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최근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투기책도 그런 모양새. 국세청은 최근 강남지역 재건축아파트와 주상복합아파트 투기거래 혐의자 4백48명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또 사유재산침해 논란이 있음에도 일정 기간이 지난 재건축아파트에 대해서는 거래를 금지시켰다. 뿐만 아니라 재건축을 추진할 때 전용면적 25.7평형 이하의 국민주택 규모를 60% 이상 짓도록 해 기대수익률을 대폭 낮췄다.이처럼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 칼을 빼들었지만 이미 부동산전문 투기꾼들은 다 빠져 나가고 은행 대출을 받아 뒤늦게 부동산에 시장에 뛰어든 개미들만 가격 폭락이라는 폭탄을 맞게 됐다.
지난 9월 초 정부의 부동산시장 안정대책이 나오기 직전, 이미 강남권을 중심으로 한 투기꾼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재건축시장 안정의 강력한 대책이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발빠른 투기꾼들은 아파트 시장에서 발을 빼거나 정부의 대책에도 흔들리지 않는 우량 재건축아파트로 갈아 탔다. 일부는 아파트 시장에서 발을 빼 토지시장으로 눈을 돌렸고 현금화시켜 다음 먹거리를 찾아 나섰다.
이처럼 항상 정부의 대책에 한발 앞서가는 이들 투기꾼들의 정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들에게는 정보가 바로 돈이다. 투기꾼들마다 주종목이 다르다. 재개발이 전문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강남권 재건축 시장을 꿰뚫고 있는 사람, 충청권 토지시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들은 전화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교류하며 자신의 노하우를 나누기도 한다. 물론 철저하게 ‘기브 앤드 테이크’(give and take)다.
현재 투기꾼들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분야는 재건축 아파트를 비롯한 재개발, 토지 등 크게 3개 시장으로 나뉜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 분야가 있지만 투기꾼들은 그 특성상 개미들의 돈이 많이 유입되는 시장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다. 그중에서도 재건축 아파트는 대표적 투기대상. 부동산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재건축아파트 인근 중개업소를 한번쯤은 기웃거렸을 정도로 이 시장에 많은 돈이 몰리고 있다. 돈이 몰리는 만큼 투기꾼들에게는 가장 좋은 대상이다. 특히 재건축아파트는 사업단계에 따라 가격이 급등하기 때문에 단기차익을 노리기에는 더할 수 없이 좋다.
지난 6월 강남 양재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K씨는 강남의 대표적 저층 재건축아파트인 개포주공1단지가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했다는 소식을 지인에게서 듣자마자 15평형을 4억8천만원에 매수하기로 하고 4천만원을 계약금으로 걸었다. 곧이어 정밀안전진단이 통과됐다는 발표가 있자 매수자들이 몰려들고 매물이 사라지면서 가격이 순식간에 5천만원이나 올랐다. 시간이 갈수록 더 오르자 매도자가 5천만원을 돌려주면서 계약을 포기했다. 현재 이 아파트는 최고 6억7천만원을 호가한다.
이처럼 투기꾼들이 단기차익을 얻는 대표적인 방법은 해약을 미리 염두에 두고 아파트를 매입하는 것이다. 재건축아파트는 안전진단을 통과하거나 조합설립인가를 받는 등 호재가 있을 경우 하룻밤에 최고 5천만 이상 급등한다. 때문에 관련 정보를 미리 파악해 공식발표 전 아파트를 계약하는 것이다.
호재가 시장에 알려지면서 가격이 급등해 계약금보다 아파트 오름폭이 크면 매도자 입장에서 계약을 해지하는 게 더 이익. 실제로 강동구 고덕주공1단지는 지난 4월 안전진단이 통과되면서 하루 만에 5천만원 이상 값이 올랐다. 당시 안전진단 결과 발표 전 4억2천만원선이었던 이 아파트 15평형의 시세는 4억7천만원선으로 뛰어올랐다. 통상 아파트값의 10%를 계약금으로 거는 것을 감안하면 매수자에게 4천만원을 돌려줘도 매도자가 다른 사람에게 팔 경우 1천만원이 이익인 셈이다.
