마 지금의 공천제도가 현역 의원들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며 영입 인사들이 강력 반발하자 한화갑 김상현 강운태 의원 등 광주·전남 의원 9명이 ‘여론조사에 의한 공천방안’을 수용했지만, 탈락자들이 결과에 승복할지는 미지수란 평가다. 특히 전북 의원 전원, 전남 의원 절반이 이 방안을 거부해 이래저래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도부의 정치력도 도마에 올랐다. 우선 조 대표는 ‘공천혁명=물갈이’ 논의가 소용돌이치고 있음에도 “인위적 물갈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경선, 총선 과정에서 당원과 국민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만 강조해 “위기의식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 추미애 김영환 상임중앙위원은 호남 중진들의 용퇴 또는 수도권 출마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에 대해 ‘살신성인의 자세로’ 고향인 대구(추 위원), 충북 괴산(김 위원)에 나서라는 요구에 대해선 입을 닫아 뒷말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김경재 상임중앙위원은 자민련 안동선 의원, 김민석 전 의원의 재입당·복당을 추진하면서 소장·개혁파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 “지도부가 분란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총선전략을 둘러싼 갈등도 분란의 요인. 조 대표 등 지도부와 구주류측은 여권 핵심부의 양강 구도 드라이브에 맞서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분열-배신세력’ ‘PK(부산·경남)신당’ 등으로 규정해 주적(主敵)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야 호남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지지층의 결집을 이뤄낼 수 있고, 그 바람이 수도권으로 올라와야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열린우리당과의 재통합론에 기대를 걸고 있는 수도권 의원 대부분과 일부 호남 의원들은 `반노(反盧)를 주요 테마로 할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을 주적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특히 기조위원장과 총선기획단장을 겸임하며 전략 수립에 핵심역할을 맡고 있는 이낙연 의원은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을 끌어내리려 하고 열린우리당은 노 대통령을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그러나 민주당은 노 대통령을 바로 세우고 바르게 끌고 가야 한다. 왜냐하면 노무현 후보를 공천하고 공약을 제시해 대통령으로 탄생시킨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해 지도부와 현격한 견해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준원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