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억 받고도 도둑질…‘제 버릇 개 못줬다’
로또 1등에 당첨되고도 되레 불행한 인생이 산 이들 때문에 ‘로또의 저주’라는 말이 돌기도 했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로또에 당첨된 절도범 사건을 다룬 SBS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 Y> 방송 화면 캡처.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난 3월 스마트폰 도둑 황 아무개 씨(34)가 경찰에 검거됐다. 황 씨는 지난 2013년 12월 2일 진주시 대안동 한 휴대전화 매장에서 최신 스마트폰 2대를 구매하는 척하다가 대당 100만 원이 넘는 스마트폰 2대를 갖고 달아났다.
황 씨는 유명 조직폭력배 이름을 언급하며 조폭 행세를 하거나 사장 친구라고 밝히며 휴대전화를 빌려 통화를 하다가 그대로 도망가는 등의 수법을 사용했다. 범행 수법은 단순했지만 뛰어난 연기력의 소유자인 황 씨에게 속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황 씨가 1년 동안 이 같은 범행 수법으로 훔친 스마트폰만 130여 대에 이른다.
그런데 황 씨가 언론의 관심을 받은 까닭은 그가 로또 1등 당첨자였기 때문이다. 마산에 거주하던 황 씨는 지난 2006년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돼 세금을 제외하고 14억 원을 받았다. 14억 원은 3%의 이자만으로도 대기업 사원 연봉인 420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그런 거액의 소유자였던 황 씨가 스마트폰 절도를 일삼는 ‘잡범’으로 내몰린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황 씨는 로또에 당첨되기 이전에도 경찰의 수배를 받았다. 황 씨는 강도상해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던 도중 구입한 로또가 ‘대박’이 난 것이다. 황 씨는 26세의 젊은 나이에 보통사람이 평생 벌어도 못 벌 거액을 손에 쥐게 됐다. 황 씨는 당첨금 중 1억 원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 벌금형을 받고 수배를 털어냈다. 이후 황 씨는 아버지에게 집과 개인택시를 사주고 수억 원을 들여 호프집을 차리기도 했으며 외제 승용차를 구입하고, 애인과 동거할 집도 사며 호화로운 생활도 누렸다.
하지만 이런 호화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수억 원을 들여 차린 황 씨의 호프집은 얼마 뒤 영업 부진으로 곧 문을 닫았다. 황 씨는 남은 당첨금을 들고 은행 대신 도박판으로 향했고, 도박판에서 4억 원을 날리기도 했다. 그는 도박뿐만 아니라 노래방이나 룸살롱에 자주 드나들며 유흥비로도 흥청망청 썼다. 황 씨는 아는 여성들에게 수백만 원씩을 뿌리기도 했다.
돈을 물 쓰듯 했던 황 씨에게는 14억 원은 많은 금액이 아니었다. 14억을 모두 탕진하는 데 8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황 씨는 경찰 진술에서도 “돈을 수억 원씩 잃다보니 14억 원도 쓸 게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7년 황 씨는 대구 금은방에서 절도행각을 벌이다 붙잡혀 1년간 복역한 뒤 2008년 4월 출소했다. 출소하고 난 뒤에도 예전 ‘로또의 추억’을 잊지 못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인생역전’을 노리고 로또를 계속 구매했다. 하지만 더 이상 행운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출소 이후에도 ‘못된 버릇’을 못 고친 황 씨는 2008년 출소 직후 과거 소년원에서 알게 됐던 김 아무개 씨와 공모해 경남, 부산, 대구 등지 금은방을 속칭 네다바이 수법(남을 교묘하게 속여 금품을 빼앗는 범죄행위를 속칭하여 부르는 말)으로 털다 검거돼 다시 수감됐다.
두 번째 수감생활 이후에도 그는 ‘손 맛’을 잊지 못했다. 지난 2010년 4월 돈이 떨어진 황 씨가 선택한 것은 또 절도였다. 두 달 만인 같은 해 6월 절도와 사기 혐의로 황 씨는 지명 수배됐다. 황 씨는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대포폰, 대포차를 타고 고향인 진주를 떠나 경남 창원지역 등에 숙박 시설을 전전했다. 황 씨는 도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위와 같은 수법으로 스마트폰을 훔쳐오다 꼬리가 밟혀 다시 또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로또를 잘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로또의 저주’란 말이 있다. ‘큰돈을 갑자기 얻게 된 사람은 불행해진다’는 속설이다. 이것은 김 아무개 씨(자살 당시 43세)에게 맞는 말이다. 김 씨는 술집을 운영하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러다 지난 2005년 김 씨는 로또 1등에 당첨돼 18억 원을 받았다. 김 씨는 술집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벌이고 주식 투자를 시작했지만 연이어 실패했다. 김 씨는 수차례 사기까지 당하며 모든 당첨금을 잃은 데다 수천만 원의 빚까지 지게 됐다.