‘해약용 투자’를 통해 단기차익을 얻기 위해선 일단 작업 대상 재건축아파트를 몇 개 고른 뒤 해당 아파트가 있는 곳의 중개업소 한 곳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조합관계자와도 친분관계를 쌓는 것이 필수다. 고덕주공 앞 한 중개업소 관계자에 따르면 “안전진단 결과 발표를 앞두고 중개업소에 무조건 매물을 잡아달라며 인터넷 뱅킹으로 계약금을 치르던 사례가 빈번했다”며 “얼마되지 않아 고덕1단지의 안전진단이 통과돼 평형별로 5천만원 이상 급등했고 일부 집주인들이 계약금의 2배를 돌려주면서 계약을 해지하는 사태가 줄을 이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재건축 시공사 선정도 투기꾼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호재다. 시공사를 선정해 재건축이 본격화되는 국면에 부동산값이 상승세를 타는 것을 노리는 수법. 지난 4월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아파트는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2주 사이에 평형별로 최고 1억∼3억원이 폭등했다. 물론 이곳에서도 계약 해지가 이어졌다. 이처럼 많은 투기꾼들이 ‘해약용’으로 아파트를 사들인 뒤 단기차익을 노리는 것은 등기부등본상에 이름이 남지도 않고, 세금도 내지 않아 가장 깔끔하기 때문.
투기꾼들을 움직이게 하는 정보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 나온다. 가장 간단한 게 바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이다. 언론사 등 정보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각종 정보를 수집한 뒤 발빠르게 중개업소에 나온 매물을 낚아 챈다. 물론 이때는 현지 중개업자와의 긴밀한 협조체제도 중요하다. 매수자의 얼굴도 보지 않고 중개업자가 대신 계약을 하고 돈만 인터넷 뱅킹으로 매도자에게 전한다. 불과 한 시간도 안돼 계약이 이뤄지는 것. 이후 저녁 9시 뉴스와 다음날 신문을 통해 호재가 알려지고 매수자들이 본격적으로 몰려들면 단기간에 수천만원을 벌어들인다.
▲ 투기꾼들의 주요 활동무대는 강남 재건축시장과 강북 재개발시장이다. 사진은 부동산 중개업소로 기사 내 특정사실과 관련 없음. | ||
이들 지역은 재건축 연한 완화가 발표되기 얼마 전부터 매수자들이 몰려 현지 중개업소 관계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정보는 서울시 담당부서는 물론 교수와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도시계획심의위원, 조례안을 통과시킨 시의원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접할 수 있다. 또 호재뿐만 아니라 시장이 전반적인 상승세를 타 한달새 1억원 이상 급등하는 경우도 있어 이를 미리 파악해 해약용으로 들어가곤 한다. 급등조짐은 중개업소마다 배포되는 ‘매물장’을 통해 파악한다. 매물장은 인근 아파트단지 중개업소들이 매물을 공유하는 정보지로 매일 발간된다. 매물장을 보면 해당 아파트의 매물갯수를 비롯해 매도호가, 거래건수, 거래가격 등이 한눈에 파악된다. 재개발지역도 투기꾼들의 주요 활동무대.
현재 서울시내 부동산시장 판도는 강남=재건축시장, 강북=재개발시장이다. 강북지역의 경우 투기꾼들은 재개발을 추진할 만한 곳을 사전에 물색한다. 대상은 가구수가 많지 않고 아직 저평가된 곳이 타깃이다. 일단 재개발 예상지역을 찾게 되면 친한 중개업자와 짜고 무차별 매입한다. 이들은 주로 다가구주택과 단독주택을 표적삼아 ‘지분 쪼개기’를 통해 매입하는 게 일반적. 지분 쪼개기는 현행법상 ‘다가구주택이 일정한 조건을 갖추면 가구별로 등기이전을 할 수 있는 다세대주택으로 변경’하는 것. 단독주택도 지분 쪼개기의 주요 대상이다.
