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계열사 전 간부 회사돈 빼돌려 ‘친구’ 도왔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개인 비리’ 혐의가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채 전 총장과 삼성의 커넥션 의혹도 불거지고 있다. 배경은 서초동 삼성타운.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청와대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뒷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개인 비리 의혹도 드러나 이번 사건이 과연 어디로 튈지 법조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지난해 6월 ‘채동욱 전 총장이 혼외아들로 알려진 채 아무개 군의 계좌로 거액을 송금받았다’는 첩보를 입수해 내사를 벌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당시의 첩보 가운데에는 채 전 총장이 검찰 수사 관련 청탁을 받은 뒤 혼외자 명의 통장으로 거액을 받았다는 의혹은 충격을 주고 있다. 청와대의 뒷조사 경위에 대한 불순성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기도 하지만 평소 ‘파도미남’(의혹을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오는 남자)로 이름이 높았던 검찰의 수장이 검찰 수사 관련 청탁으로 거액을 받았다는 의혹은 검찰총장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비도덕적 행위다.
또한 내연녀로 의심받고 있는 임 아무개 씨와의 돈 거래 정황도 나오고 있다.
검찰은 최근 채 전 총장으로 의심되는 측으로부터 임 씨에게 흘러들어간 돈이 기존 2억 원 외에 1억 9000만 원이 더 있다는 정황을 포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대검 수사기획관 시절이던 지난 2006년 채 전 총장이 직접 제3자를 거쳐 임 씨에게 9000만 원을 보낸 의혹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채 전 총장의 고교동창인 이 아무개 씨(56)의 역할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씨가 채 전 총장의 ‘검사 스폰서’라는 설에서부터, 삼성과 채 전 총장을 잇는 일종의 다리 역할을 했을 가능성까지 여러 가지 말들이 나오고 있다.
선민네트워크 생명살림운동본부 등 12개 기독교 시민단체로 구성된 ‘올바른 시장경제를 위한 기독인연대’는 27일 채 전 총장과 성명불상의 삼성그룹 관계자 2명을 각 뇌물수수와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고발하는 내용의 고발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이 단체는 고발장에서 “채 전 총장의 혼외아들 사건 수사 도중에 채 전 총장의 혼외아들 모친으로 지목된 임 아무개 씨의 관련 계좌로 입금된 2억여 원의 출처가 삼성그룹 계열사로 밝혀졌다”며 “이와 관련해 삼성이 돈을 건넸다는 계열사 인사 선에서 사건을 정리하기 위해 해당 인사에 대해 횡령 혐의로 수사 의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찰 최고 수사책임자가 청탁을 받아 사건을 무마하고 그 대가로 내연녀에게 금전을 지급했다는 강한 의심이 든다”며 “만약 사실이 그렇다면 삼성그룹이 뇌물공여의 당사자로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고 덧붙였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는 지난 25일 삼성으로부터 ‘계열사 인사 이 아무개 씨가 횡령한 17억 원의 회사돈 일부가 채 아무개 군(12)의 계좌로 입금됐다’며 돈의 정확한 출처를 확인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지난달 제출받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 씨는 의료용품 업체 케어캠프 임원으로 재직 시 삼성서울병원에 의료용품과 의료기기를 납품하는 과정에서 자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은 지난 26일 그룹 이인용 미래전략실 사장(커뮤니케이션팀장)의 브리핑을 통해 “이번 사건의 본질은 케어캠프의 전직 간부인 이 아무개 씨가 회사 돈을 횡령한 것이고 이 씨가 횡령한 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는 회사는 전혀 알지 못한다”며 “분명한 사실은 삼성도 피해자라는 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만큼, 검찰 수사에서 모든 의혹이 명백히 밝혀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난 2011년 내부 감사 결과 횡령 사실이 적발돼 퇴사 조치된 이 씨에 대해 뒤늦게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에 대해서는 “현재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내용을 말씀드리는 것이 적절할 것 같지 않다”며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려 보자는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삼성 측의 주장대로 이 씨가 개인적인 친분을 이유로 횡령한 돈 중 2억 원을 채 전 총장을 돕는 데 썼다고 보기에는 단순히 ‘개인이 2억 원을 주겠느냐’는 상식적인 수준을 넘어선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케어캠프가 내부 감사 결과 이 씨의 횡령이 드러난 것은 지난 2011년이었지만, 정작 이 씨는 즉시 해임되지 않고 1년 뒤인 2012년 회사를 떠난 데 이어 그로부터 2년 후인 지난 2월 뒤늦게 이 건에 대해 검찰에 수사 의뢰를 했다. 특히 이 씨는 2012년 3월 말 케어캠프에서 해임 조치됨과 거의 동시에 나노섬유 등을 제조하는 업체인 ‘에프티이앤이(FT EnE)’라는 이름의 코스닥 상장사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도 의혹이 있다.
