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녀들 뒤지면 ‘숨은 재산’ 다 나온다
‘황제 노역’으로 사회적 지탄을 받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4일 광주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연합뉴스
허 전 회장에게 미납 벌금을 받기 위해 소위 ‘전두환식’ 벌금 집행 방식으로 방향을 정한 검찰 수사는 지난 3일 허 전 회장으로부터 224억 원의 벌금 중 49억 5000만 원을 받아 내는 성과를 거뒀다. 이어 4일 허 전 회장에게 나머지 벌금도 모두 납부하겠다는 의사를 확인하면서 사실상 검찰의 수사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허 전 회장의 벌금 완납 계획 발표와는 별개로 검찰은 허 전 회장 측에 대한 수사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허 전 회장과 주변인간 주식차명거래 사실을 확인할 경우 허 전 회장을 금융실명제법 위반 또는 증여세 포탈 혐의로 추가 기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허 전 회장은 벌금 말고도 국세 134억 원, 지방세 24억 원에 금융권 233억 원(신한은행 151억 원·신용보증기금 82억 원)의 채무까지 갖고 있다. 지방세의 경우 지난달 28일 허 전 회장 측이 사망한 전 부인의 상속 재산을 받아 납부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즉 허 전 회장으로부터 추가로 벌금 납부 계획을 받아냈다고 해서 검찰의 은닉 재산 찾기가 끝난 게 아니란 얘기다. 이와 관련, 지난달 검찰이 허 전 회장 자녀 집에서 압수한 미술품도 오는 7일 경매를 통해 처분될 예정이다. 검찰과 별개로 국세청도 허 전 회장을 상대로 체납 국세를 징수하기 위해 지난 3일 허 전 회장과 황 씨 등이 지분을 갖고 있는 HH개발에 대해 집중 세무조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가 이처럼 속도를 내며 허 전 회장으로부터 벌금 완납 계획을 받아 낸 것은 광주지검 특수부(부장검사 김종범)가 지난 1일 허 전 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황 아무개 씨(57)를 협박해 5억 원을 뜯어낸 혐의(공갈)로 대주건설의 하청 시행업체 대표였던 백 씨를 구속하면서부터다. 검찰은 백 씨가 과거 허 전 회장의 재산관리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조사를 진행했으며, 이를 통한 허 전 회장 차명계좌 추적에도 가속을 붙였다.
검찰에 따르면 백 씨는 농협에 근무하던 1980년대 거액의 당좌거래를 하는 허 전 회장과 처음으로 관계를 맺었고 VIP 고객인 허 전 회장에게 각종 편의를 봐 주면서 우호적 관계를 형성했다. 이후 백 씨는 농협을 그만두고 대주건설 산하 시행업체를 20년 가까이 운영하며 허 전 회장의 숨겨진 재산관리인 역할을 맡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백 씨가 허 전 회장의 차명주식과 부동산 등 은닉재산 형성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그는 대주건설 부도 처리시기를 전후한 2000년대 후반부터 허 전 회장과 급격히 사이가 악화돼 ‘오른팔’에서 ‘원수’로 돌변했다.
이 변호사는 검찰에서 ‘골프장을 팔아서라도 벌금을 대납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실혼 부인 황 씨 등 허 전 회장의 사실혼 관계 여성 3~4명의 재산 분배에서도 직접적으로 법률적 업무를 전담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검찰의 은닉 재산 추적 과정에서 자연스레 허 전 회장의 화려한 여성편력도 모습을 드러냈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와 관련한 갖가지 루머도 양산되고 있는 모양새다.
허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 사별한 법률적 부인 이 아무개 씨 이외에도 사실혼 관계를 맺어 온 여성 3~4명과 이들 사이의 자녀 7~8명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허 전 회장의 은닉 재산이 이들에게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가계도까지 그려 가며 이들의 국내외 재산 현황을 파악하는 데에도 주력했다.
광주·전남 지역에서 ‘황제’로 불릴 만큼 큰 위세를 떨친 허 전 회장은 한때 재계 50위권에 진입한 대주그룹 오너였던 만큼 상당한 재력은 물론 호방한 성격까지 갖춰 여성 편력도 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탓에 허 전 회장은 과거 골프를 즐기는 한 중견 여자 탤런트와 사실혼 관계라는 스캔들이 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허 전 회장은 여러 여인들 중에서도 황 씨에 대한 애정이 더욱 각별한 것으로 전해졌고, 이런 이유로 그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허 전 회장의 후계자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허 전 회장은 황 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중학생 아들을 예뻐해 그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다고 한다”며 “하지만 후계자로 지목된 허 전 회장의 아들은 뉴질랜드에서 회사 임원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반말을 하는 등 대단히 거만하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전 부인 사망 후 사실상의 본부인인 황 씨가 지난 3일 검찰과 국세청 등의 전방위적 수사에 심적 부담을 느낀 나머지 만취 상태로 한강에서 자살을 기도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허 전 회장 본인도 상당한 정신적 압박감을 느꼈을 것이라는 전언이다. 그동안 검찰은 황 씨가 허 전 회장의 은닉 재산을 밝혀내는 데에 핵심 열쇠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황 씨는 지난달 31일 광주지검에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해 허 전 회장의 벌금 납부와 관련해 조사를 받고 귀가했으며 국세청 조사도 받았다. 황 씨는 전남 담양의 담양다이너스티CC를 소유한 HH레저의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물론 뉴질랜드에서도 대주그룹 관련 회사들의 지분과 부동산 등 수백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