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 신고 장비 들고 수로까지 샅샅이…
운석 추정 물체가 무더기로 발견된 고창 흥덕면 동림저수지 둑길은 운석을 찾으러온 외지인들로 넘쳐났다. 왼쪽은 한 ‘운석 사냥꾼’이 둑길에서 주운 돌멩이를 자석으로 붙여보는 모습. 사진=배해경 기자
국내에서는 71년 만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운석이 발견된 가운데 지난 19일 전북 고창 동림 저수지 부근에서도 운석으로 추정되는 암석이 무더기로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운석을 찾겠다는 사람들이 고창 흥덕면 동림 저수지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조용했던 흥덕면사무소에는 운석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떨어진 위치를 문의하는 전화가 부쩍 늘었다. 흥덕면사무소 관계자는 “방금도 동림저수지 위치를 묻는 전화를 받았다. 시간당 2~3통의 전화를 받는 것 같다”며 “차가 없으면 가기 힘든 곳이라 설명하기 힘들지만 외지인들이 꾸준히 방문하고 있다. 소식이 전해진 당일에는 200여 명이 방문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운석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인 20일 기자가 찾은 고창 흥덕면 석우마을 초입에는 외지에서 온 차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마을 초입을 지나 조금 더 들어서자 운석추정 물체가 목격됐다는 동림저수지 둑길이 나타났다.
둑길 근방은 운석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긴 장화에 자석과 같은 장비로 중무장한 사람도 있었고, 정장차림에 맨손으로 온 사람도 있었다. 모두들 저수지 둑 근처의 풀숲은 물론 인근 수로와 밭까지 샅샅이 훑으며 운석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찾는 데 분주한 모습이었다.
고창에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전주에서 수석 관련 일을 한다는 노진운 씨(55)는 손가락 마디만한 자석을 들고 넓은 둑길을 거닐고 있었다. 노 씨는 “수석을 다루는 일을 하다 보니 암석에 관심이 많다”며 “이곳 돌을 보니 철 성분을 가진 돌멩이가 많은 지역이긴 하다. 운석일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돌을 다루다 보니 암석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고창에서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신기해서 한달음에 달려왔다”고 말했다.
고창 주민인 김진열 씨(57)는 운석이 떨어졌다는 소식에 자신만의 특수장비까지 마련했다. 쓰다 버려둔 골프채에 커다란 자석을 붙인 것. 김 씨는 ‘비장의 무기’ 덕에 허리를 굽혀야 하는 수고를 덜게 됐다며 장비를 뽐내는 데 여념이 없었다. 김 씨는 “(운석은) 먼저 발견한 사람이 다 주워 갔겠지 뭐”라면서도 “그래도 우리 동네에 운석이 떨어졌다고 해서 와봤는데 시커멓게 탄 돌들에 자석을 대보니 붙기도 해서 신기하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긴 장화와 자신만의 장비로 무장한 사람들 사이로 말끔한 정장차림의 이남열 씨(60)가 지인들과 함께 ‘운석 사냥꾼’들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돌멩이를 한 움큼 쥐고 있는 이 씨에게 “운석은 좀 찾았느냐”고 묻자 “이게 운석이겠어? 그냥 자석에 달라붙은 돌 몇 개 주웠다. 친구들이랑 ‘운석찾기 놀이’ 하는 게 재밌어서 놀러왔다”며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고창 주민 김진열 씨는 골프채에 자석을 붙여 운석을 찾고 있었다.
석우마을에 거주하는 조양림 할머니(68)는 “조류독감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는데 지금은 완전히 딴판이다. 우리야 외지인의 방문이 불편할 거야 있겠느냐”며 “경로당에 모인 우리 모두 이번에 자식들한테 전화 한통씩 다 받았다. 고 씨가 운석을 주웠다는 게 뉴스에 나오고 나서는 아버지 산소는 괜찮은지, 엄마도 운석이 떨어지는 거 봤는지 하는 전화가 그렇게 온다더라. 우리는 전화도 오고 좋지 뭐”라고 말했다.
이곳 고창 흥덕면에서 운석으로 추정되는 암석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이 마을에 사는 고연상 씨(54)다. 고 씨는 지난 9일 밤 우연히 하늘에 불기둥이 지나간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뒤 진주에서 운석이 발견됐다는 뉴스를 보고 지난 번 일이 생각나 불기둥이 사라진 저수지 둑길에 갔더니 검은색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고창군은 전문기관에 의뢰해 이 암석이 운석인지에 대해 정밀 조사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발견된 운석추정 물체는 운석이 아닐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고창군으로부터 운석 추정 물체 사진을 받아 1차 감정에 나선 서울대 운석연구실 측은 “운석으로 단정할 만한 특징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며 “이 암석들은 풍화가 상당히 진행되었다. 앞서 진주에서 발견된 운석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는 의견을 전했다.
하지만 목격자인 고 씨의 목격담이 구체적이고 목격된 시간도 이번 진주에서 발견된 운석과 같아 운석일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운석추정 물체를 최초로 발견했다는 고 씨는 “지붕 위로 불기둥이 지나가기에 혼불인가 했다. 그런데 다음 날 뉴스에 나온 진주 운석 소식을 듣게 돼 불기둥이 떨어진 위치로 가봤다. 운석인지 아닌지 나도 궁금해서 의뢰를 했는데 이렇게 뉴스가 돼서 나도 당황스럽다. 만약 진짜 운석인 경우 나라에 기증하는 것은 그때 가서 고민할 문제”라며 “운석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그날 그 불기둥을 본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자도 운 좋게 운석으로 추정되는 암석 하나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동림저수지를 찾은 수석전문가 노진운 씨는 “내가 몇 개 주웠는데, ‘이게 운석이기야 하겠느냐’만은 그래도 재밌는 해프닝이지 않으냐. 기자양반도 하나 가져가”라며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 하나를 건네며 웃어보였다. 그 ‘돌멩이’가 ‘로또 운석’으로 판정나길 기대해 보며 서울행 버스에 올랐다.
고창=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