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대학에 보내기 위한 부유층의 편법은 일반인들의 혀를 내두르게 하고 있다. 경시대회에 작품을 출품하기 위해 기존의 작품을 고가에 구입하는가 하면,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상장을 받기 위해 브로커와 은밀한 뒷거래를 하기도 한다.
부유층의 자녀는 이 같은 방법을 통해 얻은 수상 기록으로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일요신문>은 그동안 전교조측의 도움을 받아 각종 경시대회의 불법 사례들을 취재하고 그 자료들을 취합해 왔다. 그런 와중에 지난 11월10일 수원에서 열린 한 웅변대회에서 상장을 위조한 웅변협회 간부 등이 구속되는 사건이 터졌다.
하지만 <일요신문>이 취합한 자료들에 따르면 이번 웅변대회 파문은 대학입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 뒷거래의 일부분에 불과할 정도로 편법은 다양했다.
'대통령상 1천8백만원, 국무총리상 1천5백만원, 장관상 3백만원.’
최근 검찰에 덜미가 잡힌 ‘상장 브로커’들 사이에 오가는 공식 거래 금액이다.
수원지검 특수부는 지난 10일 웅변대회 상장을 거래한 웅변협회 간부 신아무개씨(39) 등 9명을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갖가지 명분을 붙여 웅변대회를 개최한 뒤, 공공연하게 상장을 거래해왔다.
지난 10년간 유통한 상장만 자그마치 1백30여 개. 거래 가격은 적게는 3백만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천만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상장을 받지 못해 안달이다. 일부 학부모의 경우 국회의장상 4개를 받기 위해 5천3백만원을 브로커에게 건넨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검찰 관계자는 “웅변대회의 문제점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협회 간부와 학부모들의 결탁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며 “이미 10여 명의 학생들은 이곳에서 받은 상장을 이용해 유명 사립대에 입학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전교조에 따르면 학원가에서 그동안 대학 특례입학을 겨냥한 일부 학부모와 학원간의 은밀한 뒷거래는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는 것. 특례입학에 필요한 상장 거래는 물론, 대학 직원까지 암암리에 브로커 활동에 가담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증언이 나왔다.
최근까지 전교조의 정책국장을 지낸 김아무개씨는 “특례입학의 경우 필기시험이 없기 때문에 각종 경시대회에서 받은 상장으로 학생들을 평가할 수밖에 없다”며 “때문에 상당수의 상류층 학부모들이 학원뿐 아니라 일부 대학 직원과의 밀착을 통해 자녀를 대학에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구 논현동 K미술학원이 대표적인 예. ‘교육 1번지’로 통하는 강남에서 명성을 얻은 이 학원은 입시철이 되면 전국 규모 대회나 각종 경시대회에 입상한 경력자들을 초빙한다고 한다.
경시대회에 출품할 학원생에게 작품을 공급하는 게 이들의 임무. 대신 거액의 커미션을 받게 된다. 한번 출품할 때 이들이 받는 돈은 1천5백만원 선. 외국에서 상을 탄 사람의 경우 약간의 추가 요금이 더 붙는다고.
우수 수강생의 작품을 몰래 도용해 출품하는 학원도 있다. 이들은 비교적 성적이 좋은 학생들의 작품을 일정액의 프리미엄을 받고 다른 수강생에게 넘긴다. 이 경우 원장이 전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당 수강생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게 김 전 국장의 귀띔.
이렇게 해서 받은 상장은 일부 상류층 자녀의 특별전형 준비에 적극 활용된다. 김 전 국장은 “예체능 분야의 경우 문학상이 가장 인기가 높지만, 최근에는 선행상이나 효행상도 선호도가 높다”며 “이 상들은 돈을 주고받고 거래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고위층이나 부유층이 선호하는 편이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대학 직원들조차 공공연하게 브로커 활동에 가세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전 국장은 “입시요강의 경우 대학 내에서도 극소수만 아는 비밀”이라며 “이들은 학부모들이 원하는 정보를 슬쩍 흘리고 커미션을 챙긴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일부 대학 관계자들은 “우리 대학에서는 올해 신입생 모집에서 쭜쭜상 몇 명, 쭜쭜상 몇 명 등을 우선적으로 선발한다”는 정보를 미리 흘린다는 것.
이 정보는 곧 뒷거래의 출발점이 된다. 정보를 듣고 찾아온 학부모와 직원간에 은밀한 거래가 시작되는 것.
김 전 국장은 “이런 입시요강은 보통 교무과나 학생과에서 만들기 때문에 대학 교수도 알지 못하지만 몇 단계만 거치면 금방 출처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학교의 입시정보는 수험생에게 필요한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입시에서 그만큼 유리하다”고 말했다.
농어촌 학생 특별전형도 상류층들이 편법 입학을 위해 애용하는 메뉴 중의 하나. 정부는 지난 97년부터 농어촌 자녀에 대한 대학입학 기회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농어촌 학생 특별전형제를 실시하고 있다. 읍·면 소재 고등학교 졸업생으로 재학 기간 중 부모가 현지에 거주하고 있어야 하는 게 응시자격.
그러나 이 시험도 부유층 자제들이 시골로 위장 전입하는 수법을 통해 편법 입학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실제 민주당 설훈 의원이 지난해 농어촌 학생 특별전형을 통해 입학한 학생들의 부모 직업을 조사해본 결과 지난해 농어촌 특별전형을 통해 대학에 입학한 학생의 37.7%만이 실제로 농·어업에 종사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학교의 경우 농어민 자녀가 20%도 채 되지 않았다는 게 설 의원의 주장이다.
설 의원측은 “농어촌의 기준이 읍·면 단위임을 감안할 때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라며 “때문에 농어촌 학생 특별전형을 통해 입학한 학생들 중 일부가 도시에서 시골로 위장 전입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웅변대회 파문 못지않은 갖가지 편법적인 대학입학 사례들이 불거질 것으로 예상되자 교육부에는 현재 비상이 걸렸다.
교육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시대회에 대한 감독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경시대회의 난립으로 인해 갖가지 폐해가 나오고 있다”며 “현재 경시대회의 수준과 공정성을 관리할 수 있는 인증제도의 도입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이석 프리랜서 zeus@newsbank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