지분 쪼개기를 통해 매물을 다수 확보한 뒤 부동산 중개업소를 통해 해당 지역이 재개발될 것처럼 선전해 투기를 조장한다. 재개발컨설팅사를 선정해 재개발조합을 만들고, 시공사도 곧 선정할 것처럼 소문을 낸다. 일부에서는 언론 플레이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이쯤되면 매수자들이 몰려들고 나왔던 매물도 자취를 감춘다. 당연히 가격이 급등할 수밖에 없고 이때를 노려 한두 개씩 매물을 푼다. 가격은 처음보다 2∼3배 이상 부풀리게 마련.
한 재개발 전문가는 “투기꾼들이 보통 찍어돌리기에 나설 경우 한번에 40∼50채 이상을 매입해 작전에 들어간다”며 “재개발에 투자해 아파트 한 채라도 마련하고자 뒤늦게 상투를 잡은 서민들만 골탕을 먹는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선수(?)’들이 모이는 곳이 바로 토지시장이다. 토지시장은 일반인들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재개발과 재건축과는 달리 위험요소가 많다. 때문에 수익률도 가장 높다.
이는 최근 신도시로 지정, 발표된 김포와 파주 일대 토지시장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발표 며칠 전부터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정보를 들은 투기꾼들이 해당 지역 중개업소에 몰려들기 시작했고 토지거래도 급증했었다. 하지만 김포와 파주에 투자한 모든 사람이 돈을 번 것은 아니다. 강남 재건축아파트 투자로 재미를 본 주부 L씨는 김포가 신도시로 된다는 소문을 듣고 김포 양촌면 일대 준농림지를 평당 20만원에 4천 평을 사면서 계약금으로 8천만원을 건넸다. 신도시만 발표되면 2배 이상 뛰는 것은 시간문제. 하지만 김포가 신도시로 발표되자 땅주인은 계약금 8천만원을 포기하고 계약을 해지했다. 자신의 땅이 김포신도시 개발에 수용된 요지의 땅이었던 때문.
이처럼 수용될 땅을 사는 초보 투자자들과는 달리 일부 전문 투기꾼들은 어떻게 구했는지 신도시개발도면까지 확보, 신도시에 포함되지 않은 바로 옆지역의 땅을 구입한다. 토지전문 투기꾼들은 행정수도 이전 후보지가 내년에 발표되면 한몫 단단히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벌써부터 현지 답사에 나서는 등 술렁이고 있다.
강화도 초지대교 인근 땅과 화성 병점 일대도 투기꾼들로 붐비는 지역 중 하나. 지난해 8월 강화도 길상면 초지리와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를 잇는 초지대교(강화제2대교)가 개통되면서 지난 2002년 초 평당 40만∼50만원하던 초지대교 인근 도로변 땅이 평당 1백만원선까지 호가했다. 초지대교에서 승용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있는 김포시 운양·장기동, 양촌면 일대도 신도시로 개발된다는 소식에 현재 평당 1백50만원 이상에 거래되고 있다. 대토(代土)용 절대농지가 신도시 발표 이후 두 배 이상 급등했으며, 최근 개통된 초지대교인근 토지도 6개월 사이에 30∼40% 정도 뛰었다.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에 따르면 “초지대교 인근 땅은 대부분 외지인 소유로 최근 매물이 없어 거래를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내년에 김포신도시 토지보상금이 지급되기 시작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강화도 전·답의 가격은 지금보다 2∼3배 이상 또다시 급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포신도시 보상금이 수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일부 투기꾼들은 김포, 파주 신도시 인근지역으로 몰려들고 있다.
전용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courag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