지난 2012년 결국 김 씨는 한 목욕탕에서 목을 매 숨졌다. 평범했던 인생에 로또당첨의 대박이 굴러들어왔지만 결국 자살이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 2012년 7월 인천에서는 로또 1등에 당첨된 남편(44)이 거액을 탕진한 뒤 그 상실감으로 자신의 부인을 마구 때린 혐의로 입건된 경우도 있다. 이 남성은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를 인천 남동구 자신의 집으로 불러내 2월부터 총 9차례에 걸쳐 상습적으로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남편이 불로 달군 흉기로 부인의 옷을 찢거나 담뱃불로 다리를 지지기도 했으며 부인에게 흉기를 주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로또를 사기 위해 매장 내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그는 2011년 10월 말 로또 1등에 당첨돼 당첨금 19억여 원(실수령 13억여 원)을 수령했다. 하지만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거의 모든 재산을 유흥비 등으로 탕진했다고 알려졌다. 로또에 당첨된 직후에는 형제들에게 당첨금의 절반가량을 골고루 나눠주는 등 ‘베풀 줄 아는 착한 사람’이었으나 돈을 흥청망청 쓴 결과 범죄자가 되고 말았다.
로또 당첨자들은 모두 이와 같은 ‘로또의 저주’로 불행하기만 할까. 로또를 포함해 복권 사상 전무후무한 국내 최고액 당첨자인 박 아무개 씨(50)를 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2003년 4월 강원도 춘천서 평범한 경찰로 근무하던 박 씨는 소대 의경에게 로또 심부름을 시킨다. 한 차례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당첨금이 수백억에 달해 한창 세상이 들썩이던 때다. 박 씨는 아무 생각 없이 샀던 이 로또가 홀로 1등에 당첨돼 407억 2295만 9400원이란 ‘대박’을 잡았다. 박 씨는 세금을 제하고 317억 6390만 원을 수령했다.
그는 앞서의 황 씨처럼 돈을 흥청망청 쓰지 않았다. 먼저 선행부터 베풀었다. 강원일보에 공익재단을 만들어 달라며 20억 원을 기탁했다. 또 박 씨가 근무했던 춘천경찰서 희망장학회에 10억 원, 자녀들이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2억 원을 쾌척했다. 형제들과도 당첨금 일부를 나눴다. 이렇게 좋은 일에 쓰고도 당첨금 200억 원이 남았다. 이 돈은 어떻게 됐을까.
박 씨는 지난 2012년 11월 <강원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0억 원의 돈은 늘지도 줄지도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 수도권에 거주하며 제조업 분야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재산 관리도 부동산과 예금 등에 분산투자하였고, 매년 3000여만 원 정도를 무기명으로 기부한다고 말했다.
다른 당첨자들이 겪은 이혼, 불화, 불행 등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박 씨는 로또 당첨 후 금실이 더 좋아졌다고 한다. 그는 “당첨금으로 여유가 생겨 좀 더 긍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좋다”며 “남에게 베풀며 살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박 씨는 “로또 1등 당첨 후 단 한 번도 로또를 사본 적이 없다”며 “주위 친구들의 부탁으로 대신 사준 적은 있다”고 답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익명으로 어려운 이웃을 지속적으로 도우며 평범하게 살겠다”는 ‘모범 답안’을 내놨다.
로또 당첨금을 지급하는 농협의 한 관계자는 “당첨자들 모두가 불행한 사람이 있는 것만은 아니다”라며 “뉴스에 나오는 소수의 로또 당첨자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1회부터 592회까지 로또 당첨자가 3488명이다 보니 그 중 몇 명의 불행이 일반화됐다는 설명이다.