에프티이앤이는 이 씨가 부사장으로 입사하고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이 씨가 임원으로 재직했던 케어캠프의 모회사이자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중 하나인 삼성물산과 부품 공급 계약을 체결한다. 에프티이앤이는 2012년 9월 5일 삼성물산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건설 중인 쿠라이라 민자발전소의 수축열조에 들어가는 부품 ‘디퓨저’ 2세트를 삼성물산에 공급한다고 밝혔다. 공급 규모는 150만 달러(약 17억 원)였다.
일각에서는 ‘막강한 정보력을 자랑하는 국내 최고의 정보 집합체인 삼성이 자신들의 공금을 횡령한 이 씨가 이 회사 재무총괄 부사장으로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고, 조그만 부품 하나에도 까다로운 검증 잣대를 들이대는 삼성이 굳이 이 같은 회사에 부품 공급을 맡겼을 리 만무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이 회사의 주요 임원들은 채 전 총장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사람들인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일부 언론에서는 ‘이 씨뿐 아니라 대표이사인 박 아무개 사장과 김 아무개 감사도 채 전 총장과 같은 시기에 학교를 다닌 친구 사이’라며 3자간의 친분을 보도한 바 있다. 박 사장과 김 감사는 이 씨와 같은 1958년생이고, 채 전 총장은 1959년 1월 생으로 1958년 생들과 같이 학교를 다녔다. 특히 김 감사는 채 전 총장과 사법연수원 동기(14기)이고, 과거 동서로서 인척의 연을 형성했던 인물이다. 이같은 의혹에 대해 에프티이앤이 측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금 김 감사는 사무실에 없다. 우리들도 피해자이기 때문에 연락하지 말라”고 말했다.
또 한 가지 특이한 사항은 채 전 총장의 고교 동기인 이 씨가 졸업 후 연락이 특별히 없다가 10여 년 전 동문회에서 채 전 총장을 다시 만나 연락을 이어 왔다는 점이다. 이 시기에 채 전 총장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으로 재직하며 삼성에버랜드 CB 저가발행 의혹을 수사 중이었다. 채 전 총장은 이 사건을 이건희 삼성 회장으로까지 수사망을 좁혀 가고 있던 상황에서, 수사 전담 부서가 돌연 특수2부에서 금융조사부로 바뀌면서 수사에서 손을 떼야 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삼성 관계자들은 입장표명을 삼간 채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기자가 접촉한 한 삼성 관계자는 “그룹의 공식 해명 외에는 할 말이 없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황상 이 씨와 삼성의 관계가 의심받을 소지가 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하지만 삼성이 공식적으로 자신들도 피해자라며 수사 결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이번 사건의 의혹도 해소될 전망이다.
한편 이 같은 일련의 스폰서 의혹에 대해 삼성 사정에 정통한 전직 대기업 최고위 임원은 “삼성에서의 출세는 로비력에 달려 있다. 워낙 그런 일들은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 부장급에서도 경우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라며 “횡령한 돈이 채 전 총장에게 들어갔다면 채 전 총장이 장물을 취득한 것이거나 횡령 공범이라는 이야기냐”고 반문했다.
반면 ‘삼성이 채 전 총장을 관리를 할 것 같으면 주요 계열사로 칠 경우 차장급 정도였던 이 씨를 소소한 개인적 친분 하나만 믿고 그를 그룹을 대표하는 ‘전달책으로 삼지 않았을 것’이란 시각도 존재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 같은 대기업들은 내부 횡령 사건 같은 경우 대체로 외부로 드러내길 꺼린다”며 “소위 ‘관리의 삼성’이 일을 그렇게 허술하게 했을 리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가 삼성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채 전 총장과의 개인적 인연 때문에 이 씨가 무리하게 회사돈까지 횡령하며 ‘친구’를 도와준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편 검찰은 스폰서 의혹의 키를 쥐고 있는 이 씨에 대해 소환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소환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구인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또한 삼성 관계자들에 대한 소환 조사에도 본격 돌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