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방안 헤매는 동안 ‘심마니’들이 ‘쏙쏙’
운석을 찾기 위해 논둑을 살피는 사람들(위)과 대구의 한 노인대학에서 단체로 관광버스 두 대를 빌려 현장을 찾은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전국 곳곳의 하늘에서 불빛이 떨어지는 장면이 목격된 지난 9일 이후 대한민국은 ‘운석 광풍’에 휩싸였다. 수원 산청 양산 진주 등지에서 발견됐다는 목격담이 쏟아졌다. 이튿날 경남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 파프리카 재배 비닐하우스에서 무게 9.4㎏ 상당의 운석이 발견된 데 이어 다음 날에도 인근 미천면 오방리 콩밭에서 4.1㎏의 운석이 또 발견됐다. 운석 발견이 흔한 일도 아닌 데다 엄청난 몸값을 자랑한다는 소문까지 더해져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다.
운석 열풍은 평온했던 시골마을을 헤집어 놨다. 지난 19일 기자가 찾은 진주 중촌마을(두 번째 운석이 발견된 곳)은 평일임에도 ‘운석 심마니’들로 가득했다. 심지어 대구의 한 노인대학에서 관광버스 2대를 빌려 70여 명이 단체로 현장을 찾기도 했다.
부산에서 왔다는 김민중 씨(32)는 “주말에도 왔었는데 그날 또 다시 운석으로 추정되는 돌이 발견됐다기에 한 번 더 찾았다. 밤늦게 장사를 해서 원래 이 시간엔 자야 하는데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고 있다”며 “며칠씩 차에서 잠을 자며 운석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봤다. 하나의 운석이 분리돼 아직 발견되지 못한 것들도 있다고 하니 다들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을 인근의 도로는 김 씨 일행처럼 운석을 찾기 위해 원정 온 외지인들의 차량으로 가득했다. 주민 황이순 씨(76)는 “주말, 평일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많이 온다. 진주에서도 오고 전라도에서 왔다는 사람도 봤다. 마을이 시끄러워져서 미안하다며 과자나 술을 사주고 가는 사람도 있었는데 내 평생 이렇게 사람들을 많이 보긴 처음”이라며 “우리들은(주민들) 다리가 아파서 운석이 있다고 해도 못 찾으러 간다. 그런데 미국인도 오고 이상한 기계도 보이고 사냥개까지 돌아다니니 신기하긴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사람들이 많이 찾으니 활기 있고 좋다”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주민 박우석 씨(64)는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다 알고 지내는 사이라 문단속이란 걸 모르고 살았는데 요새는 밖에 나오면 문을 잠그고 나온다. 아랫마을에서 반지 도둑이 들었다는 얘기도 들리고 해서 불안하다. 마음대로 화장실을 쓰고 집까지 들락거리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두 번째 운석 발견자 박상덕 씨가 운석이 발견된 지점에 꽂아둔 깃발. 몰려드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장소를 설명하기 힘들어서라고.
밭을 살피던 박수웅 씨(73)도 “사람들이 하도 휘젓고 다니는 바람에 과수원 나무들도 많이 상했다. 꽃이 필 때라 조심해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소용이 없었다. 논이고 밭이고 사람들이 하도 밟아 땅이 딱딱해져서 좀 있다 농사지으려면 고생하게 생겼다. 개들도 낯선 사람들을 보고 밤낮 없이 짖고 짐승들도 못할 짓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인근의 운석 관련 연구소와 파출소에도 덩달아 비상이 걸렸다. 진주교육대 부설 한국지질유산연구소장 김경수 교수는 “운석인지 아닌지 봐달라는 문의가 하루 평균 5건 이상은 접수되고 있다. 사진을 찍어 보내면 일단 아닌 게 분명한 것들은 판단을 해주고 나머지는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 최변각 교수의 연구소로 연결시켜주고 있다. 그곳에도 벌써 300건 이상 문의가 접수된 상태”라며 “관심은 좋지만 방문객들이 운석 발견 장소를 훼손하는 등의 문제가 있다. 첫 번째 운석이 발견된 비닐하우스는 출입금지를 시켜 그나마 사정이 좋은 편이나 두 번째 장소는 거의 방치되고 있다. 시나 국가에서 조치가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길을 묻는 외지인들을 안내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대곡파출소 성광일 소장도 “마을로 진입하는 삼거리가 차로 가득 찬 모습은 처음 봤다. 하루 200~300명은 족히 다녀간 것 같다. GPS 기기를 가지고 찾는 사람도 있었다. 그중엔 사과만한 크기의 운석(추정) 2개를 줍고 신고도 하지 않고 가기도 했다”며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범죄나 사고를 대비해 순찰을 강화하는 등 신경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문화재청은 정홍원 총리의 운석 관리 검토 지시에 따라 “진주 운석에 대해 문화재보호법상 문화재적 가치가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운석이 발견된 진주시 대곡면과 미천면 일대에서 낙하지점을 현장 조사하고 국외 반출을 막기 위해 지난 17일 국제공항·항만 등에 통관검색 강화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진주 운석이 세계적으로는 흔한 종류의 운석이긴 하나 국내에서 낙하지점이 확인된 운석은 드물어 문화재 및 학술적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설명이다.
첫 번째 운석이 떨어진 강원기 씨 비닐하우스.
하지만 이런 조치가 너무 늦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진주 현지에서는 “운석은 이미 거의 다 없어졌을 것이다. 운석을 발견하면 관계당국에 신고도 하지 않고 몰래 가져가버리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었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운석 심마니’들에 의해 상당수가 밀반출되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천연기념물 지정 여부도 논란이 되고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진주 운석이 천연기념물로 최종 고시되기까지는 2~3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문제는 천연기념물 지정 이후 소유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다. 문화재청 측은 “문화재로 지정될 경우 소유권 문제는 검토해봐야 할 사안”이라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지만 여론이 심상치 않다. 벌써부터 문화재청 홈페이지에는 “개인의 재산을 훔쳐간다” “도둑이나 다름없다” “국가가 해준 게 뭐가 있느냐. 개인에게 줘라”는 등의 항의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두 번째 운석을 발견한 박상덕 씨(80)도 “운석을 외국에 팔 생각은 없지만 나라에서 가져간다면 어느 정도 보상은 해줘야 되지 않겠나. 그냥 넘겨줄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진주시도 나서 이번에 발견된 운석을 시민 재산으로 보존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혀 문화재청과 미묘한 기 싸움에 나선 모양새다. 지난 19일 이창희 진주시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진주 운석은 해방 이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데다 최초로 우리나라가 소유권을 갖는 만큼 진주시민의 재산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다”며 “운석의 학술적·문화적 가치를 살리도록 반드시 진주시민의 재산으로 보호하고 관광자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정에 따라 시에서 운석을 사들이는 방법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천연기념물 지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자 학계에서는 국가가 최초 발견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고 운석을 사들이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김경수 교수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든 아니든 국가에서 사들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학술적 가치가 높은 운석이니만큼 발견자들에게 섭섭함이 없도록 보상한 뒤 자유로운 연구가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주=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