또한 그는 “로또는 당첨되면 좋고 안 되면 좋은 일에 쓰이니까 그것도 좋다는 마음가짐으로 건전하게 즐기는 것이 낫다. 1등에 대한 지나친 집착만 버리면 한 주를 즐거운 상상으로 보낼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가끔씩 로또를 산다”며 웃어보였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김태현 인턴기자
당첨자 신상 보호는? 돈 찾으러 와도 정보 샐 틈 없다 특히 당첨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신원이 철저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지 여부다. 농협 측 관계자는 “개인정보 유출은 절대 없다”고 자신했다. 이 관계자는 “당첨자가 본점 1층 안내데스크에 로또 1등에 당첨됐다고 말하면 경호원이 따라 붙어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당첨자가 향하는 곳은 1등 당첨자만을 위해 따로 마련한 밀폐된 공간이다. 이곳으로 들어가 로또 용지를 확인하고 농협 계좌에 당첨금을 그 자리에서 바로 입금한다. 개인정보 유출은 있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우리 측에서는 세금 문제로 신원 조회를 하지만 다른 지점이나 부서에서는 조회조차 불가능하다”며 “복권 당첨자에 관한 개인정보를 유출한 직원은 복권 및 복권 기금법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법 때문이라도 개인 신상을 유출하는 일은 절대 없다”고 단언했다. 그렇다면 로또 복권에 당첨된 사람은 그 사실을 누구에게 알릴까. 농협은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들에 한해 신상 정보 없이 간단한 설문을 시행한다고 한다. 그 설문 목록에 있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당첨 사실을 누구에게 알릴 것인가’다. 앞서의 농협 관계자는 “배우자까지가 가장 많았다”고 답했다. 당첨자들이 부부끼리만 비밀로 지키는 이유는 친척들에게 알리기 시작하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고 자녀들에게 알리면 자녀들이 돈을 쉽게 볼 우려가 있기 때문이란다. 실제 로또 1등을 수차례 목격했던 농협의 한 직원은 “로또 1등이 됐다고 호들갑을 떨거나 기쁨을 크게 표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조용히 돈만 챙겨 사라진다”고 말했다. [김] |
로또 명당 직접 가보니… 1년 수수료 수익 8억 로또 당첨 안부러워 ‘로또 1등 20회 당첨 명당’ 이 표어가 걸린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로또 판매점은 ‘로또 명당’으로 유명한 곳이다. 로또 명당들은 저마다 로또 1등 당첨자 배출횟수를 자랑하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로또 마니아들도 ‘기왕이면’ 로또 명당을 찾아 1시간 이상 줄을 서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먼 타지에서도 원정 구매를 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 ‘로또 명당’으로 유명한 판매점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줄을 잇고 있다. 로또 판매점들 사이에서는 ‘로또 1등자를 배출하는 것이 (가게 주인이) 로또 1등에 당첨되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판매점이 로또 1등을 배출하면 명당이란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이 찾아 매출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실제 상계동의 로또 판매점은 2012년 판매액이 168억 원에 달했다. 판매점 주인이 받는 수수료는 판매액의 5.5%. 이 로또 판매점이 얻은 수수료 1년 수익만 8억 4376만 원이었다. 이 판매점 주인은 1년에 한 번씩 로또에 맞는 셈이다. 지난 11일 기자가 해당 판매점을 방문해보니 오전임에도 가게 안은 로또를 구입하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가게 안에 죽 늘어선 줄은 오직 수동으로 번호를 선택하는 사람들만 선다. 자동으로 살 사람들은 미리 판매점에서 로또용지를 무더기로 뽑아 놓고 과자 한 봉지 사가듯 사가면 된다. 이 판매점의 입구에는 ‘로또 1등 당첨자가 로또 용지와 같이 샀던 OO담배’ 등의 문구를 써 놓고 다른 물건의 동반 판매도 노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과연 로또 당첨에 ‘명당’이 있을까. 2012년 전체 로또 매출과 비교해 직접 계산해봤다. 2012년 전체 로또 매출은 2조 8398억 원이었다. 이 중 최고의 ‘로또 명당’이라 불리는 상계동 로또 판매점은 168억을 판매해 0.59%를 점유했다. 2012년에 로또 1등 당첨자는 346명으로 해당 판매점에서는 그 중 2명의 로또 1등 당첨자를 배출해 0.57%를 차지했다. 최고의 ‘로또 명당’이 오히려 판매 점유율보다 못한 당첨자를 배출한 것이다. 2명의 로또 1등 당첨자도 한 해 판매액 168억이라는 엄청난 금액에 비례한 결과였다.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쏠림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몇몇 로또 판매점들이 ‘로또 명당’을 간판 삼아 사람들을 현혹하는 상황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우연히 터진 복권 덕에 ‘명당’으로 등극해 매년 로또급 수익을 올리는 로또 판매점들. 일부에서는 ‘로또 명당’을 찾는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명당’을 찾는 사람인 한 아무개 씨는 자신도 그 점은 충분히 알고 있다며 “누가 몰라서 이곳 ‘명당’까지 온 줄 아느냐. 나도 확률이란 걸 알지만 같은 값이면 ‘기운’도 받고 기분도 좋게 하려고 오는 것이다”고 말했다. 복권 한 장에 희망을 갖고 긴 줄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유 있는 항변이었다. [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