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내가 다니던 룸살롱의 ‘나가요 살생부’에도 내 이름이?”
룸살롱 등 유흥업소를 자주 찾던 직장인 남성들이 때아닌 ‘나가요 살생부’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일부 룸살롱들이 고객관리의 명목으로 고객의 신상과 특징들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던져주고 있는 것. 실제 울산의 한 업소에서는 나가요걸들이 직접 작성해서 업주가 관리해온 이른바 ‘일일고객관리표’란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표에는 윤락 사실 자체는 물론이고 날짜와 시간, 섹스 취향까지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특히 이러한 고객관리표들이 수사기관에 입수될 경우 범죄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자료이자 ‘살생부’로 변하게 될 것이란 점에서 더욱 예민한 사안이 되고 있다.
지난 17일 울산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는 상습적으로 윤락을 알선해오던 울산광역시 남구의 M유흥주점을 급습해 ‘일일고객관리표’란 것을 압수했다. 경찰은 이 명단에 들어 있는 남성들을 소환조사해 혐의가 드러날 경우 형사입건을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 관리표는 소위 ‘2차’를 함께 갔던 윤락녀들이 작성한 것으로 일명 ‘나가요 살생부’였다. 하지만 이는 비단 울산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일요신문> 취재진은 업소 관계자를 통해 “서울 등 많은 업소들도 이 같은 고객파일을 작성해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이번에 적발된 M유흥주점의 ‘일일고객관리표’에는 이름과 직장명, 휴대폰 번호, 다음 약속일 등의 자세한 신상기록은 물론이고, 웃지 못할 내용들도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특히 ‘고객특징’란에는 ‘특급 개진상(온갖 변태적인 성행위를 요구하는 것을 말함)’, ‘4년 만의 아다(첫 성경험자), 3초 만에 끝남’, ‘올밤, 4시간 동안 함’, ‘2번은 기본’ 등 자세한 성관계의 행태까지 적혀있었다.
울산경찰청 관계자는 “이 업소에 출입한 적이 있는 남성들로부터 자신의 이름도 혹시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하려는 전화가 수십 통씩 걸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표에 거론된 다수의 인사들이 한의사, 회계사, 변호사, 대기업 간부 등 지역 유지들이기 때문에 향후 룸살롱 윤락과 관련해 한바탕 후폭풍이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이 룸살롱 관계자들의 전언. 서울 광교에 위치한 K룸살롱 상무 유아무개씨에 따르면 “서비스가 생명인 룸살롱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고객을 관리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요즘에는 장부뿐만 아니라 PDA, 노트북 등 첨단 기기를 이용하는 경우도 많다”고 털어놓았다.
강남 L룸살롱 민아무개 마담 역시 “고객없는 장사가 어디있느냐. 룸살롱처럼 비싼 술집에는 단골고객이 생명이다. 천재가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모든 손님을 기억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또한 “일단 한번이라도 온 손님이 다시 올 경우 재빨리 노트를 펼쳐보고 손님의 예전 기록들을 살펴보는 것은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프로정신”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요즘은 룸살롱도 대형화, 기업화되고 있는 추세여서 일반 기업에 못지 않은 철저한 마케팅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직장명과 직급, 전화번호, 이메일주소 기재는 기본이고 취향에 맞는 아가씨를 들여보내기 위해 다양한 성적 취향을 기록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는 것.
특히 K룸살롱의 경우 별도의 사무실을 갖추고 있으며 이곳에서 기록작업이 이뤄질 뿐 아니라 매일 일정시간에 고객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콜타임(Call Time)’을 갖고 있다. 여기에서 수십 명의 마담, 나가요 아가씨들이 매일 고객을 관리하며 그들을 룸살롱으로 불러내는(Call) 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고객관리 항목도 세분화·다양화되어 있다. 단순한 신상명세를 넘어서 좋아하는 안주, 즐겨부르는 노래 까지 빼놓지 않고 있다. 특히 좋아하는 아가씨의 취향은 매우 중요한 항목. 각각 ‘귀여움’, ‘섹시’, ‘착함’ 등으로 분류해 기록해 놓기도 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를 좋아한다’ ‘손이 예쁜 여자를 특별히 찾는다’ ‘귓불을 깨물어주는 여자를 좋아한다’는 등의 특이사항 항목까지 만들어 놓고 있다.
기록은 파트별로 상세하게 기록돼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다. 웨이터는 손님이 즐겨먹는 술의 종류와 안주를, 나가요 아가씨는 성적취향을, 마담은 신상기록과 즐겨찾는 아가씨 등의 항목을 맡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손님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찰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고객관리표는 단순히 ‘서비스’의 차원으로만 작성되는 것일까. 일부 룸살롱 관계자는 ‘그것만은 아니다’라며 내밀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우선 첫 번째는 수금과 관련된 문제다. 룸살롱의 경우 일부 단골고객에게는 외상을 주고 있고, 여기에 맛을 들인 고객은 심지어 수백만원을 넘어서 천만원대에 가까운 빚을 지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물론 애초에 신뢰가 있어야 외상이 가능하겠지만, 불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할 경우 아예 연락을 끊거나 오리발을 내미는 경우도 있다는 것. 이때 고객관리표는 확실한 증거가 될 뿐 아니라 협박용 카드가 되기도 한다.
둘째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 고급 대형 룸살롱의 경우 검사, 변호사, 정치인, 경찰간부 등 소위 권력자들이 자주 찾는 반면, 이들 업소는 언제든 윤락알선의 혐의로 단속에 걸릴 수 있다는 약점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최악의 상황에서 이들의 도움을 얻거나, 혹은 이들이 안면몰수할 경우 고객관리표가 안전판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번 울산지역의 고객관리표 보도 이후 서울 일대의 룸살롱 근무자들은 단골고객들로부터 ‘혹시 거기에도 표를 만들고 있었느냐’는 전화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강남 논현동의 J룸살롱 관계자는 “그간 친했던 고객들도 의심스런 목소리로 관리표가 있느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며 “그렇다고 할 수도 없고 무조건 발뺌을 할 수도 없어 난감하다”고 밝혔다.
일부는 ‘괜찮으니까 지금이라도 관리항목을 삭제해달라’고 정중히 요청하는가 하면, 일부는 ‘동의없는 사적 정보 수집은 불법이니 당장 폐기하라’며 협박을 하기도 했다는 것.
고객 접대 일로 가끔씩 룸살롱을 찾는다는 여의도의 한 증권맨은 “앞으로 룸살롱에서는 명함은 물론이고 실명도 밝히지 않을 계획”이라며 “자칫 고객 장부가 경찰에게 발각되면 큰일이 아니냐”고 말했다.
혹시나 ‘살생부’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정보를 노출하기 꺼리는 고객들. 그리고 그들의 정보를 빼내 관리하고자 하는 마담과 아가씨들. 룸살롱에 때아닌 ‘정보전’이 벌어지고 있다.
울산=이남훈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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