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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운용 IOC 부위원장이 지난 9일 국내 공직 사퇴를 밝히는 기자회견 중 눈물을 닦고 있다. 그의 ‘눈물’에 대한 검찰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김 부위원장은 체육단체 공금 횡령 등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로 조만간 구속될 처지에 놓인데 이어 자칫하면 국제 체육계로부터도 퇴출을 당할 상황을 맞고 있다. IOC가 최근 김 부위원장의 비리 의혹들에 대해 자체 진상조사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IOC의 지젤 데이비스 대변인은 지난 11일(한국시간) “자크 로게 위원장이 김 부위원장에 대한 문제를 조사해 보고서를 올리도록 서면 지시를 했다”고 밝혔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AP통신은 김 부위원장이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 선임을 둘러싼 배임수재, 세계태권도연맹(WTF)의 기금 횡령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으며, 국회의원과 세계태권도 연맹 총재직을 사퇴했다고 전했다.
김 부위원장은 지난 1999년 미국 솔트레이크시의 2002년 동계올림픽 유치 비리 스캔들에 연루돼 IOC 윤리위의 경고를 받은 적이 있다. 김 부위원장의 아들 정훈씨가 솔트레이크시티 유치위원회측의 자금지원을 받은 유타 텔레커뮤니케이션스사에 취업해 미국 영주권을 받은 사실 등이 드러난데 따른 것이었다.
IOC측은 앞으로 김 부위원장이 세계태권도연맹(WTF)의 공금을 횡령했는지 여부와 2001년 IOC 위원장 선거 때 금품 살포를 했는지 등을 집중 조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 선임과정에서 후보들한테서 금품을 수수하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 당시 남북한 동시입장 등 남북 체육교류와 관련해 북측에 1백30만달러를 제공했다는 우리 검찰의 수사 내용에 대해서도 진상 조사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IOC측의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김 부위원장이 IOC 위원 자격 박탈과 같은 중징계를 받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렵다. IOC의 관련 규정은 IOC의 명예를 손상시키거나 IOC에 중대한 해를 입힌 위원에 대해 총회에서 출석위원 3분의 2 이상 찬성 의결이 있으면 제명 처분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앞서 김 부위원장은 지난 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의원직과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국기원장직 등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최근 저의 스포츠 외교활동과 관련해 많은 물의가 야기된 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이 같은 결심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 내부의 반응은 싸늘한 편이다. 한 검찰 인사는 “김 부위원장이 국제 체육기구에서의 직위는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나머지 국내 체육단체장 자리들은 진작에 내놓고 근신하는 태도를 보였어야 했다”며 “김 부위원장측의 사건 대응이 너무 미숙한 것 같다”고 일침을 놓았다.
김 부위원장에 대한 검찰의 시각은 “너무 많이 해먹었다”는 수사팀 관계자의 말로 요약된다.
검찰은 무엇보다 지난해 12월 김 부위원장의 서울 여의도 자택에서 압수한 개인 금고, 은행 대여금고 등에서 쏟아져 나온 외화와 유가증권, 귀금속 등의 엄청난 양에 혀를 내두른 것으로 전해졌다.
일단 지금까지 검찰이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해준 이들 금품의 액수는 최하 65억원 규모에 달한다. 이 가운데 달러화와 엔화, 유로화 등 외화만 1백70만달러(한화 20억원 상당)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은 또 현금과 수표, 양도성예금증서(CD), 본인과 가족 명의의 예금통장에 입금돼 있는 돈 등을 합쳐 45억원 정도를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시가 산정이 어려워 액수 산정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귀금속의 양과 시가총액도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훨씬 엄청난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알려진 금반지와 금거북이, 금송아지 등 금붙이는 기본이고, 이른바 명품으로 분류되는 고가의 시계와 다이아몬드 등도 상당량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그중에는 롤렉스 등 개당 수천만원짜리 외제 시계들도 섞여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외화와 현금, 귀금속 등의 출처는 어디일까?
이에 대해 김 부위원장은 최근 검찰 조사과정에서 “외화는 2001년 IOC 위원장 선거 출마 등과 관련해 지인들이 모아준 후원금 중 쓰고 남은 돈과 해외 출장이 잦은 업무 특성 때문에 평소 환전해 갖고 있던 돈 등을 보관해온 것”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김 부위원장은 검찰에 “IOC 위원장 선거 당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7억원을 준 것을 비롯해 국내·외 기업인과 지인들이 2백만달러 정도를 후원금으로 모아줬고, 이 돈 일부와 정부 지원금 등을 합쳐 북한 체육계에 1백30만달러를 지원했다”는 내용의 해명서를 낸 상태다.
▲ 지난 9일 김운용 IOC 부위원장이 “물의가 야기된 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 ||
또다른 그의 측근은 “언론 보도를 보면 김 부위원장이 원래 알거지였다가 체육단체장 공금을 횡령해 부자가 된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며 “용인 민속촌 부근 ‘국악의 전당’ 부지로 수용된 2천6백여 평의 땅 등 기본 재산이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귀금속류의 출처에 대해서는 “김 부위원장의 칠순 잔치와 손자, 손녀들의 백일 및 돌잔치 때 선물로 들어온 금붙이들을 관리해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팀은 이런 해명을 곧이 믿지 않는 분위기다. 우선 검찰은 달러와 수표 등 현금류 가운데 상당액은 김 부위원장이 수장을 맡아온 대한체육회와 세계태권도연맹 등의 공식 후원금이나 예산에서 빼돌린 공금 중 일부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부분과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김 부위원장의 횡령액이 최소 10억원 이상”이라고 밝혔다.
가족들 명의의 예금통장들도 김 부위원장이 비자금을 관리하는 데 이용한 차명계좌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 판단의 근거는 통장의 주인인 3명의 자녀와 며느리 등이 모두 외국 국적을 갖고 있거나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굳이 김 부위원장이 통장을 관리할 이유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부위원장의 장남 정훈씨의 부인은 미국 뉴욕에 있는 한 대학의 총장으로 재직중이고, 첫째 딸은 영국 런던에서 국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위원장이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유치 관련 비리 스캔들에 연루됐을 때 솔트레이크시티 등의 피아노 연주회 주선 의혹으로 구설에 올랐던 둘째 딸 역시 미국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검찰은 김 부위원장이 그동안 해외에 있는 이들 가족에게 상당한 재산을 증여했고, 이 과정에서 불법 외화 밀반출 및 세금 포탈 등을 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수사팀은 일단 김 부위원장이 지난해 불법 영주권 취득 등 혐의로 미국 수사당국과 인터폴의 수배를 받던 중 불가리아에서 체포된 아들 정훈씨에게 변호사 비용을 대기 위해 외화 7만∼8만달러를 밀반출한 혐의를 포착한 상태다.
이와 함께 검찰은 귀금속들은 집안 경조사 때 부조금 형태로 들어온 것이라는 김 부위원장측 해명에 대해 “그 정도로 보기에는 귀금속 양과 금액이 너무 많다”고 일축했다.
이런 검찰에 대해 김 부위원장의 한 친인척은 “지난 연말 수사관들이 김 부위원장의 여의도 아파트를 압수수색하면서 방문 3개의 자물쇠를 파손해 이를 수리하는데만 얼추 1백만원 가까운 돈이 들었다”며 “김 부위원장이 부정축재한 것도 없는데 힘이 없어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검찰측은 “그의 혐의 내용을 보면 무엇이 진실인지 드러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 혐의는 14일경 청구할 것으로 알려진 김 부위원장의 구속영장에 적시될 예정이다.
이진기 언론인